구원의 은혜 – 장재형(장다윗)목사

Ⅰ.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에베소서 2장의 핵심 주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에베소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이 기록한 찬송과 감사의 이유를강조한다.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라고 말하는데, 이는 단순히 개인 구원을 넘어선 ‘역사의 큰 방향성’을 드러내는 구절이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역사의 흐름이B.C(주전)와 A.D(주후)로 구분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스도의 오심이 역사의 핵심적 사건임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역사는“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어 가는 거대한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곧 ‘종말론적 비전’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장재형목사는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보통 ‘창조-죄-그리스도-구원’으로 요약되는 사영리(四靈理)를 가르치지만, 여기에 ‘하나님 나라’를 추가하여 ‘창조-죄-그리스도를 통한 구원-하나님의 나라’로 확장해 소개한다. 그 이유는 성경 전체가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완성해가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 대속을 통해 시작되었고, 이는 지금도 확장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기독교신앙은 단순히 개인의 구원에 국한되지 않고, “역사의 구원”이라는 광범위한 차원 속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함을바라보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이 “찬송할 이유”가 있었다고 언급하듯,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는 자연스럽게 찬양과기도가 넘치게 된다고 해설한다. 에베소서 1장은 찬송과 기도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기도가 바로 바울의 기도”라며, 특히 에베소서 1장 후반부에 나타난 바울의 기도 내용을 주목한다. 그기도는 피상적인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통치, 그리고 인간의 영적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하는 높은 차원의 요청이다. 즉 바울은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는 표현을 통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심령의 각성’을 통한 하나님의 뜻 깨달음을구한다.

이 맥락에서 장재형목사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타락과 죄 문제로 시선을 옮긴다. 원래 하나님은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셨고, 특히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심히 좋았다’고 평가하셨으나, 인간은 죄로 인해 타락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되고, 무질서와 혼돈 속에 빠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사무엘상 15장 23절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리셨다”고 한 말씀과 비견되는데,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버린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깊은 세계”라며,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고도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실상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등졌고, 그 결과로 진노 아래에 놓인 존재가 되었다는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끝이 없어서,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살리고자 아들을 보내셨고,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는 복음으로 인류를 초대하셨다. 장재형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대속(Redemption)’의 사건임을 특히 강조한다. ‘속량(贖良)’이라는 말이 가진 고대적 배경(노예를 돈으로 사서 자유를 선물하는 개념)처럼, 예수님이 친히 자기 목숨이라는 가장 귀한 대가를 치르심으로 죄의 노예 상태에 있던 인간을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이렇듯 장재형목사는 ‘창조-죄-그리스도-구원’이라는 전형적인 사영리에 이어, 성경 전체가 “결국 하나님 나라로 귀결된다”는 대전제를 제시하면서, 에베소서가 제시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통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얼마나 장대하고도 명확한 것인지를 설파한다.

그 결과, 에베소서 1장의 결론은 ‘찬송’과 ‘기도’로 요약된다. 바울의 고백을 통해 보듯,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 넘치는 찬양이 터져나오고, 또한 그 은혜를 더욱 크게 깨닫고 체험하기를 구하는 ‘거룩한 기도’가 자연스레 이어진다는 해석이다. 장재형목사는 이처럼 “은혜에 대한 인식”이 깊어질수록, 인간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와 역사 구원을지향하는 넓은 시야를 얻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지점이 에베소서가 가진 독특한 규모감, 즉 ‘역사와 구원’을 동시에 관통하는 서신의 특징이기도 하다.

Ⅱ. 허물과 죄, 그리고 구원의 확실성

장재형목사는 이어서 에베소서 2장으로 넘어가면서, 2장 1절에 등장하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는 선언이지닌 극적인 반전을 강조한다. 바울은 이미 에베소서 1장 마지막에서 ‘역사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고 선언했는데, 2장에 이르러 그 통일의 과정이 얼마나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변화’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선 2장 1절에서 말하는 ‘허물(παράπτωμα, 파라프토마)’과 ‘죄(ἁμαρτία, 하마르티아)’의 구분에 주목한다. 장재형목사는허물은 ‘궤도를 이탈함(fall away)’을 의미한다고 전하면서, 본래 인간이 가야 할 길(궤도)이 있음에도 그것을 벗어났다는 점을설명한다. 우주 만물은 태양을 중심으로 각자 공전 궤도를 지니고 있고, 자연계나 동식물조차도 자신에게 주어진 법칙대로 움직이는데, 유독 인간만이 자신의 창조 질서와 길을 이탈해버렸다는 것이다. 죄(하마르티아)는 ‘과녁에서 빗나감(missing the mark)’이라는 어원을 갖는데, 이는 과녁 중심을 맞히지 못함으로써 모든 것이 엉켜버린 상태, 곧 무질서와 혼란을 의미한다.

장재형목사는 “전에는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엡2:2)라는 구절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단지 개인적 죄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자(사탄)’가 지배하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살아가는 구조적 죄악임을 시사한다고 해설한다. 즉 사람들은 죄의 존재가 하나님과 무관한, 혹은 자신들끼리의 문제로만 보기도 하지만, 성경은 그 배후에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이 있으며, 그 세력이 세상 풍속(이데올로기, 문화, 가치관 등)을 좌지우지함으로써 ‘죄의 기류’를 극대화한다고 말한다. 에베소 교회가 있던 에베소 도시는 거대 여신 아데미 신전을 중심으로 성적 퇴폐와 우상숭배가 성행했던 곳이었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들어, 당시 사람들이 “우상 숭배와 음란, 부패한 문화 속에서 그 길을 좇아 살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을 보면,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세상의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모습’이 결코 추상적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장재형목사는 에베소서 2장 3절에 등장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표현이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진노가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임한다”고 한 맥락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언급할 때,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배치되는 개념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장재형목사에 따르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을 버렸고, 스스로 불의와 우상숭배를 행하며, 서로를 해치는 죄악 가운데 빠졌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의 반대라기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는 본질적 태도이자, 회복을 위한 ‘공의로운 심판’이다. 인간은 스스로 궤도를 이탈해 본질적으로 진노의 대상이 되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금 구원할 길을 내신다는 것이 에베소서 2장이 말하는 반전 메시지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2:4-5)라는 구절에서, 장재형목사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거듭 강조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음에도 하나님이 인류를포기하지 않으셨고, 결국은 아들을 내어주는 극단적 희생을 통해 죄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9절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여기서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구원을얻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의 행위나 공로나 의로 인해 받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구원의 본질은 ‘행위 이전의 은혜’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장재형목사는 “Sola Gratia(오직 은혜)”를 언급하며, 종교개혁 시기부터 강조되어 온 ‘은혜’와 ‘믿음’의 관계를 상기시킨다. 은혜가 먼저 있고,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믿음’이기에, 우리가 아무리 올바른 행위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먼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울 역시 “그러므로 누구도 자랑할 수 없다”(엡2:9)고단언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포도주에 물을 타면 안 되듯, 절대 은혜에 행위 공로를 섞어서는 안 된다”고 비유하며, 구원의 절대성이 곧 크리스천 신앙의 기초임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는 표현(엡2:10)을 헬라어 ‘포이에마(ποίημα)’로 분석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창조된 존재”라는 뜻을 깊이 있게 풀어낸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되었음을 재차 언급하며, 구원은 단순히 죄사함이나 형벌 면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새롭게 빚어지는 근본적 재창조라고 본다. 그리고 구원의 목적을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엡2:10)라는 말로 이어간다. 즉,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미리 준비해두신‘선한 일을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통해 크리스천이 세상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은 이들은, “결국 착한 일을 하고, 세상에서 빛과소금이 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기쁨으로 걷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에베소서 2장 1-10절의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은, 허물과 죄로 궤도를 이탈하고 과녁에서 빗나간 인간을 주님이‘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불러 일으키심’으로 요약된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감사하며 찬송해야 할 복음의정수”라고 힘주어 말한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던 죄인 인생에게, 하나님의 극진한 긍휼과 사랑이 임하여 ‘함께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 영광에 참여시키셨으므로, 우리의 삶 전체가 감사의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Ⅲ.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확신

장재형목사는 에베소서 1~2장을 관통하는 주제를 “역사의 종말이자 새로운 시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라 정리한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할 때, 이는곧 역사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그 종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결론이자 신약의 시작, 곧 “알파요 오메가”라는 계시록의 선언처럼 역사의 시발점이자 완성점으로서 자리한다. 장재형목사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의 “오메가 포인트” 개념에 빗대어, “구약의 오메가 포인트가 예수 그리스도이듯, 신약의 오메가 포인트는 하나님 나라”라고 말한다. 결국 종말은 “낡은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처럼 역사는 단순히 흘러가다 사라지는 무의미한 물줄기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수렴”되는 계획된 여정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확신 속에서 바울이 사도행전 28장에 이르러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기록된 것을상기시킨다(행28:31).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이 물었던 질문,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1:6)라는 말 속에도 “나라 회복,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는 소망”이 담겨 있었다고 해설한다.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크리스천들에게도 동일하게 이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서 계속 확장되고 있으며, 기도의 자리에서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간구하는 것은 바로 이 ‘종말론적 확신과 현재적 참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국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낡은 죄악의 역사는 십자가로 인해 종말을 맞이했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열렸다’는 선포는, 곧 오늘날 교회가 “어떤 역사의식을 품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장재형목사는 “역사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면 자신의배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표류하게 된다”는 비유를 들며, 크리스천은 “명확한 목적지”, 곧 ‘하나님 나라 완성’을 바라보며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과 사역은 “역사의 큰 흐름”에 참여하는 행위이며, 우리가 처한 세상 한가운데서도 이 나라는 겨자씨처럼 조금씩 자라나며, 누룩처럼 밀가루 전체를 부풀게 하듯 영향력을 확장해간다는 것이다(마13:31-33).

장재형목사는 이렇게 역사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확신하는 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영적 태도가 “찬송과감사”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이 삶 자체를 찬송으로 고백했듯, 그 역시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찬양의 이유는 단지 심리적 위로 수준이 아니라, 죄에 빠져 죽었던 자를 “은혜로 건져내신” 구원의 사건에 대한 감격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모두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세상 풍습과 공중 권세에 붙들려 허우적대며, 결코 스스로구원에 이를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내어줌을 당하심”으로써 인간은 “값 없이” 구원받았으며, 그 결과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생명으로 다시 일으킴을 받았다. 여기에 대한 감사가 곧 찬양이 된다.

또한 이 은혜를 경험한 자들은 감사의 태도로 세상을 섬기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에베소서 2장 10절의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는 부분을 언급하며, 감사와 찬송은 결코 입술의 고백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해석한다. “죄인의 괴수”였던 사도 바울이 그 은혜를 깨닫고 온 인생을 다해 복음을 전한 것처럼, 현대를 사는 성도들 역시 “자신의 과거 죄악에서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이제는 선을 행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우고, ‘그리스도와 함께’ 권세를 받았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삶이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결국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따라 선을 행하게 함이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고 결론지어 말한다.

결국 에베소서 2장은 우리에게 한없는 감사와 찬송을 불러일으키는 ‘은혜의 장(章)’이다.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살아 있다고 여기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죄로 인해 죽어 있는 상태였다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생명을 얻었으니 “새롭게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교훈을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에베소서가 들려주는 복음의 선포”이며, 또한 “장대하고 심오한 하나님의구원 계획을 실천적으로 이해하는 열쇠”라고 요약한다. 과거에 죄로 인해 궤도를 이탈해 죽어 있던 자들이,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물로 지음받아 선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와 소명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붙들 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사단의 권세가 커 보일지라도, 역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된 미래”를 향해 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처럼 장재형목사는 에베소서 2장을 통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아 하늘에 앉히워졌다”는 복음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노래와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찬양과 감사가 교회 공동체를 더욱 영적으로 건강하게 만들고, 나아가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목표로 전진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늘 이 메시지를 전하면서, “우리가 배를 타고 가는 종착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되고, 낡은 역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끝이 나며, 새로운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흔들리지 말라. 은혜로 구원받은 너희는 선한 일을 하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존재가 되라”라고 결론지어 권면한다.

장재형목사가 전하는 에베소서 2장의 메시지는 곧 교회의 정체성과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작업이다. “너희가죽었었다, 그러나 이제 산 자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 받았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선을 행하도록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 핵심에서 나온 감사와 찬양, 그리고 확신이 우리의 삶 전반을 새롭게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 위에서 세상을 향한 복음의 증언이 된다고 장재형목사는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이렇게 본다면, 에베소서 2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펼쳐진 ‘죽음에서 생명으로, 진노에서 은혜로’ 옮겨진 모든 사람의 고백이요 간증이 된다. 그리고 그 최종 목적지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확고한 비전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는 모두 이 장대한 역사의 행진에 참여하는 특권을 부여받았으며, 그로 인해 찬송과 감사가 마땅하다는 결론이, 장재형목사가 풀어낸 에베소서 2장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인 것이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 – 장재형(장다윗)목사

에베소서 4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라고 선포한다. 이는 교회가 왜 그리스도의몸으로서 하나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구절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본문을 해석하며, 교회가 다양한모습과 문화를 품고 있을지라도 그 근원이 오직 그리스도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몸이 하나라는선언은 단순히 조직이나 제도상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영적·실질적으로 “연합”된다는본질을 보여준다.

1.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 됨의 기초”

이 연합은 외적인 형태나 특정 공동체만의 색깔을 주장하는 것과 다르다. 바울은 “성령이 하나”임을강조함으로써, 교회 내 모든 성도의 궁극적 출발점이 어디인지 분명히 한다. 우리가 교회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자체가 성령께서 각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이끄시고 그분의 몸 안에 들어오게 하셨음을 뜻한다. 그결과, 어느 누구도 교회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독점하거나 우위를 주장할 근거가 없고, 한 몸 안에서 함께성장하는 동등한 지체라는 본질을 받아들여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다는 이 개념이 다양성의 무시나 획일적 일치를 의미하지 않는다고설명한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은사와 사역을 조화롭게 엮어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이 핵심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교회에도 다양한 지체가 있다”고 언급한 사상과도상통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통해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각자의 위치와 사명을 온전히 인정받고, 서로경쟁하기보다는 상호 의존함으로써 진정한 하나 됨을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에베소서 4장 4~6절을 보면 몸·성령·소망·주·믿음·세례·하나님 등 일곱 가지 ‘하나 됨’의 근거가 제시된다. 몸이하나, 성령이 하나, 소망이 하나, 주가 하나, 믿음이 하나, 세례가 하나, 하나님이 하나. 바울은 이를 통해 교회가분열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나의 공동체임을 설명한다. 장재형 목사는 “바울이 이렇게분명한 기초를 제시했음에도, 교회는 여러 사소한 문제와 역사적·문화적 차이로 인해 분열을 반복해 왔다”고지적하면서, 오직 복음의 근본을 붙드는 것만이 참된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교회가 하나 됨을 유지하기 위해 피해야 할 위험 요소 중 하나는 세속화이다. 20세기 후반부터 각종문화적·사상적 흐름이 교회에도 파급되면서, 한편으로는 교회가 복음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한다는열정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세속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생겼다. 장재형 목사는 “세속화신학”이 모두 그르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적 관점”을 긍정적으로수용하되, 복음의 본질이 희석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가 지나치게 폐쇄적이거나 자기 배타적 형태를 취해도 문제가 된다. 특정 교단이나 신앙 전통만이 완전하고옳다고 주장할 때, 복음의 본질과 하나 됨의 정신은 무시되고 외형적 기준만을 내세우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장재형 목사는 그러한 편협성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에베소서 4장에 제시된 ‘일곱 가지 하나 됨의 근거’를날마다 되새길 것을 권면한다.

교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역사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통일되어,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임하는 데 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시작이자 마침이시라는 것을 믿고 고백한다면, 교회는그 방향을 더 선명히 드러내야 한다. 우리가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것은 단지 교회 안의 화합을 위해서만이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예비하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칼과 창이 낫과 보습으로 바뀌는 진정한평화와 회복은 이 땅의 어떠한 제도나 인간적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이 신자들을하나로 묶고 세상으로 흩어 보낼 때, 그 나라가 확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으로서, 동시에 복음 전파와 봉사를 통해 세상에 소금을 뿌리고 빛을 비추는‘파송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는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은혜를 경험하고, 다시 세상속으로 나가 그 은혜를 나누도록 부름받은 존재”라고 강조한다. 이는 곧 “하나 됨의 이유가 교회 외부로 확장되는선교적 목적에 있음을 잊지 말라”는 점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에베소서 4장에 담긴 “몸이 하나이고, 성령이 하나이며, 소망이 하나이고, 주·믿음·세례·하나님이모두 하나이시다”라는 일곱 가지 선언을 붙드는 일이야말로 교회의 분열을 치유하고, 하나 됨을 온전히 이루며,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본질적 진리 위에교회가 다시 서면,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에서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복음의 힘과 은혜를 더욱 풍성히 맛보게 될것”이라고 말한다.

2. “은혜와 선물의 신비—값없이 주어진 구원의 본질”

에베소서 4장 7절에서 바울은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란 우리의 자격이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진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밝혀낸다.

이 은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로 마태복음 20장에 등장하는 ‘포도원 품꾼 비유’를 들 수 있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일한 품꾼도, 오후 늦게 불려와 한 시간밖에 일하지 못한 품꾼도 동일한 품삯을 받았다. 이 장면에서 오래일한 이들은 불평하지만, 주인은 “내가 너희에게 불의를 행한 것이 아니다.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준것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은혜의 세계가 얼마나 ‘불공평’하게 보일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받아 버리는” 놀라운 은혜가 무엇인지를 예수께서 설명하신것이다.

포도원 주인에 해당하는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어떠한 선한 공로도 쌓을 수 없었던 죄인에게도 동일한 구원을베푸실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야말로 “은혜의 대반전”이며, 구원을 자격으로 환산하려는 인간의 모든오만한 시도를 일거에 부정한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의 결과’로 믿는다면, 그것은 이미 복음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charis)라고 불리는데, 이는 신약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하나님의 일방적호의를 의미한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값을 치르지 않는다. 오직 베푸는 이의 호의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뿐이다. 마태복음 20장의 비유뿐 아니라,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 역시 이를 잘 그려낸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방탕하고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가 조건 없이 환대하고 잔치를 베푸는 모습은 그 어떤 상황에서든 ‘돌아오기만하면’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상징한다.

교회는 이런 은혜를 모르는 이들이나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동시에 스스로도 그 은혜 안에머무름으로써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이야말로은혜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오직 하나님의 선물에 의지할 때 감사와 겸손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역설한다. 교회가 만약 이 은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내가 행했으므로 받는다”는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면, 그순간부터 정죄와 배제의 문화가 나타나게 된다. 이는 복음의 본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며,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왔노라”고 말씀하신다. 교회는 이런 예수님의 태도를 본받아, 세상의 모든 죄인을 향한 자비와 구원의 초청장을준비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오직 주의 은혜로 살게 되었음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복음의 증인”이라고 말한다. 결국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이유도, 모두가 은혜로 초대받은죄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배타적인 클럽이 되어서도 안 되고, 스스로를 의인으로 포장하며 세상을재단해서도 안 된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교회의 하나 됨도 마찬가지로 이 은혜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값없이 받은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더 낫다”는 자기 자랑이 사라지고, 서로를 존중하게 될 때, 교회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역사를 실제로 누리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가 접착제 역할을 하는 한 몸의 공동체가 교회”라고가르치며, 은혜의 신비가 사라지면 곧 갈등과 분열이 시작된다고 덧붙인다.

이렇듯 은혜에 대한 자각이 깊어질수록, 교회와 성도들은 자신을 높이는 대신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게 되고, 어렵고 힘든 영혼들조차도 함께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용량이 커진다. 포도원에 오후 다섯 시에 들어온품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호의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했다는 사실을기억한다면, 교회 안에는 결코 서열이나 차별이 자랄 자리가 없다.

3. “다양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일성—은사의 목적과 직분”

에베소서 4장 8절에서 바울은 시편 68편을 인용하여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구절을 언급한다. 이는 구약에서 전쟁에 승리한 장수가 전리품을 얻게 되고, 그것을 나누어 갖는 장면에서 따온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바울은 이걸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낮아지시고(성육신과 고난), 죽음을 통해 승리하신(부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 오르사 교회에게 은사를‘전리품’처럼 분배하셨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의 사역이 곧 주님의 승리에서 비롯된 결과”라고강조하며, 하나님이 교회에 은사를 주심은 인간적 자격과 능력에 근거한 게 아님을 상기시킨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임하실 때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모습이 은사의 다양성을 잘보여준다. 고린도전서 12장, 로마서 12장,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는 은사들이 다채롭게 언급되는데, 이러한다양성은 교회 안에서 상호 보완을 통해 더 큰 통일성을 이룬다. 장재형 목사는 “은사의 목표는 교회를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하게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바울은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라는 다섯 가지 대표 직분을 언급한다. (일부 학자들은 목사와 교사를 묶어 네 가지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장재형 목사는 초대 교회 당시의 상황을반영하지만, 본질적으로 오늘날 교회도 이 다섯 직분이 제시하는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설한다. 사도는개척하고 파송되는 자,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자, 복음 전하는 자(전도자)는 곳곳에 복음을 퍼뜨리는자, 목사는 양을 돌보는 자, 교사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각각 지칭한다.

이 직분들 중 어느 것도 우열이 없으며, 모두가 귀하다. 교회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은사를 가지고 섬기는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이것을 바울은 “몸의 다양한 지체”에 비유했다. 눈과 손, 발, 귀 등 각 지체가 서로 다른기능을 담당하지만,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온전한 몸으로서의 활동이 제한된다.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획일성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통해 풍성한 하모니를 이룬다는 데 진정한아름다움이 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서 바울은 은사를 주신 목적을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세우려 하심이라”고 요약한다. 이를 조금 더 풀면 첫째,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이 교회의몫이다. 헬라어 ‘카타르티스모스’가 지닌 “꿰매고 교정한다”는 의미처럼, 교회는 죄와 아픔으로 갈라진 영혼들을보살피고 수선하는 작업에 부름받았다. 둘째, 그 회복된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 봉사와 섬김을 실천하도록준비시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예배하고 교육받은 성도는, 세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약자들을돌보고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 셋째, 그 모든 활동의 최종 목표는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견고히 세우는데 있다. 교회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며,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인 동시에 파송된 공동체이기도 하다.

장재형 목사는 “성도들이 은사를 제대로 발견하고 활용하도록 돕는 일이 교회 리더십의 핵심 과제”라고 말한다. 은사는 때로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되면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어떤 성도가 “내 은사가 더영적이다”라며 우월감을 갖거나, 반대로 “나는 눈에 띄는 은사가 없으니 쓸모없다”고 낙담하면, 교회는 건강한기능을 잃고 만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눈이 손에게, 손이 발에게 우열을 논할 수 없음을 언급한 이유가바로 이것이다. 교회 안에서 각 은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개인의 명성과자부심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은사를 나누고 협력하는 교회 문화를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호 존중과 겸손”이 필요하다. 특히 현대 대형교회나 복잡한 구조를 가진 교회에서는, 주목받기 쉬운 은사와 그렇지 않은 은사 간의 간극이 크게 벌어질 수있다. 그러나 서비스팀, 행정팀, 재정팀, 주차 안내 봉사, 각종 돌봄 사역 등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있는 이들의헌신 없이는, 결코 교회가 온전히 운영될 수 없다. 장재형 목사는 “서로 다른 은사를 발견하고 인정하며 함께협력할 때, 세상은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해 있다는 사실을 엿보게 된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은사가 다양해도, 그 목적과 방향이 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다면 오히려 교회는 더 온전한 통일성을이룰 수 있다. 이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야말로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제시하는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이며, 장재형 목사가 끊임없이 설파하는 교회론적 핵심이다.

4. “교회의 참된 사명—세상 속으로 파송된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장재형 목사는 교회의 방향성을 논할 때 자주 “In and Out”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교회가 모이는 것(In)과흩어지는 것(Out)의 두 가지 축을 균형 있게 잡고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초대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내부적으로 뜨거운 예배 공동체가 되었지만, 동시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흩어져 복음을전했다. 교회가 이 두 측면 중 어느 한 쪽만 강조해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오직 안에만 머문다면 세속과단절된 종교 집단이 되고, 밖으로만 나간다면 영적 교제와 예배의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특히 20세기 중후반 ‘세속화 신학’이 대두하면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이활발해졌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도 같은 시기에 부각되었다. 이는 선교가 교회의 전략이나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이 세상에서 구원 사역을 펼치고 계신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교회는 그저‘하나님의 선교’에 초청받아 동참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바울의 에베소서 전체 맥락을 놓고 보면, 그리스도께서이미 만물을 통일하시기 위해 역사 가운데 일하신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교회가 이 사실을 깨달으면,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어느 민족이나 문화 안에서도 선포할 수 있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급변하고 있는 지금, 교회가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주장한다. 과거와 달리 다양한 인종과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 지역 안에 공존한다. 이 과정에서 갈등도발생하지만, 동시에 복음 전파의 기회도 열린다. 교회가 만약 지역과 민족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은혜와사랑으로 접근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 이는 곧 에베소서 1장10절에서 말하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우주적그리스도론과 결을 같이한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도 이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종종 교회 사명 하면 전도와 예배만을 떠올리기쉽지만, 성경은 고아와 과부, 낙은애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구약부터 신약까지 지속적으로 전달한다. 예수는 복음서에서 병든 자와 죄인들을 찾아가셨고, 초대 교회도 유무상통의 정신으로 약자들을 보살폈다. 장재형 목사는 “수직적 영성(예배와 기도)만 강조하면 세상과 분리된 종교 생활로 전락하기 쉽고, 수평적사랑(사회적 봉사)만 강조하면 영적 뿌리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교회는 이 두 축을 균형 있게붙들어야 한다.

결국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하는 공동체다. 교회가 서로 하나 되고, 각자의 은사를 최대한발휘하여 상호 보완하고, 동시에 지역사회와 열방을 섬긴다면,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구체적으로체험하게 된다. 바울이 “하나님 나라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희락이라”고 했던 말처럼, 교회는 이 세 가치(의·평강·희락)를 삶으로 드러내야 하는 증인이다.

장재형 목사는 가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세속적 표현을 빌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이세상 구조도 결국 ‘새 하늘과 새 땅’ 앞에서 해체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는 종말론적 확신을 자주전한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거나 더디게 느껴도, 하나님 나라는 이미 도래하고 있고 또 결국 완성에 이를것이다. 교회는 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세상 가운데 조금씩 펼쳐 보이는 모델 하우스 같은 역할을 맡았다.

이처럼 교회가 은혜에 기초하고, 다양성 속 통일성을 추구하며, 세상으로 파송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실천할 때, 비로소 주님의 몸으로서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하나 됨과 거룩함을 교회 안에만 가두지 않고, 세상속에 해방과 치유와 축복의 통로로 가져가는 것이 참된 교회의 사명이다. 장재형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때때로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지만, 에베소서 4장의 교훈, 즉 통일성과 다양성, 은혜와 선물, 그리고 파송된 공동체라는본질을 재발견함으로써 다시금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써 나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

결국 교회는 구원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이자, 세상에 흩어진 하나님의 나라의 전초 기지이다. 값없이 받은 은혜로하나 되어, 서로 다른 은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아픈 영혼을 치유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포도원에 초대받은 품꾼들이며, 결코 자격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 은혜 덕분에 자리를 얻은사람들이다. 그 은혜의 힘으로 교회가 세상을 섬길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엿보고, 장차 완전하게임할 그 나라의 아름다움을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놀라운 복음적 순환이 멈추지 않을 때, 닭의 모가지를비틀어도 새벽이 오듯,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더 선명히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