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고난 -장재형목사

1.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간 배경

요한복음 18장 12-22절에 등장하는 예수님이 체포되어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려간” 사건은 복음서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이 본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유대 종교 권력의 속성,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 예수님께서 겪으신 불법적이고 부당한 심문, 제자들의 두려움과 실패,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명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장재형목사가 여러 설교와 강의를 통해 강조해 온 ‘종교 권력의 부패와 그 속에서 여전히 이어지는 구원의 역사’라는 관점은, 이 사건이 단순히 2,000년 전 일어난 종교재판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상당히 깊은 교훈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예수님이 체포되신 후, 군대와 천부장, 그리고 유대인들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결박하여 곧바로 안나스에게 데려간 것은 그 자체로 여러 의미심장한 문제점을 노출한다. 당시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를 보면 예수님이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서 심문받으시는 장면이 주로 강조된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먼저 안나스에게로 연행되었다는 점을 추가로 언급함으로써, 그 재판 과정이 매우 불법적이며 배후에 거대한 종교권력이 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대제사장은 본래 종신직이었지만, 이 시대에는 로마 제국이 유대 땅을 지배하고 있었고, 돈과 정치적 결탁을 통해 대제사장직이 자주 교체되는 부패가 일어났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안나스였다. 안나스는 A.D. 6년부터 15년까지 9년간 대제사장을 지냈고, 이후 자신의 다섯 아들에게도 연이어 대제사장직을 세습시키며 그 막강한 영향력을 지속했다. 그뿐만 아니라 안나스는 사위인 가야바가 공식적인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도 여전히 막후 실력자로 군림했는데, 요한복음 18장 13절이 바로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이 이에 부합한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대목에 주목하며, 겉으로 드러난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지만 예수님을 잡고 심문한 실제 배후에는 안나스라는 거대한 종교적 카르텔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안나스가 예수님을 먼저 자기 집으로 데려오도록 함으로써, 합당한 절차나 공식적 자리(산헤드린 공회에서의 공적 재판) 대신 사적이고 은밀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심문하려 했다. 이는 율법에 충실해야 할 대제사장 가문이 스스로 율법을 파괴하며, 야음(夜陰)에 음모를 꾸민 부패상을 보여준다. 유대율법에 따르면 산헤드린 재판은 야간에 열 수 없었으며, 반드시 성전 뜰에서 하도록 규정되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율법을 아주 철저히 지키는 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이 체포된 밤에 곧바로 심문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율법을 공공연히 깨뜨린 사건이었다.

문제는 이 재판이 단순히 밤에 열렸다는 절차적 하자가 아니라, 예수님께 적용하려던 죄목이 애초부터 억지였다는 데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여러 번 함정에 빠뜨리려 하거나 신성모독죄로 몰고 가려 했다.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 부른 것(요 2:16),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요 2:19),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신 것 등은 그들에게는 결국 십자가형에 처해야 할 빌미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은 언제나 공개적으로 가르치셨고, 은밀한 조직이나 거짓 교리를 전파한 적이 없었다. 바로 그런 점을 요한복음 18장 20절에서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이라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안나스는 예수님을 은밀히 불러내어 “네 제자들과 네가 가르치는 교훈이 무엇이냐?”(요 18:19)라고 묻는다. 이는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예수님에게서 어떤 ‘신성모독의 증거’를 끄집어내려는 질문이었다. 복음서에 따르면, 유대의 공적 재판에서는 반드시 두 명 이상의 일치하는 증인이 필요했고, 거짓 증언이나 강압적 증언은 무효였다. 게다가 현직 대제사장이 아닌 안나스가 예수님을 신문할 권한 자체가 없었으며, 또 재판 장소가 성전 뜰도 아니었다. 정식 산헤드린 회의도 열리지 않은 시점에서 예수님이 결박된 채 밤에 안나스 앞으로 끌려간 것은, 명백히 법과 율법을 무시한 사건이었다.

이 지점에서장재형목사는 “안나스가 곧 부패한 종교 권력의 실체이며, 그의 내부에 자리한 죄성은 성전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들었던 근본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안나스 가문이 장악했던 성전은 ‘제물을 팔아 이윤을 취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되었다. 성전 밖에서 흠 없는 제물을 사왔음에도 불합격 판정을 주고, 성전 안에서 비싸게 파는 제물만 구입하도록 유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는 부당한 부담을 지우고, 대제사장 일족이 거대한 이익을 챙기도록 만들었다. 예수님은 이런 부패를 뒤엎기 위해 성전을 정화하셨고, 결국 그 종교 권력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없애려는 음모가 꾸준히 진행되었고, 그 절정이 바로 이 밤의 체포와 신문이었다.

또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요 11:50)는 가야바의 말은, 정치적·종교적 목적을 위해 예수님을 희생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공동 음모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음모의 배후에서 모든 실질적 권력을 쥐고 흔든 이가 안나스였다는 것이다. 결국 안나스에게 먼저 예수님이 끌려갔다는 사실은, 십자가의 비극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종교권력의 은밀한 부패가 뿌리 깊었음을 드러내고, 예수님이 가시밭길을 홀로 걸으실 때 어떤 악의 연대가 작동했는지를 고발하는 장면이 된다.

이어서 본문은 시몬 베드로와 대제사장과 아는 다른 제자가 예수를 따르다가,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를 이끌어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가게 해 준 상황을 설명한다(요 18:15-16). 여기서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이 제자가 누구인지는 본문에서 명시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는 요한 자신일 가능성, 혹은 다른 친분이 있는 제자라는 견해가 있지만, 일각에서는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의 개연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두 명 이상의 증언이 있어야 하는 재판 절차’에서, 예수님 편에서 증언해 줄 수 있는 제자가 필요한 순간이었음에도, 베드로는 두려움으로 인해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요 18:17)고 부인한다는 점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부분에서, 베드로가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며 그분 곁을 지키고자 했던 ‘용기’ 자체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주님을 부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증인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미 가야바 혹은 안나스 측은 ‘유다’라는 내부자를 통해 예수님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하고 있었다. 공정한 재판이라면 유다의 말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예수님을 변호할 증인이 필요했다. 그런 맥락에서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요 18:21)는 예수님의 말씀이 가진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베드로는 곧이어 세 번 부인하게 되었고, 다른 제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예수님께 불리한 증언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주님의 가르침의 진정성이 제대로 드러날 길이 막혀 버렸던 셈이다.

요한복음 18장 22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라는 폭력적 장면이 연출된다. 이는 예수님께서 안나스의 불법적인 심문에 합법적 절차를 환기시키자, 그 자리에 있던 하속이 예수님을 때리며 모독하는 모습이다. 율법과 진리를 지켜야 할 자리에서, 종교지도자와 그의 하수인은 오히려 폭력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장재형목사는 “진리가 부재한 자리에 폭력이 난무한다”고 분석한다. 오직 거짓과 음모, 부패로 얼룩진 상황에서, 예수님은 묵묵히 그 ‘불법 재판’의 수모를 감당하셨고, 곧 이어 가야바, 빌라도에게까지 끌려가 십자가형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과정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완성하는 여정이었다는 사실이 복음서 전체에서 드러난다.

안나스에게로 먼저 끌려간 사건이 담고 있는 교훈은, 한편으로는 성전을 ‘하나님의 전’이 아닌 ‘돈과 권력의 장’으로 만든 종교적 타락의 무서움을 일깨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극심한 부패 구조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으시고, 종국에는 십자가의 길을 감당하셨다는 진리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개인의 구원 이야기를 넘어 공동체의 갱신과 회복, 나아가 참된 성전(주님의 몸)으로서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과정이었다는 점은 이후 초대 교회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장재형목사는 이 본문의 해설에서 늘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님을 본받아 “어떠한 구조적 불의와 타락 앞에서도 진리를 선포하고자 하는 담대함이 필요함”을 역설해 왔다. 동시에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자칫 ‘안나스의 길’을 걸어가면서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하고 권력과 탐욕에 물들 위험성도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 모든 맥락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예수님을 통해 ‘헌 성전’이 무너지고 ‘새 성전’이 세워지는 구도다. 예수님이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신 말씀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권위에 대한 단순한 도전이 아니었다. 본래의 성전 제도가 죄악과 탐욕으로 오염되었기에, 예수님이 친히 ‘새로운 성전’으로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죄를 속량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참된 예배와 구원의 길을 여신 것이다. 바로 이 메시지가 요한복음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이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유대 지도자들과 부딪친 근본 원인이다. 안나스는 자신과 일족(一族)의 이익과 기득권을 위해 성전을 유지하려 했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새 성전의 비전을 인정할 수 없었다. 요한복음 18장 12-22절은 그 어그러진 대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되, 그 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계획임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처럼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려간” 본문은 한없이 부패한 종교 권력의 민낯, 진리이신 예수님의 흔들림 없는 태도, 두려움 속에서 무너지는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그 모두를 초월하여 진행되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교차하며 드러나는 장면이다.장재형목사는 이러한 본문의 영적 의미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되짚으며, 오늘날 교회 공동체가 겪는 내부적 부패와 권력화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함을 권면한다. 특히 예수님께서 마지막까지 참혹한 고통과 모욕을 묵묵히 견디시면서도, 한마디 한마디로 율법의 정당성을 되짚고, 종교지도자들의 불법을 정확히 드러내신 장면은, 세상 권력 앞에 굴하지 않고 진리를 지키는 길을 따르라고 우리에게 초대한다. 나아가 성도들은 베드로처럼 실패와 부인의 자리로 떨어질 수 있지만, 결국 주님의 사랑과 회복의 손길을 통해 다시금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묵상하게 된다.

결국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안나스, 가야바, 빌라도로 이어지는 불법 재판의 굴레를 통과하심으로써, 십자가 사역을 온전히 이루시는 길의 시작점이 된다. 안나스에게 먼저 잡혀가심으로써, 예수님은 거짓 종교 권력의 본질을 조목조목 폭로하셨고, 동시에 성전과 예배의 참 의미를 다시 일깨우셨다.장재형목사는 “이 땅에 속한 어떤 권력도 진리를 막을 수 없으며, 진리는 그 어떤 억압과 폭력 속에서도 끝내 빛을 발한다”는 점을 이 본문을 통해 설파한다. 안나스가 막후에서 획책한 불법 심문과 거짓 음모는 오히려 주님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더욱 극명히 드러냈다. 그리고 그 결론이란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고, 예수님은 승리자이시다”라는 복음의 선포다.

따라서 첫 번째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간 종교·역사적 배경과 본문의 심층적 의미”는, 단순히 배경사를 나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속에서 작동하는 악한 권력과 부패를 직시하며, 주님이 이를 어떻게 상대하셨는지를 주목함으로써 오늘의 교회와 성도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게 한다.장재형목사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예수께서 철저히 당하신 고난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타락한 성전을 허무는 과정이었으며, 결국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온전한 구원을 이룩하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 구원은 2,000년 전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다시금 새롭게 체현되어야 한다. 곧, 우리 자신과 교회가 ‘안나스와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예수님의 길’을 좇아 부패와 거짓을 버리고 진리와 공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2.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안나스 앞에서 시작된 불법적 심문은 결국 가야바를 거쳐 빌라도 법정에 이르러,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선고받는 국면에까지 치닫는다. 그러나 복음서는, 이 고난이 단순히 종교적·정치적 음모의 희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이루는 결정적 통로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고난의 이야기는 교회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다시금 예배와 성전의 의미, 권위와 진리에 대한 태도, 그리고 제자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묻는 준엄한 목소리가 된다.장재형목사는 바로 이러한 교훈이 요한복음 18장 12-22절 이후로 이어지는 “십자가 길”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즉, 안나스의 뜰에서부터 이미 예수님은 고난받는 메시아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셨고, 그 고난이 곧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복음서 전체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첫째로, 예수님의 고난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사건이자, 동시에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안나스가 취한 불법 재판, 가야바의 음모, 빌라도의 우유부단 등, 인간의 악과 어리석음이 극단으로 치닫는 국면에서조차 하나님의 뜻은 결코 좌절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내가 말하였노라.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요 18:21)며 담대하게 대응하셨지만, 곧이어 주님께 가해진 것은 모욕과 폭력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메시아가 왕이시면서도 고난의 종으로 오실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 53장 등)을 상기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힘으로 이 악을 무너뜨리시는 분이 아니셨다. 오히려 스스로 종의 모습이 되셔서, 부패한 종교지도자와 세상의 권력 앞에서 침묵 가운데 고난을 받으셨고, 그 길이 곧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의 길이 되었던 것이다.

둘째로, 이 고난은 성전 제도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 그분이 “참된 성전”임을 드러낸다는 점이 요한복음에서 매우 강조된다.장재형목사는 “안나스가 장악하고 있던 그 낡은 성전 체제, 즉 동물 희생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구약적 제사 시스템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새롭게 갱신되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예수님의 죽음 직후,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마태복음의 기록(마 27:51)은 구약적 희생 제도의 종결과 예수님을 통한 직접적이고 참된 예배의 길이 열렸음을 상징한다. 이처럼 “안나스의 성전”은 결국 무너지고, “예수님이 친히 성전 되시는” 은혜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을 거부한 종교지도자들처럼, 지금의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진정한 임재보다도 자신들의 전통이나 권위를 더 우선시한다면, 안나스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셋째로, 베드로의 부인을 통해 드러나는 제자들의 연약함은 오늘 우리에게도 거울이 된다. 인간은 아무리 충성을 다짐해도, 혼자 힘으로는 극한의 두려움과 위험 속에서 예수님을 증언하기가 쉽지 않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고, 수제자라는 명예를 누렸으며, 심지어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자를 만큼 과감했다. 그러나 막상 안나스의 뜰에서,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라는 질문 한 마디에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만다(요 18:17).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에서 “베드로의 내면을 헤아려 보면, 그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 알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인간적인 두려움에 휩싸였는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베드로가 이 부인의 죄를 끌어안고 통곡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디베랴 바닷가에서 그를 회복시키셨다(요 21장). 이는 제자가 비록 깊이 실패하고 넘어질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그를 붙잡고 다시금 제자로 세우신다는 소망의 메시지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신앙 생활 속에서 “때로는 예수님을 모른다”는 태도나 말로 부인할 때가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서는 자를 주님은 한없이 받아주시고, 다시금 큰 일을 맡기신다.

넷째로, 이 본문은 교회 공동체가 세상 권력과 맺는 관계, 그리고 내부적 권위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부패하고 타락한 안나스와 그 일족은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욕심의 방편으로 삼은 자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거짓 종교심과 막대한 부로 성전을 오염시켰다. 예수님은 이들과 타협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성전을 정화하시며 진리로 그들의 죄를 고발하셨다(요 2장). 교회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때로는 세상의 권위(정치, 경제, 문화 등)와 부딪히거나 협력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 그러나 교회가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안나스 일가처럼 “거룩한 외양”만 취한 채 실상은 이익과 권력에 영합한다면, 오늘날 다시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장재형목사는 여러 설교에서 “교회의 순수함과 투명성,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며, 성도 각자가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하여, 결코 교권주의나 세속적 욕망으로 복음을 가리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다섯째로, 예수님의 고난은 결국 ‘승리의 관문’이 된다. 안나스의 음모, 가야바의 재판, 빌라도의 심문을 거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실 때, 이미 사단과 죄의 세력이 패배하였음을 의미한다.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생명의 능력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 교회 시대를 여셨다(요 20장). 이는 종교적·정치적 권력이 협잡하여 예수님을 죽였지만, 참된 진리는 결코 꺾이지 않고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 본문을 대할 때, 우리는 단지 예수님의 수난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이 우리를 위한 대속의 희생이며, 결과적으로는 보화(寶貨) 같은 부활의 소식을 안긴다는 점에까지 시선을 확장해야 한다.

결국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부패한 종교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진정한 예배와 신앙이란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베드로의 부인”과 “제자들의 도망”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되,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고 용납하셨듯이, 실패한 자라도 주님께 돌아오면 새롭게 쓰임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인용할 때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철저히 주님의 은혜로만 회복되고 재무장될 수 있으며,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역설한다. 그분만이 우리의 기틀이자 반석이 되시므로, 어떤 인간적 실수나 부패, 악행이 일시적으로 발호할지라도, 결국 진리의 길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종교적 시스템과 충돌하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예수님은 성전을 뒤엎으신 사건(요 2:13-22)을 통해, 성전이 본래 목적을 상실하고 장사치들의 소굴이 되었다면 단호하게 바꿔야 함을 보이셨다. 그 결과 종교 권력에게 미움과 박해를 받으셨으나, 결코 주저하지 않으셨다. 교회가 ‘개혁’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바로 이런 예수님의 결기를 떠올려야 한다. 안나스 같은 부패 지도자가 자리하고, 그 주변에 간신배와 부당한 하수인이 가득하다면, 교회는 스스로를 갱신하고 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철저히 복음과 진리의 능력,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적인 수단만으로는 교회의 타락을 막기 어렵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개혁이 추진될 때, 그 길은 힘들고 외로워 보여도 궁극적으로 승리로 귀결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의 빛을 비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안에서부터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만일 교회 내부가 타락하고, 지도자들이 욕심과 권력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곳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변질되기 십상이다. 그 결과, 세상은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복음 전파의 문이 막히게 된다. 안나스에게 붙들린 예수님의 모습을 생생히 묵상하면, 교회의 부패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깨닫게 된다. 주님이 직접 도마뱀 굴 같은 성전 기득권자들의 손에 넘겨지셨듯이, 오늘날도 교회 안에 도사린 욕망은 스스로 교회를 병들게 하고, 세상을 향한 교회의 선한 영향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가장 우선적인 표준으로 삼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대제사장이나 권위자에게도 타협하지 않으셨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집중하셨다(요 4:34). 오늘날 교회가 전통이나 인간 지도자의 지시에 매몰되어, 성경의 본래 정신과 벗어난 길을 걷고 있다면, 과감히 되돌아와야 한다. 

둘째,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며 공동체적인 회개가 필요하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완전히 변했던 모습(행 2장)은 교회가 살아나는 핵심 동력이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교회가 인간적 계획이나 프로그램보다 성령의 역사에 민감해지고, 죄를 회개하며 돌이킬 때, 생명력이 넘치는 공동체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셋째, 서로를 정죄하거나 상처 주는 일보다, 말씀의 진리에 근거한 사랑과 돌봄을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요 13장)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신 것은,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이 사랑에 있음을 분명히 하신 행동이다. 안나스 같은 폭정형 리더십과는 정반대로, 예수님은 종이 되신 리더십의 본을 보이셨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권력을 쥐고 남을 지배하려는 태도는 예수님의 본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넷째, 교회 재정이나 권한구조 등 제도적 측면에서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고대 성전에서 제물을 사고파는 행위를 악용했던 안나스 일가는, 거짓 관행을 제도적으로 고착화시켜 큰 이득을 취했다. 교회 역시 예산·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으면, 권력과 부를 탐하는 자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고, 결국 내적 부패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적·영적 차원의 개혁을 통해, 교회는 다시금 진정한 예배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예수님이 “은밀하게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다”(요 18:20)고 당당히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 역시 공의롭게 행하고 빛 가운데 일해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세상의 비난과 의심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제자들이 결국 두려움을 벗고 오순절 이후 용감하게 복음을 전파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진정한 도구로 쓰임받게 된다.

요한복음 18장 12-22절에 담긴 예수님의 고난 이야기는 단지 1세기 유대교의 부패만을 탓하며 끝낼 일이 아니다. 안나스가 보여 준 부패와 왜곡된 종교 권력의 작동 방식은 시대를 초월하여 되풀이되는 인간 죄성의 대표적 사례다. 교회사의 여러 어두운 국면에서, 그리고 오늘날도 세계 각지의 교회나 종교 조직 안에서 “안나스 유형의 지도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 자신 역시 부패한 시스템에 가담하고 있지 않은지, 예수님의 진리에 충실하게 서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장재형목사는 줄곧 “교회는 끊임없이 말씀 앞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야 하며, 외형적 성공이나 수적 부흥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에 충성함이 최우선 기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동시에 성도 개인의 차원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부인”을 통해 인간적 연약함을 깊이 실감한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왔어도, 막상 우리에게 불이익이 닥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예수님을 부인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도사린다. 그렇기에 우리의 힘과 결심만으로는 온전한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회복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점에서 베드로는 우리의 자화상이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다시 사명을 맡기시는 장면(요 21:15-17)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된다. 설령 우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다 해도,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주님은 그 부인을 책망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다.

결론적으로,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요 18:13)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 고난 서사의 시작이며, 동시에 기득권 종교권력의 사악함과 예수님의 참된 권위가 극명히 대비되는 결정적 장면이다.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통찰하며, 교회와 성도가 예수님의 길을 본받아 구조적 부패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진리를 증거해야 하며, 부패한 모습을 발견할 때에는 성전정화의 심정으로 회개와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예수님이 보여 주신 고난의 순종이야말로,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서의 사명 완성의 길이었으며, 이 길이 궁극적으로는 부활과 승리로 이어진다는 복음의 소망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예수님이 불의한 재판을 당하시는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사건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십자가는 단순한 처형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되 죄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절대적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어떤 인간 권력도 가로막을 수 없었다.장재형목사가 거듭 강조해 온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기독교의 구원 메시지는 완성될 수 없고,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죽음은 비극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핵심 축을 이루며, 이 사건을 통해 인류가 새 생명과 영원한 소망을 얻게 되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안나스와 같은 부패한 영적 리더십을 경계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십자가 복음을 지키고 전파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부당한 모욕과 고통 속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진리를 주장하셨던 장면을 기억하면서, 세상과의 타협과 자기합리화를 부숴 버리고, 성령 안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살아 내야 한다. 그리고 혹여 실패하거나 두려움에 져서 주님을 부인한 자들이 있다 해도, 베드로가 다시 일어섰듯이, 누구든 회개하고 주님께 나오면 새 출발이 가능하다는 소망을 붙드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요한복음 18장 12-22절의 사건은 우리에게 여러 차원의 성찰을 제공한다. 부패한 종교권력의 민낯,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걸어가신 예수님의 고난과 담대함, 연약한 제자들의 실패와 회복, 그리고 ‘헌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여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함께 어우러진 텍스트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을 통해, 교회란 오직 예수님을 머리로 삼아야 하며, 어떤 인간 권위도 진리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재차 깨닫게 된다. 또한 믿음생활에서 실패와 부끄러움이 있을지라도, 주님의 사랑과 성령의 임재 안에서 우리는 다시금 일어설 수 있다.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 고난의 길이지만 동시에 부활의 길,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는 길이기에, 성도와 교회도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 거해 모든 세속적·종교적 부패를 뛰어넘는 영적 승리를 누릴 수 있다”고 요약한다. 이것이 곧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라는 본문이 지금도 우리에게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유다. 그 길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늘 기억하며, 오늘의 시대 속에서 복음의 빛을 계속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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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帝的忿怒与救恩的必要性 —— 张大卫牧师


Ⅰ. 上帝的忿怒的不敬虔·不

罗马书1章18-19节的经文,是使徒保罗在《罗马书》正文开篇时提出的关键内容,讨论了人类所处的罪之现实以及上帝对此所发的忿怒。张大卫牧师在多次讲道和释经中强调,这段经文是理解《罗马书》整体结构和救恩论的重要基础。事实上,阅读《罗马书》时,会发现福音宣告的顺序是先提到“罪”,然后再具体介绍“救恩”。这不仅是一种结构上的特点,更表明了要正确理解福音,就必须先明确认识罪的真相,以及人类为何是必须要接受救恩的存在。

使徒保罗针对当时居住在罗马城的诸多外邦人写下了这封书信,而罗马在当代既是文明与世俗繁荣的象征,同时也是人类罪恶最腐败之相显露的代表性场所。罗马人并不承认自己是罪人,反而会以辉煌的文明、智慧、军事实力与财富为傲而不感到罪疚。他们或许会对保罗的讯息感到疑惑:“我们有什么罪?如此辉煌的罗马有什么错,需要什么救恩吗?”然而,为了说明人类为何需要救恩,保罗首先从逻辑层面展开,明确地揭示人在上帝面前究竟陷入何等罪的境地。

张大卫牧师在对罗马书1章18-19节的讲道中,尤其强调18节提到的“上帝的忿怒”既是所有罪的结果,也揭示了上帝与人之间不和谐、不和睦的状态。“上帝的忿怒”这一表达并非我们常以为的那种神发火或投射人性情感的概念。上帝是完全并善良的主;祂的忿怒并非情绪的爆发,而是基于圣洁与公义、对罪所发的正当审判。人在上帝面前“存不敬虔与不义”之心,已因罪而与祂关系隔绝,结果《以弗所书》2章3节也说,人本性是“可怒之子”。

这里所说的“不敬虔”是指违背与上帝之间垂直关系的罪,意思是人不是敬畏或敬拜上帝,而是把上帝忘在脑后、不愿把祂放在心里。与之相对,“不义”则是在人与人之间水平关系上显现的罪行——彼此伤害、压制他人、以及通过不诚实、虚伪、贪婪等种种形式体现出来。保罗在罗马书1章18节中点出“以不义阻挡真理的人”,说明这些人有意地阻隔真理,想要压制传讲真理的人,或者刻意忽视自己内在本能、良心层面对上帝的认知。

正如张大卫牧师所强调,大多数人都会害怕正视罪的问题。承认自己是罪人,意味要暴露自己的局限与羞耻,所以人本能地反驳:“为什么说我是罪人?”因此,当向人传福音时,若没有先讲清“为什么需要救恩”,仅仅宣讲“你可以得救”这一喜讯,对方往往会觉得“我不需要什么救恩”。对此,保罗详尽地讲解罪论,层层剖析人类的存在究竟与上帝的创造秩序和公义相距多远。

“上帝的忿怒显明在那些以不义阻挡真理的不敬虔和不义的人身上”(罗1:18)这一句,虽然未直接阐明罪招致上帝忿怒的具体原因,但在接下来的罗马书1章19-32节里,保罗逐步解释了罪的本质和后果。特别地,张大卫牧师在分析这段经文时指出,上帝的忿怒之所以爆发,是因为人所犯的不敬虔与不义最终会导致自我毁灭,而上帝不可能对此坐视不理。就像父母不会对孩子走上歧路听之任之,有时会愤怒、责备来纠正孩子一样,上帝的忿怒也可视为圣洁之火与爱的警告。当然,《圣经》提到“上帝就是爱”,但此爱绝非纵容或默许人继续犯罪以至自我灭亡。上帝的爱从不与圣洁分离,因此对于破坏上帝与人基本关系的罪,上帝理所当然会施行审判与忿怒。

张大卫牧师常在讲道中引用这一点:上帝是有位格的,并非像古希腊哲学中那种全知全能、冷漠无情的抽象本体。在古希腊的某些哲学体系中,神被描绘成与人类情感毫不相关的某种“至高存在”。但圣经所启示的上帝,既是创造主也是我们的父;当人沉溺在罪中时,祂会悲叹、也会愤怒。先知书如《耶利米书》《何西阿书》中,时常可见上帝对人既有嫉妒,也有忧伤和愤慨交织在一起。因为全能的上帝是以爱的关系注视着人,当这爱的关系被打破,“忿怒”就成为上帝圣洁本性与爱之本性必然的回应。

被“不敬虔与不义”概括的人类罪,若从十诫角度来看,就是对上帝的罪也可一语道破。无论世界如何进步、科技文明如何发达,人离开了与上帝的关系,都无法达成真正的善与公义。即便罗马帝国拥有强大的法律体系,并发展了斯多噶派、伊壁鸠鲁学派等多种伦理与哲学传统,仍然在最极端的程度上显现不敬虔与不义。堕落的人无法仅凭哲学知识或道德训练来解决根本问题,因为罪并不仅仅是个人越轨的问题,而是与上帝的关系断裂所导致的生存性堕落。

保罗继续说,由于这罪,“上帝的忿怒从天上显明”(罗1:18)。张大卫牧师在讲道中强调,“从天上显明”这句话,表明当人的罪累积到极点时,上帝必然会降下不可避免的审判。上帝的忍耐虽长久,也给人许多机会,但最终祂仍会以公义审判罪,以彰显自己的圣洁与正直。旧约中的挪亚洪水、所多玛和蛾摩拉的灭亡、以色列百姓被掳到外邦等,都证明上帝对罪的警告绝非空话。新约里,耶稣对末世审判的提醒或《使徒行传》中亚拿尼亚和撒非喇的事件,也同样昭示了上帝对罪的忿怒是多么严肃。

在当代,有些信徒会对“忿怒”这个概念感到不适,或者只强调上帝的爱,却把祂的忿怒忽视、扭曲。但如果对罪没有忿怒,那么实际上上帝的爱也会变得空洞。如果上帝是圣洁的,又知道罪会带给人类毁灭,却姑息或坐视不管,这就不是爱。张大卫牧师的讲道常用父母和孩子的关系作比喻:当孩子走向危险的歧途,若父母以“我们爱你”为名而完全不加惩戒,也不警告,那并不是真爱。因为明知那孩子会走向灭亡,却什么都不做。同理,上帝对沉溺罪中的人也会斩钉截铁地说“不可以”,祂给人悔改的机会,并最终对罪作出审判;这就是上帝的忿怒。

保罗所说的“外邦人的罪”,就概括了不认识上帝的世人的罪,其中聚焦在“不敬虔”上面,因为人与上帝的关系(垂直关系)的破坏,必然带来人与人之间(水平关系)的破坏。我们在社会中常见的各种不义、战争、暴力、剥削、性堕落等,最终都源于“不敬虔”。认为“没有上帝”或“不敬畏上帝”的生活方式,是一切恶行之根。在罗马书1章后半段,保罗写到:人们不是尊崇上帝,反而去拜偶像,献身于虚假的形象与理念,把自己的欲望偶像化,最终导致种种罪恶和腐败的蔓延。

张大卫牧师从这一脉络出发,教导说,教会或信徒不能回避让罪曝光。只有直面并揭示罪,人才能悔改并获得救恩。如果教会内部对罪有所掩盖,最终只会让罪根更深地发展,无论个人、国家还是社会,都是如此。掩盖罪并不是真正的爱,反而会让罪在暗处继续发酵。上帝不会对罪坐视不理,到时候就会以忿怒施以审判,圣经各处都反复警示了这一点。

从罗马书1章18节到3章20节,保罗正式展开这样的罪论。大致可分成三个部分:第一部分(1:18-32)讲外邦人的罪,第二部分(2:1-3:8)谴责犹太人的罪,第三部分(3:9-20)总结无论犹太人还是外邦人,全人类都在罪之下。结论就是,世上没有义人,连一个也没有(罗3:10)。这是为了说明唯有耶稣基督才是救人脱离罪的唯一道路,因而保罗对罪的普遍性进行彻底的剖析。

而上帝对罪的回应则是“忿怒”。我们在世间的种种“忿怒”往往混杂了人性罪的情绪,是不完全的。但上帝的忿怒则是对罪所做的公义定罪,也是为了救人而设立的圣洁之举措。张大卫牧师强调,这正是《罗马书》从开篇就讨论罪与忿怒的根本原因:唯有人认识到自身的罪,并意识到自己在忿怒之下,才会明白福音对于“凡信的人”乃是如何珍贵的“上帝的大能”。

因此,罗马书1章18节所言的“上帝的忿怒”绝非可以轻易带过之事。保罗在展开《罗马书》正论时立即提出的核心主题之一,即上帝的忿怒正降临在人的不敬虔与不义之上。在罗马时代,人们也通过宗教、哲学为自己的生活方式自我辩护,不愿认罪;当今时代也同样,现代人因科学、技术或经济繁荣会反问:“为什么我们需要救恩?”可若不知自己确实陷在罪里,自然也无法切身感受到救恩的必要。于是张大卫牧师不断提醒,这段保罗关于“上帝的忿怒”的宣告,在当今社会仍然十分迫切。

基于这样的“忿怒”,其背后便是人们“以不义阻挡真理”的具体罪行。当真理被宣讲时,人往往不是欢迎,反倒会排斥,因为真理的光照越强,罪就会越明显地暴露。那些喜爱罪的人会试图封住传递真理的口。在教会历史中,福音传播之时,常有势力予以逼迫。但即便如此,上帝的话并不会因此被阻挡,祂呼召的仆人、信心的见证人会继续宣讲福音,教会也在历经逼迫的同时守护真理并不断扩展。正如《以赛亚书》40章8节所言:“草必枯干,花必凋残,惟有我们上帝的话永远立定”,历史不断验证了这句话的真实。

另一方面,保罗当年传讲“上帝的忿怒”信息的目的,并不是要威吓众人或让他们一直陷在罪疚感中,而是为了最终呼唤:“离开罪,归向上帝”。若人不意识到罪,便绝不可能得救;因此保罗毫不犹豫地指出人的罪。如果教会回避或随意放过罪,人便不会觉得自己是罪人,也就不把救恩当回事,而福音也就沦为一种“好话”而失去真正的力量。所以初代教会和保罗一样,极为注重对罪的认知,这在今天的教会中仍然适用,正如张大卫牧师所说的那样。

总之,罗马书1章18节明言的“上帝的忿怒”,在福音中占据极其重要的位置。若要真正明白上帝的爱与救恩,就必须先正视我们人类所处的罪之现实及上帝对此的公义忿怒。若对此视而不见,我们便无法体会福音的力量与恩惠。有罪才需要救恩;不知自己有罪,就无法明白何谓救恩。

就这样,“不敬虔与不义”所引发的“上帝的忿怒”,是人单凭自身之力无法解决的根本问题。面对罪及由罪带来的上帝忿怒,人唯有通过悔改与信靠才能真正归向上帝。罗马的辉煌文明与成就无法掩盖这一问题,今天任何世俗的安稳与富足也同样不能减轻罪与忿怒的严肃性。这正是保罗想揭示的人类处境的急迫性,也是福音之所以不可或缺的原因。


Ⅱ. 人的在上帝救恩的必要性

紧接着罗马书1章18节对于人类罪与上帝忿怒的论述,1章19节说道:“因为上帝已经把可以知道的启示给他们看,上帝已经向他们显明。”令人惊讶的是,保罗宣称,不信者、尚未认识耶稣的外邦人,也已经拥有“可以知道上帝的东西”。这说明人本身与造物主上帝存在某种不可分割的关系。即使活在不敬虔与不义当中,人内心依旧保留了对上帝的某种认知与可能性。

张大卫牧师在讲道中指出,这一经文揭示了“人从出生起就本质上带有对上帝的渴望;即使因罪堕落,人并未彻底毁坏。”当然,人因罪被定为“灵性上已死”,但其内部仍存有类似于“上帝形象”碎片——理性、自由意志、道德感、宗教性等。因此在整个人类历史中,人类对于“神”或“绝对者”的探索从未停止。

保罗所说的“可以知道的”,可从两个层面解读。第一是借着“受造之物”所获得的一般启示。罗马书1章20节继续提到,上帝借着创造的自然、宇宙及其秩序,让人或多或少能感知到祂的神性与大能。四季更迭、有序的自然规律、日月星辰的运行、生命的奇妙等,都让人直觉地知道,这一切并非偶然与混沌的产物,而是出于创造主的旨意。许多哲学家或科学家也因看到宇宙的精巧与秩序,承认有某种绝对者的存在。

第二是“人内心”良知与理性层面。张大卫牧师说,人本能地会感到罪疚,会分辨善恶,也会为自己人生目的而寻求解答,这就正是对上帝的渴望之体现。很多人在生命的关键时刻会发出“我是谁?我为何而生?”这样的追问,这源于脱离了上帝的人必然感到某种灵性的空虚与不安。唯有认识上帝才能解除的“干渴”,正是人灵魂中“对上帝的本能性渴望”。正如奥古斯丁在《忏悔录》中所言:“唯有在上帝里,我的灵魂才得享真正的安息。”这样的洞见穿越时代,一直延续至今。

然而问题在于,人常常拒绝或不肯接受这一“可以知道上帝的东西”。保罗在罗马书1章21节写道:“虽然知道上帝,却不当作上帝荣耀祂,也不感谢祂。”也就是说,纵使有内心提醒,也有外在自然界的证据,人依旧因罪而变得骄傲并排斥上帝,或者用偶像来替代上帝,迷信谎言而非真理,并且自我膨胀。如此一来,不敬虔与不义就越发变本加厉。

张大卫牧师讲道时指出,人拒绝上帝的后果,就是“不安、孤独、虚无、绝望”等情绪出现。犯罪会带来良心的焦虑;试图以世俗欲望求得一时满足,也无法真正驱散那深层的虚无感。认为自己不被爱时感到的孤独感、对未来不确定性的恐惧——这一切恰恰证明,人灵魂在“失去上帝”时会陷入痛苦。因此很多不信者即使平时不承认上帝,但在深刻的苦难和思考中,还是会无意识地呼求“神”或“绝对者”。

然而真理昭示,人无法仅靠道德修炼或哲学思辨就抵达上帝——那只能在某种程度上帮助人去寻索,但若不解决罪的问题,人仍无法与上帝建立真正的关系。这就是保罗在整卷《罗马书》中反复强调的信息:罪是人自己无法解除的,唯有借耶稣基督的十字架与复活,人才能得着赦罪与称义,并且借着信心得以加入这恩典。这个救恩论是《罗马书》的核心。

因此,虽然“可以知道上帝的东西”已存在人心深处,但光凭这火苗并不能根除罪的问题,最终仍需要福音。张大卫牧师强调,为得到真正的自由、解放以及灵魂的安息,唯有接受耶稣基督的福音才行。耶稣也曾呼喊:“凡劳苦担重担的人,可以到我这里来”(太11:28);“人若渴了,可以到我这里来喝”(约7:37)。这一邀请并不需要宗教仪式或功劳的条件,只要“回到上帝面前”就好,这就是福音的中心。

但现实中,宗教本身有时也会扮演“商人”的角色,阻碍人走向上帝之路。若把救恩变成某些人为制定的条件和要求,以各种行为、仪式来强化“你要先具备什么资格才能来见上帝”的观念,这就产生了误解,与圣经教导相悖。罗马书3章24节说,我们“白白地称义,是靠耶稣基督里的救赎”。《以弗所书》2章8-9节更明确说明:“你们得救是本乎恩,也因着信;这并不是出于自己,乃是上帝所赐的;也不是出于行为,免得有人自夸。”

张大卫牧师在讲道时常引用耶稣所教的“浪子回头”的比喻(路加福音15章)来说明上帝与人的关系。那浪子只要下定决心“我要回到父亲那里去”,他并不需要先满足某些条件;父亲看见他,立刻跑来拥抱并赦免他的罪,让他恢复儿子的身份。其中并没有繁琐的程序或代价,只要回来就行。可人往往因罪疚或骄傲,以及被世上错误的宗教观误导,觉得还要再“准备一些东西”才能见上帝。

而实际上,如同本节所言,纵然是不信者,对上帝也已存有“可以知道”的部分,只要他真心向上帝呼求,上帝绝不会置之不理。正如启示录3章20节:“看哪,我站在门外叩门”,上帝先来寻求我们,只待我们开门,就能立刻领受祂的恩典以及罪得赦免与救恩的奇迹。

这也说明,人若离了上帝就会心灵干渴、不安、虚无,这正是因为人存在“属于上帝”的属性。任何世俗成就或娱乐都无法弥补这干渴。古罗马的思想家塞内加、马可·奥勒留等,极力用斯多噶哲学去寻找内在平静,可依旧无法真正解决罪的问题。保罗向这些人宣告:真正的答案就在上帝那里。

张大卫牧师说,“上帝已把这事显给他们”这一表述,也暗示上帝并不想对人置之不理,而是自始至终用各种方式向人显示自己——借着自然、良心、历史,更终极地借着耶稣基督。但是,人是否接纳或拒绝,这才是关键。

若拒绝,就如1章18节所言,人就在不敬虔与不义中持续沉沦,最终遭到上帝的忿怒审判;若接受,就能与上帝重归和好(罗马书第5章),这是救恩、人重生后拥有永生的状态。从神学层面来说,这是借基督修复了因罪破裂的关系。所以张大卫牧师常说:“当我们承认罪,并回转向上帝,就会回到本该属于上帝儿女的身份。”

这不仅仅是改变宗教归属或敬拜形式的问题,而是发自“我究竟是谁?我从何而来、又要往何处去?生命的意义与目的为何?”这样的根本觉悟。奥古斯丁那句著名的话——“我的心在未安息于你(上帝)之前便不得安息”——跨越文化与时代的界限,一直揭示了人的存在本质。人是照着上帝的形象被造的,只有在上帝之内才能找到真正的平安、喜乐、爱与意义。

然而世界却用各种替代品来诱惑人,说“这能让你满足、快乐”,比如金钱、权力、名誉、享乐、各种偶像化对象,但那些都只能带来短暂的满足,并激发更强烈的渴望,导致人继续在灵魂里漂泊。张大卫牧师说,“信仰耶稣,本是恢复真正自我的道路。”这不是加入某个宗教组织或体制,而是觉醒:“我本是谁?唯有在上帝里才能活得完全。”
因为人本就内在地带着“可以知晓上帝”的可能性,所以无论身处何地、何种文化,人类对神的探寻从未止息。有时这探寻会被扭曲、误入偶像崇拜,或受限于人自己制造的神概念。保罗因此继续呼吁:“你们所拜的各种偶像和哲学之神、帝国神格化,并非那创造天地的独一真神,要回头仰望那位真神。”

所以,罗马书1章19节:“上帝已把可以知道的事显明给他们”,一方面肯定人类内心具备宗教性与灵性,另一方面与1章18节所说的“上帝的忿怒”并列摆出,呈现出人类的两面性:一方面,人心中仍有对上帝的渴慕、良知;另一方面,人却被罪所裹挟,拒绝上帝。这可从神学角度解释为“人同时背负着原罪与上帝形象残余”。

张大卫牧师在讲道中强调,基督徒需要的态度是“责备罪,同时也看到人里头对上帝的渴慕与改变的可能性”。若我们只是一味对世人喊“你们是罪人,会下地狱”,他们就会把耳朵关起来。保罗的方法是先精准揭示罪,然后让人知道:“因为人的内心深处仍有那对上帝的渴慕,一旦归回上帝就能被更新。”这才带来盼望。人虽有罪,但也有得救的可能;而福音就是将这种可能性变为现实的唯一途径。

福音本质在于,人不必有任何自我达成的条件,只要照现状来到上帝面前,呼求耶稣基督的名,就能蒙受赦罪与永生。正如《罗马书》10章13节:“凡求告主名的,就必得救。”当人认耶稣基督为救主,罪得赦免、永生临到,就好比浪子回到父亲怀抱,罪人变为上帝的儿女。《罗马书》此后以严谨的神学逻辑,继续讲述救恩如何藉称义、成圣、得荣耀,一步步展开。但起点永远是“承认自己的罪,回转向上帝”。

同时,教会的使命相当重大。因为教会也会面临各种世俗化与诱惑,而且在教会内部也可能出现对“可以知道上帝之事”的扭曲。张大卫牧师警告,如果教会在应当宣扬真理的地方开始做生意,或追求权力,就会丧失福音的纯正与能力,也堵塞了人对上帝的渴望之路。若教会不宣讲那“白白赐下的恩典”,反而强化人要靠行为与功德来得救,就会让灵魂难以获得真正的自由。

因此教会与信徒须不断反省自己。正如保罗在罗马书第2章对犹太人说:“你这称为犹太人的,你也审判外邦人吗?你们自己也一样有罪。”若教会在责备世界的罪时,自己却深陷罪中,就成了虚伪。教会不可对罪视而不见,也不可在指出罪时只有冰冷的定罪而无爱心。教会的责任是揭示罪,引导人悔改,并最终打开得赦免与救恩之门,让福音成为桥梁。

罗马书1章19节也传达了一种盼望:“只要人敞开心扉,随时能认识上帝并归向上帝。”保罗在1章后段提到,人若放弃这盼望,继续在罪中沉迷,就会招致“上帝任凭他们”放纵情欲(罗1:24,26,28),即人最终自食其果,承担后果。拥有自由意志的人若弃绝上帝而按私欲而行,必然走向毁灭,那责任也由自己承担。

那么解答何在?保罗在罗马书3章以后明确指出:借耶稣基督的赎罪,所有罪人都可以得以称义,脱离上帝的忿怒,进入永生。那福音就是“上帝的大能,要救一切相信的人”(罗1:16)。因此,1章18-19节所带出的关于罪与忿怒的沉重主题,反倒凸显福音荣耀的大能:罪越深,人类越绝望,就越显明基督恩典是多么奇妙。

张大卫牧师在此特别强调,即使人心里“有能认识上帝的火花”,但若没有透过耶稣基督的福音,人仍无法得救。因为一般启示和良心所能做到的有限,并不能彻底解决罪。但是,正因为上帝已在我们心中放入“对上帝的本能渴慕”,当福音被宣扬时,人就能在心灵深处产生共鸣,或在罪疚感被唤醒的同时带来悔改。这样的“回转”与“归向主”,正是罗马书所谈的救恩起点。

总而言之,罗马书1章18-19节一方面指出“上帝的忿怒”,另一方面说明“人内心具备对上帝的认知”,为我们揭示:人为什么需要救恩,又如何能够得救的序曲。“不敬虔和不义”让人陷于忿怒之下,但同时“可以知道上帝的东西”在人的心里,让任何愿意回转、接受福音的人都能得救。这就是保罗在整卷《罗马书》中展开的福音精髓,也是今日依然适用的不变真理。

我们谁都无法说“我与罪无关”,人人都摆脱不了上帝忿怒的威胁。然而,我们之所以还能怀抱希望,是因为上帝已在我们内心深处预留了认知祂的线索,并透过耶稣基督的福音彻底敞开归回之路。当我们领悟到这点,才真正找到“真实的我”,并在与上帝关系和好时,才能抓住人生的目标与意义。

张大卫牧师经常强调,“福音唯独是上帝大能,要拯救那在罪下的人”,“而人认识罪的途径,也因上帝已在内心埋下渴望与一般启示而成为可能”。当福音被传讲,人会在心底意识到“啊,这正是我一直渴望和寻找的”,或是被罪疚感暴露后而选择悔改。这种“回转”和“走向主”正是《罗马书》所说的得救开始。

因此,罗马书1章18-19节告诉我们:即便人背对上帝,上帝仍然在呼唤,只是人拒绝时就必面对罪的忿怒;保罗时代的罗马如此,任何时代任何文化皆如此。即使今日,人类社会也因科技进步和物质富足,依旧无法驱散内心的焦虑与虚无,恰恰印证了“可以认识上帝却没有上帝”的矛盾所带来的必然结果。

但福音的信息就在这里:只要我们敞开心扉,就不用再作罪的奴仆,而能脱离上帝的忿怒,重获上帝儿女的身份。教会当宣告这个真理,让世人自己选择:要么拒绝,要么接受。取决于这选择,人将有截然不同的命运。接受福音并悔改信主者,必得罪得赦免与永生;拒绝到底者,则会面对上帝的忿怒。《罗马书》整体的救恩逻辑就是如此。

由此可见,罗马书1章18-19节关于上帝忿怒与人内心上帝认知的问题,不仅仅针对保罗时代或特定区域,而是贯穿一切有人类存在、有罪存在的时代;与此同时,福音对之也不断做出回应。人原本被造即有向上帝的渴慕,只是罪遮蔽了人,使之迷失,但上帝透过耶稣基督重新开启了得救的道路。教会和基督徒就是要把这道路告知给世界,让更多人走上这条归回之路。

张大卫牧师在讲解这段经文时,不断提示:要看到人类灵性状态的严峻,也要看到上帝给我们预备的道路。上帝的忿怒是真实的,祂的恩典与救恩同样真实。人在罪和死亡权势下,同时心底对上帝仍有渴慕。面对这样的现实,我们就当回应福音的呼召:“因信耶稣基督得救”。这不是仅仅停留在知识层面,而是涉及人实存性的决断。张大卫牧师常提问:“你找回真正的自我了吗?你要继续留在上帝的忿怒之下,还是承认罪并回头接受救恩?”——这是《罗马书》带给我们的直接挑战。

福音不是抽象知识,而是对每个人的呼唤:“你是否意识到心中本就有对上帝的渴慕?是否承认自己在罪中?是否愿意回到上帝面前?”当人真心回转时,上帝的忿怒便不再是把人推向灭亡的恐惧,而会成为敦促人悔改、走向救恩的机会。

因此,罗马书1章18-19节是在罪与救恩、忿怒与恩典的交汇点上。通过它我们更清楚地认识到上帝是谁,人是什么。人离开上帝便无法找到真实自我,也无法获得真正平安;但同时,人离弃上帝又必陷在罪中,因而遭受祂的忿怒。这就是我们需要福音的原因,而福音正是人从罪与忿怒中被拯救、与上帝和好之路。

张大卫牧师强调,教会若不遗忘这个信息,就能大有能力地在世间宣扬福音。要先承认人内在已具备“上帝的感觉”,并且必须揭示罪与忿怒的严峻性,使人真正认识自己是罪人,从而深切感到对救恩的需要。若教会避谈罪或忿怒,人就不会意识到自己有罪,也就不会觉得非要救恩不可。反之,如果忽略人内在对上帝的渴慕,则会陷入对福音传播的失败主义,觉得人无法接受福音。唯有并重这两面——罗马书1章18节与1章19节的平衡,才能兼具对罪与忿怒的警示,以及对回转与救恩的盼望。

教会可以对人说:“你心里其实已经有对上帝的感知,但若你坚持犯罪,就置身于上帝的忿怒之下,所以赶紧回转吧。”若听到这番劝诫的人敞开心扉,就能在福音里经历生命与救恩的力量。

最终,《罗马书》并未停留在对罪的揭露。罪必须先被曝光,才能迎来救恩。保罗在1章后半与2-3章中深刻揭示罪后,转而在后面指出,借耶稣基督的十字架代赎,罪人得称义,被恢复为上帝的儿女。这就是《罗马书》呈现的伟大福音,而1章18-19节正是开启这伟大福音之门的起点。

张大卫牧师借此经文常提醒信徒:“当深刻承认自己的罪并悔改,对内心已有的上帝声音更敏锐地倾听。”任何人都不能离开上帝独自生活,因此深陷罪中时,也依然对上帝有所渴望。这渴望或许正是引领人走向救恩的火苗。可若人始终否定它,以罪阻挡真理,就无法逃避忿怒;反之,承认那渴望,藉福音归向上帝,就能得蒙赦免与永生。

如此看来,罗马书1章18-19节堪称福音神学的重要引言,简短两节却蕴含了深重内容:人因罪在上帝忿怒之下,却因内心尚存对上帝的渴求,故而存在接受福音的潜能。时至今日,尽管人们诉诸科学、哲学、艺术、思想等各种路径寻找人生意义,但最终真答案唯有在耶稣基督的福音里。教会作为拥有这答案的群体,须向那些因认罪而愿悔改的人伸手,让他们白白地得着救恩。

张大卫牧师在《罗马书》的释经中不断提醒我们:要直面人类的灵性处境何等严酷,又要看见上帝早已为我们预留归回之路。上帝的忿怒是真实的,上帝的恩典与救恩同样是真实的。我们既在罪和死亡的权势之下,同时灵魂深处又有着对上帝的渴慕。清楚这点后,我们就应毅然回应福音:“因信耶稣基督而得救。”这不只是头脑上的接受,而是实存性的抉择。

所以,罗马书1章18-19节所揭示的“上帝的忿怒”与“人本身对上帝的认知潜能”这两大支柱,一同构成了保罗在罗马书开篇为福音奠基的序言。透过它,保罗带领读者直面罪的深渊,却又同时打开了回归上帝的盼望之门。正因此,张大卫牧师和众多传道人、神学家都对这一经文给予了深度诠释。罪若被认知,就看见救恩;人心已具备对上帝的渴望,就能迎接福音的进入。

愿我们在此教导里得到提醒:没有人能在罪的问题上幸免,而上帝的忿怒也不偏不倚;但上帝也同样把认识祂的机会、以及借耶稣基督得救的道路摆在我们面前。认识到这点后,人才能真正回到“我是谁”的源头,与上帝和好,并经历到生命的意义与目标。同时,这也能让人与人之间的不义逐渐得到修补。垂直关系先恢复,水平关系才能开始复原——这是《罗马书》的核心逻辑。不敬虔解决了,不义也会逐渐得到医治。

总而言之,罗马书1章18-19节虽然只有短短两句,却凝聚了福音神学的基础:一方面,人因罪无法逃避上帝的忿怒;另一方面,人依然保有对上帝的渴慕,有接受福音的潜在可能。今天,纵使世人用科学、哲学、艺术等方式寻索,真正的解答仍然在耶稣基督的福音里。教会得着这答案,就要向那些看到自己罪并愿悔改的人敞开,让他们得享白白的救恩。

张大卫牧师在对此经文的讲解中,始终督促我们谨记:人类的属灵光景何等严峻,但上帝已为我们预留了回归之路。上帝的忿怒是事实,祂的恩典与救恩更是事实。人虽在罪与死的权势之下,内心却对上帝仍有渴求。我们必须面对这一现状,接受福音,并付诸行动地归向主耶稣基督。那时,上帝的忿怒不再意味着把我们推向灭亡,反而是呼唤我们离开罪、投奔救恩的“机会之门”。

因此,罗马书1章18-19节就是福音全貌的前奏,让我们既看见罪与忿怒的严重性,也看见因为人内心尚存的对上帝的感知与可能性,救恩之门依然为所有人开启。而《罗马书》随后会以基督的十字架为终极答案,引领一切愿意悔改相信的人进入与上帝和好的恩典之境。教会与信徒的使命,就是在这世上忠实地传扬这份大好信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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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の怒りと救いの必要性 – 張ダビデ牧師


Ⅰ. 神の怒りと人間の不敬虔不義

ローマ書1章18-19節は、使徒パウロがローマ書の本論を始めるにあたって提示している、人間が陥っている罪の現実とそれに対する神の怒りを扱う中心的な一節である。張ダビデ牧師は多くの説教や講解を通して、この本文がローマ書全体の構造や救いの教理を理解する上で重要な基盤であると強調してきた。実際、ローマ書を読んでいると、福音が宣言される順序としてまず「罪」が登場し、その後に「救い」が具体的に紹介されることに気づく。これは単なる構造上の特徴ではなく、福音を正しく理解するためにはまず罪の実相が何であるか、そして人間がなぜ救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存在なのかを明確に認識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示している。

使徒パウロは、当時多くの異邦人が暮らしていたローマという都市に宛てて手紙を書き綴った。このローマという都市は、当時の文明と世俗的繁栄の象徴であると同時に、人間の罪が最も腐敗した様相で露わになっていた代表的な場所でもあった。ローマ人たちもまた、自分たちを罪人と認めることはなく、むしろきらびやかな文明や知恵、軍事力、富を誇りとして罪の意識など持たなかったかもしれない。彼らは「我々にどんな罪があるというのか? この輝かしいローマがいったい何を誤ったというのか? どうして救いなどが必要なのだ?」といった態度で、パウロのメッセージを不思議に思ったかもしれない。しかしパウロは、なぜ人間に救いが必要なのかを語るために、まず人間が神の前でいかに罪の中に陥っている存在であるかを非常に論理的に展開したのである。

張ダビデ牧師は、このローマ書1章18-19節の講解において、特に18節に示される神の怒りがすべての罪の結果であり、神と人間の間の不和状態を示す言葉であることを強調する。「神の怒り」という表現は、私たちが一般に想像する“神の激怒”や人間的感情の投影とは次元を異にする。神は完全で善なるお方であり、その怒りは単なる感情の爆発ではなく、聖と義に基づいて罪を裁かれる正当な反応なのである。神の前で「不敬虔と不義」の状態にある人間は、罪のゆえに神との関係が断絶しており、その結果、人間は本質上「怒りの子」となったとエペソ書2章3節も語っている。

ここで言われる「不敬虔」とは、神との垂直的な関係を踏みにじる罪を意味する。すなわち、神を恐れ敬ったり礼拝するのではなく、神を忘れたり心に留めることを嫌う態度を指す。一方「不義」は、人間同士の水平的な関係における罪の様相であり、互いを傷つけたり他者を抑圧したり、不正直や偽善、貪欲などによって明らかになるものである。使徒パウロはローマ書1章18節で「不義をもって真理を阻む人々」を名指ししているが、彼らは意図的に真理を妨げ、みことばを伝える者たちを抑圧しようとしたり、自分たちの内面にある本能的・良心的な神認識を意図的に無視すると指摘する。

実際、張ダビデ牧師が強調するように、大多数の人は罪の問題に直面することを恐れる。自分が罪人であることを認めることは、自分の限界や恥をさらけ出さねばならないことを意味するため、人は本能的に「なぜ私が罪人なのか」と反発するのである。だからこそ福音を伝える際、「救い」という言葉がもつ深い意味と喜びを知らせようとしても、まず「なぜ救いが必要なのか」がしっかりと説明されなければ、相手は「自分にはそんな救いなど必要ない」と思ってしまいがちだ。これに対しパウロは罪論を詳しく展開し、人間の実存が神の創造の秩序と義からどれほど離れているかを、段階を追って掘り下げる。

「神の怒りが、不義をもって真理を阻む人々のあらゆる不敬虔と不義に対して、天から現れています」(ローマ1:18)というこの節は、罪がなぜ神の怒りを引き起こすのか、その理由を直接的には述べていないが、続く箇所(1章19-32節)で罪の本質と結果が徐々に説明されていく。特に張ダビデ牧師は、この本文を分析する際に、神の怒りは人間の犯す不敬虔と不義が結局は自滅へと至る道であるがゆえに、神がそれを放置なさらないことを示していると指摘する。ちょうど親が子どもを誤った道へ行くのを放置しないで、時には怒りや叱責によって正そうとするように、神の怒りは聖なる炎であり、愛から発せられる警告でもあるのだ。もちろん聖書は神が愛であることを語るが、その愛は、人間が罪を犯し続けて自らを破滅に追い込むのを許容し見過ごしにするような形の愛では決してない。神の愛は聖と切り離せないのであり、ゆえに神との基本的関係を破壊する罪に対しては、当然の裁きと怒りが伴うのである。

張ダビデ牧師は説教で、この点をよく引用する。神は人格的なお方であり、単なる哲学的概念の「無感情な神」ではない、と。古代ギリシアの哲学的神概念には、全知全能で冷徹な本質として、人間的感情とは無縁の存在として描かれた場合も多かった。しかし聖書の神は私たちの創造主であり父であり、人間が罪の中にあるときには嘆き、憤ることもある。エレミヤやホセアのような預言書を見ると、人間に対する神の嫉妬や悲しみ、怒りが入り混じ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これは絶対的主権者である神が愛の関係のうちで人間を見つめておられるがゆえであり、その愛の関係が破られたときに「怒る」というのは、神の聖なるご性質と愛の本質からくる必然的反応なのである。

「不敬虔と不義」に総括される人間の罪は、十戒で言うならば神に対する罪に要約される。どれほど世の中が進歩し科学文明が発達しても、人間は神との関係を離れては真の善と義を実現できない。ローマ帝国のように強力な法体系をもち、ストア哲学やエピクロス派など多様な倫理・哲学的伝統が発達していても、不敬虔と不義は極端な形で露呈した。堕落した人間は、いくら哲学的知識や道徳的鍛錬を積んでも根本的な問題を解決できない。罪は単に個人の逸脱の問題ではなく、神との関係が破れたことに由来する実存的堕落だからである。

パウロは続いて、この罪のせいで「神の怒りが天から現れる」と語る。張ダビデ牧師は説教の中で、「天から現れる」という表現が、人間の罪が積み重なって頂点に達したとき、神の裁きが不可避に下される瞬間があることを示すと強調する。神は長く忍耐され、多くの機会を与えられるが、結局は義をもって罪を裁かれ、そのうえでご自身の聖と正義を示される。旧約におけるノアの洪水やソドムとゴモラの滅亡、イスラエルの民の捕囚生活などは、罪に対する神の裁きが決して空虚な警告ではないことを証明している。新約においても、イエスが語られた終末の裁きの警告や、使徒行伝のアナニアとサッピラの事件などが、罪に対する神の厳粛な怒りをよく示している。

この「怒り」という概念を、現代の一部の信者たちは不快に思ったり、神の愛ばかりを強調して曲解してしまう場合がある。しかし罪に対する怒りがなければ、実際のところ神の愛もまた空虚な概念になってしまう。神が聖なるお方であり、罪が人間に破滅をもたらすというのが事実なら、罪を放置するのは愛ではない。張ダビデ牧師は説教で、これをしばしば親と子の関係にたとえて語る。子どもが危険な道を進んでいるのに、親が愛しているという名目でまったく叱責もしないで傍観するならば、それは真の愛ではない。その子に永遠の害が及ぶことが分かっていながら、何の処置も取らないからである。神もまた、罪のゆえに滅びに陥る人間に向かって「だめだ!」と断固たる言葉を発し、立ち返る機会をお与えになり、最終的には罪の結果に対する裁きを下される。これが神の怒りである。

パウロが語る「異邦人の罪」は、すなわち神を知らない世の罪一般を意味するが、そのなかでも焦点が当てられるのが「不敬虔」である。なぜなら、神との関係、すなわち垂直的関係の破綻こそが、水平的関係の破壊を招くからである。私たちが日常目にする社会的な不正や戦争、暴力、搾取、性的堕落などは、究極的には「不敬虔」から始まる。神がいないと思い込む生き方、あるいは神を恐れ敬わない生き方が、あらゆる悪行の根源となる。ローマ書1章後半を見ると、人々は神をあがめるどころか、偶像にひれ伏し、偽りのイメージやイデオロギーに献身し、自分の欲望を偶像化した結果としてあらゆる罪悪と腐敗がはびこると描かれている。

張ダビデ牧師は、このような文脈から、罪が明るみに出ることを教会や信徒が回避してはならないと語る。罪を直視して暴くときに初めて、その罪から離れ、救われる道が開かれるからだ。教会共同体の中でも罪が隠されたままだと、結局それが膿んで、より深刻な病へと発展する。個人もそうだし、国家や社会全体もそうである。罪を曖昧に覆い隠すのは愛の態度ではなく、むしろその罪の根をいっそう深くする結果をもたらす。神は罪を放置なさらず、時が来ると必ず怒りをもって裁かれることを、聖書全体を通じて繰り返し知らせておられる。

こうした罪論はローマ書1章18節から3章20節にかけて本格的に展開される。簡単に区分すると、パウロはまず1章18-32節で異邦人の罪を語り、次に2章1節-3章8節でユダヤ人の罪を告発し、最後に3章9-20節ではユダヤ人・異邦人を問わずすべての人間が罪のもとにあると宣言する。要するに、この世に義人はいない、一人もいないというのがパウロの結論なのである(ローマ3:10)。唯一イエス・キリストのみが罪から救う唯一の道であることを強調するための前提として、パウロは罪の普遍性を徹底的に掘り下げたわけだ。

そして、その罪に対する神の反応が「怒り」である。私たちは世の中でいろいろな形で「怒り」を経験するが、人間の怒りは多くの場合、罪から出る感情的で不完全な形である。それに対して神の怒りは、罪に対する公正な断罪であり、人間を救うための聖なる方策なのだ。張ダビデ牧師は、これこそがローマ書が冒頭から罪と怒りを扱う根本理由であると説く。人間が自分の罪を自覚し、怒りの下にあることを悟ってこそ、福音が「信じるすべての人を救う神の力」であることがどれほど貴重かが分かるからだ。

このように、18節が語る「神の怒り」は軽々しく見過ごせる部分ではない。パウロがローマ書の本論を始めながら提示する重要な主題の一つがまさにこの神の怒りであり、それが人間の不敬虔と不義、すなわち罪に対して下るということである。ローマ時代でも、人々は宗教的にも哲学的にも自分の生を正当化し、自分が罪人であることを認めたがらなかった。現代人も同様に、科学や技術、経済の発展などを誇りつつ「なぜ私たちが救われねばならないのか?」と問い返す。しかし、人間が本当に罪のうちにあ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救いの必要性もけっして痛感できない。ゆえに張ダビデ牧師は、このローマ書1章18節の御言葉、すなわちパウロの神の怒りの宣言が、現代においてもいかに重要であるかを絶えず喚起している。

こうした怒りの背景には、人々が「不義をもって真理を阻む」という具体的な罪がある。真理が宣言されるとき、人々はそれを歓迎するどころか、かえって敵視する場合が多い。真理の光が強く照らすほど罪が白日の下にさらされるため、罪を好む者は真理を伝える口をふさごうとするのである。教会の歴史を見ても、福音が伝えられるとき、それを弾圧する勢力は常に存在した。とはいえ、みことばは決して阻まれない。神が建てられたしもべたちと信仰の証人たちが絶えず福音を叫び続け、教会は多くの迫害の中でも真理を守り抜きつつ拡大してきた。それは「草は枯れ、花はしぼむ。だが私たちの神の言葉は永遠に立つ」(イザヤ40:8)という聖書の言葉通りに実現している。

一方で、パウロが伝えた神の怒りのメッセージは、決して人々を脅かしたり罪悪感だけに縛ることを目的としたものではなかった。究極的には「罪から離れよ」「神のもとへ来い」という招きの意味合いがより強い。人間が罪を自覚しなければ決して救いにあずかることはできないため、パウロは容赦なく罪を指摘するのである。教会が罪の指摘を回避したりうやむやにしてしまうと、人々は自分が罪人であることを深刻に考えなくなる。救いもまた個々人にとって切実にならず、福音は「良い話」の域を出ない無力なものになってしまう。だからこそパウロと初代教会は徹底した罪の認識を強調したのであり、これが今日の教会にもそのまま有効であると張ダビデ牧師は力説する。

結論として、ローマ書1章18節に示されている「神の怒り」は、福音において非常に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神の愛と救いを正しく知るためには、まず人間が陥っている罪の実態と、その罪に対する神の正しい怒りを直視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を避けるならば、結局、福音の力と恵みを切実に悟る道は閉ざされてしまう。救いは罪からの救いであり、罪が何なのかを理解しない人は救いが何なのかを知ることもできないからだ。

このように「不敬虔と不義」が招いた「神の怒り」は、人間自身の力では解決できない本質的な問題である。罪の問題の前で、そして罪ゆえに臨む神の怒りの前で、人間はようやく悔い改めと信仰によって神に立ち返らねばならない必要を痛感する。ローマの華やかな文化や成功、繁栄もこの問題を覆い隠すことはできなかったし、現代のどんな世俗的安定や豊かさも、罪と怒りの問題を軽視することはできない。これこそパウロが示そうとした人間実存の切迫した現実であり、同時に福音が必要とされる理由なのである。


Ⅱ. 人間の面の神認識と救いの必要性

ローマ書1章19節は、人間の罪と神の怒りに言及する内容に続き、「それは、神を知ることが彼らのうちに示されているからです。神が彼らにそれを示されたのです」という言葉を述べている。驚くべきことに、パウロは不信者、つまりまだイエスを知らない異邦人にも「神を知りうるもの」がすでに与えられていると宣言する。これは、人間が創造主なる神といかに切り離しがたい関係のなかにあるかを示している。不敬虔と不義の中にありながらも、人間の内には依然として神を求め、その方を認識する可能性が残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だ。

張ダビデ牧師は説教で、この節が「人間は生まれながらにして本質的に神への渇望をもっており、たとえ罪によって堕落していても完全に壊れきった存在ではないこと」を示していると説明する。もちろん人間は罪のゆえに霊的に死ぬほかない状態だが、その内には神のかたちの破片ともいうべき理性、自由意志、道徳的感覚、宗教的本性などが残されている。だからこそ人類の歴史全般にわたって、絶え間なく“神”や“絶対者”を探し求める試みが続けられてきたのだ。

パウロが言う「知りうるもの」は二つの次元で語られていると考えられる。一つ目は、被造世界を通した一般啓示の次元である。ローマ書1章20節にも続くように、神が造られた自然と宇宙、この世の秩序を通して神の神性と力をある程度認識できるという内容だ。四季の移り変わり、秩序正しい自然の理、太陽や星の運行、生命の驚異などは、偶然や混沌の産物ではなく、創造主の摂理とご計画のもとに動いているということを直感的に示してくれる。多くの哲学者や科学者さえも、宇宙が無秩序な混沌ではなく精密な秩序で動いている点から、絶対者の存在を認めたりする。

二つ目は、人間の内面の良心と理性の次元である。張ダビデ牧師は、人間が本能的に罪悪感を覚え、善と悪を区別し、自らの存在目的を問い求める動きなどを通して、すでに神への渇望を表していると語る。実際、多くの人が生きていく中で「私は何者なのか? なぜ生きるのか?」という根本的問いにぶつかる。これは神を離れた人間が根源的に感じる霊的な空虚、あるいは不安から来るものだ。神を知ってこそ満たされるこの渇きこそ、人間の魂に刻まれた「神への本能的欲求」である。アウグスティヌスの『告白録』にあるように、「神のうちに安息するまで、人の魂は真の安息を得られない」という洞察は時代を超えて受け継がれてきた。

しかし問題になるのは、この「神を知りうるもの」を人々が正しく受け止めないという点である。パウロは「人々は神を知っていながら、神としてあがめもせず感謝もしなかった」(ローマ1:21)と続ける。つまり神を知るに足る証拠と内面の声があるにもかかわらず、人間は罪によって高ぶり、神を退ける。あるいは神を偶像で置き換え、真理よりも偽りに耳を傾け、自分を高めることに邁進する。その結果、不敬虔と不義は一層加速される。

張ダビデ牧師は説教で、人間が神を退けることによりもたらされる結果を「不安、孤独、虚無、絶望」などに要約する。罪を犯せば心は不安に陥り、世俗的な欲望で一時的な満足を得ようとしても根本的な虚しさは消えない。愛されないと感じるときに襲ってくる孤独感、将来の不透明さから生じる絶望感などは、結局、人間の霊魂が「神を失った状態」であることを自ら痛切に証言しているにほかならない。だからこそ不信者も、深い苦悩の瞬間には自分でも気づかないうちに“神”や“絶対者”を求めることがある。

とはいえ真理は明らかである。人間はいかなる道徳修練や哲学的思索だけで神に到達することはできない。それらは神を探す助けの道具にはなり得るが、罪の問題が根本的に解決されなければ、神と真に交わることは不可能である。これはパウロがローマ書全体で強調しているメッセージだ。罪は人間自身では解決できないものであり、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と復活によってのみ罪の赦しと義とされる道が与えられる。そして、その恵みに信仰をもってあずかることができると教えるのがローマ書の中心的な救済論である。

ゆえに、「神を知りうるもの」が人間の内面にあったとしても、その火種だけでは罪の問題を解決できない。結局、福音が必要なのだ。張ダビデ牧師は、罪から離れ真の自由と解放、そして魂の平安を得るためには、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を受け入れることが避けられないと力説する。イエスもまた「すべて疲れた人、重荷を負っている人はわたしのところへ来なさい」(マタイ11:28)と呼びかけ、「渇いている人はだれでも、わたしのところへ来て飲みなさい」(ヨハネ7:37)と招かれた。このようなイエスの招きは、宗教的儀式や功績を条件とはしない。ただ「神のもとに帰るだけでいい」というのが福音の核心なのである。

ところが、宗教さえも時に“商売人”の役割を果たし、人々が神へ近づく道を阻んでしまうことがある。救いの条件を規定し、さまざまな行為や儀式を強調することで、あたかも人間が自らある資格を整えなければ神に近づけないかのような誤解を招く。しかし、それは聖書の教えではない。ローマ書3章24節によれば、私たちは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贖いによって「価なしに義とされる」のである。エペソ書2章8-9節でもはっきりと語られる。「あなたがたは恵みによって、信仰によって救われたのである。これは自分自身から出たことではなく、神の賜物である。行いによるのではない。それはだれも誇ることのないためである。」

張ダビデ牧師は、この部分を説教するとき、イエスが教えられた父と子の関係のたとえ(ルカ15章の放蕩息子のたとえ)をしばしば強調する。放蕩息子が「父のもとに帰ろう」と決心したとき、彼が何か条件を満た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父は喜びのあまり走り寄ってその罪を赦し、息子の身分を回復させた。その過程にはどんな複雑な手続きや代価も介入しなかった。ただ帰ってくるだけでよかったのである。ところが人間は、罪悪感や高ぶり、あるいは世の歪んだ宗教観のせいなのか、自分が何かもっと準備しなければ神のもとへ行けないと思い込む。

しかし、本文が語るように「神を知りうるもの」がすでに人間の内にある状態であっても、不信者であろうと神の前に出て叫べば、神は決してそれを無視されない。「見よ、わたしは戸の外に立ってたたく」(黙示録3:20)という言葉のように、神は先に人間を訪れて立ち返りを促される。私たちが心の扉を開くだけで、すぐに神の恵みが臨み、罪の赦しと救いのみわざが始まるのだ。

このように、私たちの魂が神なしには渇き、不安で虚しくなるというのは、人間存在が神に属していることを証明する別の表現でもある。どんな世俗的成功や娯楽も、この渇きを完全には癒せない。古代ローマの知識人たち、たとえばセネカやマルクス・アウレリウスなどの哲学者たちも人生の意味を探求し、ストア哲学を通して内面の平安を求めたが、結局、罪の問題自体を解決する道はなかった。パウロは彼らに対して、真の答えは神にあると強く訴えたのである。

張ダビデ牧師は「神がこれを彼らに示されたのです」というローマ書1章19節の言葉に触れながら、神が望んでおられるのは決して人間を知らん顔で放置することではないと示唆していると説明する。神は太初から今に至るまで、多様な方法で人間にご自分を啓示してこられた。自然を通して、良心を通して、歴史を通して、そして究極的に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ご自分を示してこられた。問題は人間が「受け入れるのか、拒むのか」にかかっている。

受け入れない場合、神はその不敬虔と不義を責め、最終的には怒りをもって裁かれる(ローマ1:18)。受け入れる場合は、神と人間のあいだに「和解」という回復された関係が成り立つ(ローマ5章)。和解はすなわち救いであり、生まれ変わった人生が永遠のいのちにあずかる状態だ。神学的に言えば、罪によって壊された関係がキリストを通して再び結び合わされることである。だから張ダビデ牧師は「罪があることを正直に認め、神に立ち返るとき、私たちは本来神の子として創造された自分自身を取り戻すのです」と説教する。

これは単に宗教的所属を変えたり、礼拝の形式を整える次元の話ではない。「自分は本来何者で、どこから来てどこへ行くのか。人生の真の意味と目的は何なのか」という問題を根源的に悟る過程なのである。アウグスティヌスの有名な言葉、「神のうちに安息するまで私の魂は安らぎを得ないのです」という告白は、時代や文化を超えて人間実存の本質を突いている。人間は神に似せて創造されており、ただ神のうちでのみ真の平安と喜び、愛、そして意義を見いだすことができるのだ。

にもかかわらず、世はあらゆる代用品を提示し、神に代わり得ると誘惑する。金、権力、名誉、快楽、ありとあらゆる偶像的対象が「これがあなたを幸福にしてくれる」とささやくが、それらは結局、一時的な満足とさらに大きな渇望を呼び起こすにすぎない。こうして人間は絶えず魂の放浪を続けることになる。張ダビデ牧師は「信仰すること、イエスを信じることは本来の自分を回復する道だ」と力説する。それは特定の宗教に入会したり制度に所属する問題ではない。「自分は本来どんな存在なのか、どこから来てどこへ向かうのか、人生の真の意味と目的は何か」を根源的に悟っていく過程なのである。

人間はすでに「神を知りうるもの」を持っているから、いつでも神のもとへ帰る可能性は開かれている。世界のどんな地域や文化圏でも、人類は絶えず神を求める努力をやめてこなかった。しかし、その努力はしばしば歪められたり、偶像崇拝に流れたり、本物の神ではなく人間が自作した神概念に閉じ込められてしまったりした。だからこそパウロは一貫して「あなたたちがいま拝む無数の偶像や哲学の神、帝国神格化ではなく、唯一の創造主なる神に目を向けなさい」と叫ぶわけである。

結局、ローマ書1章19節は「神を知りうるものが彼らのうちに示されている」という宣言を通し、人間の内面の宗教的・霊的本質を再確認させてくれる。同時に1章18節にある「神の怒り」と並置されることで、人間の二重的な実存を明らかにしている。すなわち、一方では人間の内には神へ向かう渇望や良心があるが、他方では罪のゆえに神を拒む反発心も同時に存在する。これを神学的に言えば、「原罪と神のかたち」の混在とも言えるだろう。

張ダビデ牧師は説教で、だからこそキリスト者に必要なのは「罪を責めながらも、その中にある神への渇望と可能性を信じてあげるまなざしだ」と語る。世の人々にただ無造作に「あなたは地獄に行く罪人だ」と言うだけでは、彼らは耳を閉ざしてしまう。しかしパウロが示したように、罪を正確に指摘しつつも、それは「人間の中には神を発見しうる大切な能力があり、神に立ち返るなら変えられる」という希望を同時に伝えるためなのだ。人間には罪があるが同時に救いへ向かう可能性も開かれている。その可能性を現実のものにする道が、まさに福音である。

福音の本質は、人間がどんな資格も備える必要なく、そのままの姿で神の恵みの前に出ることにある。「だれでも主の名を呼ぶ者は救われる」(ローマ10:13)という御言葉のとおり、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呼び、主として受け入れるとき、罪の赦しと永遠のいのちが与えられる。放蕩息子が父のもとに帰るように、罪人である私たちも神のもとへ帰れば、神は私たちを真の息子・娘として回復してくださる。ローマ書はこの後、この救いを神学的に体系化し、義認と聖化、そして栄化へと続く救いの段階を説明する。しかしその出発点はいつも「罪を自覚し、神に立ち返る」心なのである。

一方で、これを伝える教会の使命は決して軽いものではない。教会自身が多くの誘惑や世俗化の危険にさらされており、教会の内側でさえ「神を知りうるもの」が歪められてしまうことが起こりうるからだ。張ダビデ牧師は、教会が「真理の光を照らすべき立場で商売をし、権力を振るう姿」を見せると、結局、福音の純粋性と力を失い、人々の心にある神への渇望を妨げることにもなりかねないと警告する。福音がもつ無条件・一方的な恵みを伝える代わりに、人間的な誇りや行為中心の信仰を強調すれば、魂たちは真の自由を体験しにくくなる。

だからこそ教会と信徒は常に自分を振り返る必要がある。パウロがローマ書2章で「あなたはユダヤ人として異邦人を裁くのか? あなたも同じだ」と宣言しているように、罪を指摘する教会自身が罪に陥っていたら偽善になってしまう。教会共同体が罪を曖昧に見逃したり、罪を指摘する際に愛なしに断罪だけするような極端な態度を取ってはならない。教会は罪を暴いて悔い改めへ導き、究極的には赦しと救いの道を開いてあげる福音の通路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

ローマ書1章19節は、結局「人間が心を開けばいつでも神を認識し、立ち返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希望のメッセージを含んでいる。パウロは1章後半で、この希望を捨てて罪を楽しみ続ける者に対し、「神は彼らを放っておかれた」と述べている(ローマ1:24,26,28)。人間が最後まで拒むので、神もまた彼らの選択を尊重されるが、その結果がどんな破局をもたらすのかを当人たちが味わうことになるという意味である。自由意志を与えられた人間が神なしに自分の欲望に従って生きる道を選ぶなら、その破滅の責任も自分で負わざるを得ない。

ではその答えは何か。ローマ書3章以降でパウロは明らかにするのだが、イエス・キリストの贖いによってすべての罪人が義と認められ、神の怒りの下から抜け出して永遠のいのちの道に入れる道が提示されている。これこそ「信じるすべての人に救いをもたらす神の力」である(ローマ1:16)。ローマ書1章18-19節が語る重苦しい罪論と怒りの宣言は、皮肉なことに福音の栄光に満ちた力をよりいっそう際立たせる。罪が大きく人間が絶望的であるほど、キリストの恵みがいかに驚くべきものかが一層明らかになるからだ。

張ダビデ牧師は、この点で「人間が神を知りうるものを持っている」としても、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の福音を知らなければ、やはり救いに至ることはできないと明確に整理する。一般啓示や良心の働きだけでは罪の根本的な解決が不可能だからだ。それでも神がすでに私たちの心の内に「神への本能」を植えておられるという事実は、福音が宣べ伝えられるとき魂がその声に応答しうる霊的土壌が整えられていることを示している。だからこそ教会は大胆に福音を宣べ伝えなければならない。人々の心の奥深くには神への渇望があり、それは何らかの形で噴出する可能性があるのだ。

まとめると、ローマ書1章18節と19節は、神の怒りと人間の内面にある神認識の可能性を並行して示すことで、人間がなぜ救われねばならず、どうやって救いに至るのかを解く序論を提供している。「不敬虔と不義」によって要約される罪のゆえに、人間は怒りの下に置かれているが、同時に「神を知りうるもの」が人間の内にあるゆえに、だれでも心を入れ替えて福音を受け入れるなら救われる。そのことがまさしく使徒パウロがローマ書全体で展開する福音のエッセンスであり、現代に生きる私たちにも適用される永遠の真理だ。

私たちは、だれ一人として「私は罪と無関係だ」と言えず、神の怒りを免れることはできないと聖書を通して学ぶ。しかしその重みの中にも希望を持つ理由は、神がすでに私たちの存在の奥深くにご自身を求めるきっかけを埋め込んでくださっており、その道を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によって完全に開いてくださったという驚くべき事実である。これを悟るとき、人は初めて「真の自分」を取り戻し、神との関係の回復によって人生の目的と意味を正しくつかめるようになる。

張ダビデ牧師は「福音はただ罪のもとにある者を生かす神の力」であり、「人間が罪を悟る道はすでに神が内面に埋め込んでくださった渇望と自然啓示を通して可能になる」と重ねて強調する。福音が宣べ伝えられるとき、人々は心の深いところで「ああ、自分がいつも渇望していたのはこれだったのだ」と気づいたり、あるいは心の奥に潜んでいた罪悪感が表に現れて悔い改めへ向かうこともある。こうした「立ち返り」と「主のもとへの歩み」こそ、ローマ書が語る救いの始まりである。

結局、ローマ書1章18-19節は、人間が神に背を向けていても、神はなお彼らを呼び続けるみ手をお収めにはならず、ただ人間がそれを拒絶し続けるなら罪に対する怒りを免れないことを宣言している。パウロの時代のローマだけでなく、すべての時代、すべての文化圏に等しく適用される御言葉だ。今日の私たちも、科学が進歩し物質的に豊かになったといっても、内面の深いところにある不安や虚しさは決して消えない。それは「神を知りうるもの」が潜在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神なしで生きようとするところから生じる必然的な結果なのである。

しかしこの福音のメッセージを聞いて心を開くなら、もはや罪の奴隷として生きる必要はないと気づける。神の怒りから逃れ、その方の子どもとして回復される道が開かれている。教会はこの事実を伝えなければならず、世はそれを拒むことも、受け入れることもできる。そのどちらを選ぶかによって運命が分かれる。福音を受け入れ悔い改めて信仰へと向かう者には、罪の赦しと永遠のいのちが約束され、最後まで拒む者には神の怒りが臨むというのがローマ書全体が語る救いの論理である。

こうして見ると、ローマ書1章18-19節が語る神の怒りと人間内面の神認識の問題は、パウロ時代や特定の地域に限定される話ではまったくない。人間が存在する限り、そして罪がある限り、この問題は続くと同時に、福音の答えもまた続くのである。人間は本来神を求めるように造られており、その渇望を罪が覆い隠していて自力で道を見失っているが、神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救いの道を再び開いてくださった。教会と信徒には、まさにこの道を世に紹介し、人々をそこへ導く使命が与えられているのだ。

張ダビデ牧師がこの本文を講解するたびに核心的に投げかける問いは「あなたは真の自分を回復したのか?」「神の怒りの下にとどまり続けるのか、それとも罪を認めて悔い改め、救いの恵みにすがるのか?」である。これはローマ書がもたらす非常に直接的かつ個人的な問いでもある。福音は単なる知識ではなく、実存的決断を求めるからだ。私たちは、自分の内に「神を知りうるもの」があることを認め、これ以上罪を言い訳にしたり回避したりせず、へりくだって神に立ち返るべきだ。そうするとき、神の怒りは私たちを滅ぼす恐怖ではなく、罪から離れさせる「救いの機会」となる。

結局、ローマ書1章18-19節は罪と救い、怒りと恵みが交差する地点である。この御言葉を通して、神がどのようなお方であり、人間がどのような存在なのかをより明確に知ることができる。人間は神なしには決して真の自己も真の平和も見いだせない存在であり、同時に神を無視するとき罪の内にとどまるほかなく、その罪による神の怒りは避けられない。だからこそ福音が必要であり、福音こそが罪の赦しと永遠のいのち、神との和解に至る道なのである。

張ダビデ牧師が強調するように、教会がこのメッセージを見失わないとき、世の中で力強く福音を宣べ伝えられる。人間が本質的に神を知りうる存在であることを前提にすれば、罪を指摘するときにも同時にその回復を信じて待つことができる。また「神の怒り」を前提にすれば、福音がいかに切実かを骨の髄まで思い知らされる。もし教会が罪や怒りを回避してしまうなら、人間は自分が本当に罪人であることを自覚せず、救いも不要と思うだろう。逆に人間の内面の神認識を無視すれば、福音宣教において「相手はまったく望みがなく受け入れようもない」という敗北主義に陥る可能性がある。

したがって、両方の御言葉(ローマ1:18、1:19)が均衡を保ってこそ、私たちは罪と怒りの深刻さを直視しつつも、同時に悔い改めと救いの可能性を信じて福音を宣べ伝えることができる。教会は人々に「あなたの内にはすでに神を知りうる何かがあります。しかし罪によってそれを拒めば神の怒りのもとにあります。だからこそ一日も早く立ち返るべきです」と勧めることができる。この勧めを聞いて心を開き、神に立ち返る者にとって、福音は命と救いの力となるのだ。

結局、ローマ書は罪を指摘するだけで終わらない。罪が明るみに出てこそ救いにあずかれるので、パウロは1章後半と2-3章において人間の罪を徹底的に暴露した後、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代償によって罪人が義と認められる「義認」の福音へと読者を導く。神の前に少しの義もない私たちが、キリストの血によって清められ義とされ、神の子どもとされる恵みが与えられる。これこそローマ書が示す偉大なる福音である。そして1章18-19節は、その偉大な福音の扉を開く出発点なのだ。

張ダビデ牧師は、この御言葉を通して信徒たちに「自分自身の罪を深く認めて悔い改め、すでに内面に与えられている神の声にいっそう敏感に耳を傾けなさい」と勧める。人間はだれもが神なしには生きられないよう創造されており、それゆえに罪のうちにあっても神を求め渇望するものだ。その渇望が結局人間を救いへ導く火種にもなる。しかし最後までその渇望を否定して真理を阻めば、怒りを免れない。逆に渇望を認め、福音を通して神のもとに立ち返るなら、罪の赦しと永遠のいのちを得る。

このようにローマ書1章18-19節は福音神学の重要な前提を短い二節の中にすべて内包している。人間は罪の中にあり神の怒りを避けられないが、同時に人間の内には神を知りうる種があって、福音を受け入れる可能性を宿している。現代においても、人々は科学、哲学、芸術、思想など多彩な手段を通じて人生の意味や目的を探し求めているが、真の解答は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にこそある。教会はこの解答を手にする共同体として、罪を悟り悔い改める人々に喜んで恵みの道を案内する必要があるのだ。

張ダビデ牧師のローマ書講解が私たちに改めて思い起こさせるのは、人間が直面している霊的現実がいかに厳粛であり、しかもそれでもなお神が私たちに立ち返る道を用意してくださっているという驚くべき事実を同時に見つめよ、ということである。神の怒りは現実でありながら、その恵みと救いもまた現実である。人間は罪と死の権勢のもとにあるが、同時に神への渇望を内包している。これを正視しながら、「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によって救いを得よ」という福音の招きに全面的に応答すべきなのだ。

結局、「神の怒り」と「神を知りうるもの」という二つの軸を同時に見せてくれる本文(ローマ1:18-19)は、ローマ書全体の序論であると同時に福音の核心部分に相当する。パウロはこれを通して読者を罪の深淵へと連れ込みながらも、同時に神へ立ち返る希望の扉を開いてくれる。張ダビデ牧師をはじめ多くの牧会者や神学者がこの本文を深く講解する理由はここにある。罪が顕在化してこそ救いが見え、すでに私たちの内にある神への渇望を自覚してこそ福音が入り込む余地が生まれる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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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olère de Dieu et la Nécessité du Salut – Pasteur David Jang


I. La colère de Dieu et l’impiété/l’injustice de l’homme

Le passage de Romains 1.18-19 constitue un point-clé dans lequel l’apôtre Paul entame la partie centrale de l’Épître aux Romains, exposant la réalité du péché humain et la colère de Dieu qui en découle. Dans ses divers sermons et enseignements, le pasteur David Jang a souvent souligné que ce texte est un fondement essentiel pour comprendre la structure d’ensemble de l’Épître aux Romains et sa doctrine du salut. En effet, en lisant l’Épître, nous remarquons que l’annonce de l’Évangile suit un ordre précis : on parle d’abord du péché, puis vient la présentation concrète du salut. Il ne s’agit pas là d’une simple caractéristique littéraire ; c’est la démonstration que, pour saisir correctement la Bonne Nouvelle, il faut d’abord reconnaître la réalité du péché et comprendre pourquoi l’homme a absolument besoin de la rédemption.

Paul écrit aux nombreux païens qui vivent à Rome, cité symbole de la civilisation de l’époque, de la prospérité séculière et, en même temps, de la corruption la plus extrême du péché humain. Les Romains de l’époque ne se reconnaissaient pas comme pécheurs ; au contraire, ils étaient fiers de leur civilisation florissante, de leur sagesse, de leur puissance militaire et de leur richesse, sans éprouver la moindre culpabilité. Peut-être se demandaient-ils : « De quel péché parlez-vous ? Qu’a donc fait de mal cette Rome si resplendissante pour avoir besoin d’un salut ? » Face à cela, Paul démontre de manière très rationnelle la condition d’égarement profond dans laquelle se trouve l’humanité devant Dieu et la raison pour laquelle le salut est indispensable.

Dans son commentaire sur Romains 1.18-19, David Jang souligne tout particulièrement que le verset 18, qui parle de la « colère de Dieu », met en lumière non seulement les conséquences du péché, mais aussi l’état de rupture qui sépare Dieu et l’homme. L’expression « la colère de Dieu » ne doit pas être comprise comme une fureur irascible ou comme une simple projection d’émotions humaines. Dieu est parfait et bon ; Sa colère n’est pas l’éruption capricieuse d’un sentiment, mais la réaction juste et légitime de Sa sainteté et de Sa justice face au péché. De plus, Éphésiens 2.3 déclare que, du fait de leur péché, les hommes sont devenus par nature « enfants de colère », séparés de Dieu.

Ici, le terme « impiété » renvoie au péché qui transgresse la relation verticale avec Dieu : plutôt que de Le craindre ou de L’adorer, l’être humain L’oublie ou préfère ne pas tenir compte de Lui. Quant à l’« injustice », elle décrit la dimension horizontale du péché dans les rapports humains : on fait du tort aux autres, on oppresse autrui, on fait preuve de malhonnêteté, d’hypocrisie, d’avidité, etc. En Romains 1.18, Paul pointe particulièrement ceux qui « retiennent injustement la vérité captive » : ce sont ceux qui, délibérément, étouffent la vérité, musellent ceux qui annoncent la Parole ou ignorent sciemment la connaissance de Dieu inscrite en eux.

David Jang souligne que, dans la réalité, la plupart des gens craignent de faire face à la question du péché. Reconnaître que l’on est pécheur, c’est exposer ses limites et sa honte ; c’est pourquoi, par réflexe, on résiste en disant : « Pourquoi serais-je pécheur ? » De fait, si l’on veut annoncer la joie profonde du salut, on doit d’abord expliquer clairement pourquoi ce salut est nécessaire. Sinon, l’interlocuteur pensera aisément : « Je n’ai pas besoin de salut. » Paul développe donc amplement la doctrine du péché : il montre pas à pas à quel point l’humanité est loin de la justice et de l’ordre de la création voulus par Dieu.

Le verset 18 — « La colère de Dieu se révèle du ciel contre toute impiété et toute injustice des hommes qui retiennent la vérité captive » — n’explique pas directement pourquoi le péché suscite la colère de Dieu, mais la suite du chapitre (1.19-32) détaille peu à peu la nature et les conséquences du péché. David Jang relève en particulier que la colère de Dieu s’exerce parce que l’impiété et l’injustice de l’homme le conduisent finalement à l’autodestruction ; Dieu ne veut pas laisser l’humanité s’égarer de la sorte sans réagir. De même qu’un père ne reste pas inerte quand son enfant emprunte un chemin dangereux, allant parfois jusqu’à le réprimander vivement pour le corriger, la colère de Dieu est le feu de Sa sainteté et un avertissement de Son amour. Certes, la Bible insiste sur l’amour de Dieu, mais cet amour ne va pas jusqu’à tolérer ou laisser se perpétuer le péché qui détruit l’humain. L’amour de Dieu est indissociable de Sa sainteté ; de ce fait, un juste jugement, voire la colère, s’abat sur ce qui détruit la relation fondamentale entre Dieu et l’homme.

Comme le rappelle souvent David Jang dans ses prédications, Dieu est un être personnel, non un concept philosophique « impassible » ou dénué d’émotions. Dans la pensée de la Grèce antique, on représentait souvent la divinité comme un être omniscient et froid, dépourvu de toute passion. Mais la Bible décrit Dieu comme notre Créateur et notre Père, qui gémit ou s’indigne quand l’homme demeure dans le péché. Dans Jérémie ou Osée, nous voyons se mêler en Dieu la jalousie, la tristesse, l’indignation à l’égard de Son peuple. C’est que, dans Sa souveraineté absolue, Il considère l’humanité dans une relation d’amour. Et quand cette alliance se brise, « la colère » divine naît de Sa sainteté et de Sa nature aimante.

Le péché humain, résumé dans la Bible par les mots « impiété et injustice », correspond, en quelque sorte, à la transgression des commandements divins. Même si la civilisation progresse et que la science se développe, l’homme ne peut pas réaliser le bien et la justice véritable en se passant de Dieu. Voyez l’Empire romain : malgré une solide organisation juridique, malgré des courants philosophiques (stoïcisme, épicurisme, etc.), l’impiété et l’injustice y atteignaient des sommets. L’homme déchu ne peut régler son problème fondamental par la seule philosophie ou l’auto-discipline morale, car le péché ne se réduit pas à quelques écarts de conduite : c’est le résultat d’une rupture ontologique avec Dieu.

Paul poursuit en disant que ce péché attire la colère de Dieu, « qui se révèle du ciel ». David Jang remarque que cette expression, « se révèle du ciel », suggère qu’au terme d’un long temps de patience divine, lorsque le péché s’accumule et parvient à son paroxysme, le jugement de Dieu devient inévitable. Dieu est patient et nous laisse maintes occasions de revenir à Lui, mais Il manifeste aussi Sa justice en condamnant le péché, prouvant ainsi Sa sainteté et Sa justice. Les récits de l’Ancien Testament, comme le Déluge au temps de Noé, la destruction de Sodome et Gomorrhe, ou encore la déportation du peuple d’Israël, démontrent que les avertissements divins quant au péché ne sont pas de vaines menaces. Dans le Nouveau Testament, les paroles de Jésus sur le jugement final, ou l’épisode d’Ananias et Saphira dans le livre des Actes, révèlent de même la sévérité de la colère de Dieu face au péché.

Aujourd’hui, certains croyants se sentent mal à l’aise avec la notion de « colère divine » ou préfèrent mettre en avant uniquement l’amour de Dieu, au risque de déformer le message biblique. Or, si Dieu n’exprimait pas de colère contre le péché, Son amour deviendrait un concept vide de sens. Si Dieu est saint et si le péché mène l’homme à la ruine, le laisser faire ne serait pas faire preuve d’amour. Le pasteur David Jang compare souvent cela à la relation entre un parent et son enfant : si celui-ci se dirige vers un précipice et que le parent, sous prétexte d’aimer son enfant, ne le met jamais en garde ni ne le corrige, on ne peut parler de véritable amour. Car il sait très bien que son enfant court à la catastrophe et ne fait rien pour l’en empêcher. De même, Dieu, face à l’humanité déchue, dit « Non, pas ça ! » et lui donne l’occasion de se repentir. Finalement, Il prononce un jugement sur les conséquences du péché. C’est cela, la colère de Dieu.

Pour Paul, ce qu’il appelle le « péché des païens » englobe globalement les péchés du monde qui ne connaît pas Dieu ; il insiste surtout sur la dimension de l’impiété, car la rupture de la relation verticale avec Dieu entraîne la rupture des relations horizontales. Tout ce que nous observons comme injustices sociales, guerres, violences, exploitations, dérèglements sexuels, provient en définitive de l’impiété, c’est-à-dire de la négation de Dieu. Une vie sans référence à Dieu ou sans révérence envers Lui est la racine de tous ces maux. En seconde partie du chapitre 1, Paul explique que, au lieu d’honorer Dieu, les hommes se sont inclinés devant des idoles, des idées mensongères, et ont fait de leurs désirs des idoles, entraînant un déchaînement de péchés et de corruption dans la société.

Dans ce contexte, David Jang prévient que l’Église et les croyants ne doivent pas craindre de mettre en lumière le péché. Il faut le confronter et le dénoncer, sinon il finit par suppurer et se transformer en un mal encore plus grave. Tant pour un individu que pour une nation, masquer le péché par complaisance n’est pas de l’amour, mais un facteur aggravant. La Bible montre que Dieu ne tolère pas le péché et, lorsqu’arrive le temps fixé, Il juge inéluctablement. Ce principe se voit à travers tous les textes bibliques.

De Romains 1.18 à Romains 3.20, Paul développe cette doctrine du péché. Pour résumer :

  1. En 1.18-32, il décrit les péchés des païens.
  2. En 2.1–3.8, il dénonce les péchés des Juifs.
  3. En 3.9-20, il conclut que tous, Juifs comme païens, sont sous l’emprise du péché.
    En somme, « Il n’y a pas de juste, pas même un seul » (Romains 3.10). Paul veut démontrer l’universalité du péché pour préparer l’argument selon lequel Jésus-Christ est l’unique solution pour délivrer l’homme de son péché.

C’est alors que Dieu répond à ce péché par Sa « colère ». Certes, nous connaissons toutes sortes de colères dans le monde, mais la colère humaine est presque toujours teintée d’émotions coupables et d’imperfections. Au contraire, la colère de Dieu est l’exécution juste de Sa condamnation face au péché, un moyen saint de conduire l’homme au salut. David Jang explique que Romains met en avant cette problématique dès le début, afin que l’on prenne conscience de la condition pécheresse de l’humanité et de la réalité de la colère divine, ce qui rend l’Évangile «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Romains 1.16) d’autant plus précieux. Tant qu’on ne se sait pas pécheur sous la colère divine, on ne peut saisir pleinement la valeur de l’Évangile et la grâce qui en découle.

Ainsi, la « colère de Dieu » évoquée en Romains 1.18 est un thème-clé que l’on ne saurait négliger. Au seuil du développement doctrinal de l’Épître, Paul insiste sur ce fait : la colère divine tombe sur l’impiété et l’injustice, c’est-à-dire le péché humain. De même qu’à l’époque romaine, beaucoup justifiaient leur vie religieuse ou philosophique sans se reconnaître pécheurs, nos contemporains, fiers des progrès scientifiques, technologiques et économiques, peuvent se demander : « Pourquoi aurions-nous besoin de salut ? » Mais si l’homme ne comprend pas qu’il est plongé dans le péché, il ne ressentira jamais la nécessité du salut. D’où, selon David Jang, l’importance cruciale de Romains 1.18 pour notre époque : Paul proclame la colère de Dieu contre le péché et nous invite à prendre conscience du sérieux de la situation.

Cette colère a pour toile de fond un péché concret : les hommes « retiennent la vérité captive par l’injustice ». Autrement dit, quand la vérité est annoncée, l’homme pécheur, au lieu de l’accueillir, la combat. Plus la vérité éclaire, plus le péché est mis à nu, et ceux qui aiment le péché cherchent alors à faire taire la voix qui les dénonce. Dans l’histoire de l’Église, chaque fois que l’Évangile a été proclamé, il y a eu des forces qui l’ont persécuté. Pourtant, la Parole ne peut être réduite au silence : Dieu suscite sans cesse des serviteurs et des témoins qui continuent de prêcher l’Évangile, et l’Église, malgré les persécutions, a préservé la vérité et n’a cessé de grandir. Comme le dit Ésaïe 40.8 : « L’herbe sèche, la fleur tombe ; mais la parole de notre Dieu subsiste éternellement. »

Cependant, Paul ne prêche pas la colère de Dieu pour terroriser ou enfermer les gens dans un sentiment de culpabilité, mais pour leur dire : « Revenez de vos péchés et tournez-vous vers Dieu ! » Sans la conscience de son péché, nul ne peut recevoir le salut. D’où l’insistance sur la doctrine du péché dans l’Église primitive. Si l’Église élude ou minimise le péché, les gens ne verront pas la gravité de leur faute et n’éprouveront pas la nécessité d’être sauvés. Dans ce cas, l’Évangile perd sa force et se réduit à de « bonnes paroles » inoffensives. Voilà pourquoi Paul et l’Église apostolique insistaient sur la reconnaissance du péché, et c’est ce que, selon David Jang, l’Église doit continuer à faire de nos jours.

En conclusion, dans Romains 1.18, la mention de la « colère de Dieu » occupe une place de premier plan dans la prédication de l’Évangile. Pour saisir la nature de l’amour et du salut divin, il est indispensable de confronter d’abord la réalité du péché humain et de la juste colère de Dieu à son égard. Faire l’impasse sur cette vérité, c’est, finalement, vider l’Évangile de sa puissance et de sa grâce. Le salut, c’est la délivrance du péché, et celui qui ne connaît pas son péché ne pourra ni comprendre ni accueillir le salut.

Les mots « impiété et injustice » qui provoquent la « colère de Dieu » décrivent une situation à laquelle l’homme ne peut remédier par ses propres forces. Confronté à ce problème, tout être humain est invité à la repentance et à la foi, à reconnaître l’urgence de revenir à Dieu. Ni la splendeur de la civilisation romaine, ni la prospérité et la sécurité que procure aujourd’hui la modernité ne peuvent effacer ou alléger le jugement qui pèse sur le péché. Voilà l’état d’urgence que Paul veut souligner, de même que la raison profonde pour laquelle l’Évangile est indispensable.


II. La connaissance intérieure de Dieu et la nécessité du salut

Le verset suivant, Romains 1.19, embraye sur la réalité du péché et de la colère divine : « Car ce qu’on peut connaître de Dieu est manifeste pour eux ; Dieu le leur ayant fait connaître. » De façon surprenante, Paul affirme que même les païens, c’est-à-dire ceux qui ne connaissent pas Jésus, possèdent déjà « ce qu’on peut connaître de Dieu ». Cela souligne qu’il existe entre le Créateur et l’homme un lien indéfectible : malgré l’impiété et l’injustice, l’homme conserve en lui une faculté de reconnaître Dieu et de Le rechercher.

Dans son commentaire, David Jang explique que ce verset démontre que « l’être humain, en dépit de sa chute, porte dès sa naissance un désir fondamental de Dieu, et qu’il n’est donc pas totalement corrompu au point d’avoir perdu toute capacité de Le pressentir ». Certes, à cause du péché, l’homme est spirituellement voué à la mort, mais il demeure en lui, tel un vestige de l’image de Dieu, un certain sens moral, une liberté, une raison, une inclination religieuse. C’est pourquoi, à travers toute l’histoire de l’humanité, on n’a jamais cessé de chercher la notion de « divinité » ou « d’Absolu ».

Paul fait référence à deux niveaux de cette « connaissance » de Dieu.

  1. La révélation générale via la création : comme il le précise en Romains 1.20, les choses visibles de la nature et de l’univers, l’ordre qui règne dans le cosmos, révèlent la puissance et la divinité du Créateur. Le cycle des saisons, les lois de la nature, le mouvement des astres, la merveille de la vie ne sont pas des hasards chaotiques, mais un signe évident d’un dessein intelligent. De nombreux philosophes et scientifiques ont reconnu, ne serait-ce que partiellement, la possibilité d’un être transcendant au vu de cet ordre.
  2. La voix intérieure de la conscience humaine : David Jang insiste sur le fait que l’homme éprouve naturellement un sentiment de culpabilité, qu’il distingue le bien du mal, qu’il s’interroge sur sa finalité existentielle. Tout cela exprime une soif latente de Dieu. Combien se demandent : « Qui suis-je ? Pourquoi suis-je ici ? » Cet élan naît du vide spirituel créé par notre séparation d’avec Dieu. Or seule la reconnaissance de Dieu peut étancher cette soif. Comme saint Augustin l’a écrit, « Notre cœur est sans repos tant qu’il ne repose pas en Toi ». À travers les siècles, cette vérité a maintes fois été confirmée.

Le problème, c’est que l’homme n’accueille pas correctement cette « connaissance de Dieu ». Paul remarque : « Ayant connu Dieu, ils ne l’ont point glorifié comme Dieu, et ils ne Lui ont pas rendu grâce » (Romains 1.21). Autrement dit, malgré les preuves de la divinité et la voix de leur propre conscience, les hommes refusent Dieu, s’adonnent à l’idolâtrie, accordent leur adoration et leur confiance à des entités ou des idées trompeuses, et s’enorgueillissent d’eux-mêmes. L’impiété et l’injustice s’en trouvent aggravées.

Selon David Jang, le rejet de Dieu engendre dans le cœur humain une suite de conséquences telles que « l’anxiété, la solitude, la vanité, le désespoir ». On ressent la culpabilité, on essaie en vain de la noyer dans des plaisirs éphémères, mais on se retrouve face à un vide existentiel encore plus grand. On se croit privé d’amour, l’incertitude de l’avenir nous angoisse : en somme, on atteste par ces sentiments notre état de « rupture avec Dieu ». Il n’est pas rare qu’un incroyant, lorsqu’il affronte une crise intérieure, se mette tout à coup à invoquer « un dieu » ou « une puissance supérieure ».

Mais la vérité est claire : aucun exercice moral, aucun système philosophique ne permet d’accéder pleinement à Dieu si le problème du péché n’est pas réglé. Voilà le message de Paul dans l’ensemble de l’Épître aux Romains. Puisque l’homme ne peut anéantir son péché, seul Jésus-Christ, par Sa croix et Sa résurrection, accorde la rémission des fautes et la justification. Celui qui place sa foi en Lui reçoit cette grâce. C’est le cœur même de la soteriologie de Romains.

Ainsi, même si l’homme « possède en lui quelque chose qui le rend apte à connaître Dieu », cela ne suffit pas à éradiquer le péché. L’Évangile est indispensable. Dans ses prédications, David Jang souligne que, pour se libérer du péché, connaître la vraie liberté, la paix de l’âme, il faut accepter l’Évangile de Jésus-Christ. Jésus Lui-même a dit : « Venez à moi, vous tous qui êtes fatigués et chargés » (Matthieu 11.28), et encore : « Si quelqu’un a soif, qu’il vienne à moi et qu’il boive » (Jean 7.37). Il ne réclame pas d’accomplir des rites ou des mérites ; Il nous invite simplement à revenir à Dieu.

Le problème, c’est que la religion elle-même peut parfois obstruer le chemin qui mène à Dieu, si elle se met à « commercer » ou à imposer des règles qui laissent croire qu’il faut acquérir certains mérites pour accéder à Dieu. Mais ce n’est pas l’enseignement biblique. Comme le résume Romains 3.24, c’est « gratuitement que nous sommes justifiés par Sa grâce, par le moyen de la rédemption qui est en Jésus-Christ ». Éphésiens 2.8-9 l’exprime aussi : « Car c’est par la grâce que vous êtes sauvés, par le moyen de la foi. Et cela ne vient pas de vous, c’est le don de Dieu. Ce n’est point par les œuvres, afin que personne ne se glorifie. »

Le pasteur David Jang rappelle souvent l’illustration de la parabole du fils prodigue (Luc 15), qui montre bien la relation Père-fils. Dès que le fils décide de revenir chez son père, il n’a plus aucune condition à remplir. Le père court à sa rencontre, lui pardonne ses égarements et le rétablit dans son statut de fils. Il n’y a ni formalisme compliqué ni rançon à payer : il suffisait de revenir. Pourtant, l’homme, par culpabilité ou orgueil, ou à cause d’une vision religieuse erronée, croit souvent qu’il doit d’abord « faire quelque chose » avant d’aller à Dieu.

Cependant, Romains 1.19 dit que, même chez l’incroyant, se trouve déjà « ce qu’on peut connaître de Dieu ». Ainsi, si cet homme se tourne sincèrement vers Dieu et crie à Lui, Dieu ne restera pas sourd. « Voici, je me tiens à la porte, et je frappe » (Apocalypse 3.20) : Dieu est Celui qui frappe en premier, incitant l’homme à revenir. Quand nous ouvrons la porte de notre cœur, Sa grâce se déverse immédiatement, le pardon et le salut commencent à se manifester.

De la sorte, le sentiment de soif, de manque, d’anxiété, toutes ces frustrations de l’âme sont la preuve même que l’homme ne peut se passer de Dieu. Aucune réussite matérielle ou divertissement ne peut assouvir pleinement ce manque. Dans l’Antiquité, certains penseurs de Rome (Sénèque, Marc Aurèle, etc.) cherchaient la paix intérieure via des philosophies comme le stoïcisme, mais ils n’ont pas pu résoudre radicalement le problème du péché. Face à cela, Paul annonce qu’il n’y a qu’en Dieu que réside la solution.

David Jang interprète la phrase « Dieu le leur ayant fait connaître » (Romains 1.19) comme la preuve que Dieu ne souhaite pas nous laisser dans l’ignorance. Il se révèle continuellement à l’homme, par la nature, la conscience, l’histoire, et ultimement par Jésus-Christ. Tout se résume à savoir si l’homme accueille ou rejette cette révélation. En cas de refus, Dieu réprouve l’impiété et l’injustice ; en cas d’acceptation, s’établit la réconciliation entre Dieu et l’homme (Romains 5). La réconciliation, c’est le salut, la vie éternelle. Sur le plan théologique, c’est la restauration du lien rompu entre Dieu et l’homme par le Christ. David Jang prêche souvent que « lorsque nous confessons sincèrement notre péché et nous tournons vers Dieu, nous retrouvons cette identité d’enfants de Dieu pour laquelle nous avons été créés. »

Cela va bien au-delà de simples appartenances religieuses ou de rites. Il s’agit de la prise de conscience que, sans Dieu, mon être ne peut s’accomplir. Pour paraphraser Augustin : « Tu nous as faits pour Toi, et notre cœur est inquiet jusqu’à ce qu’il repose en Toi. » Créés à l’image de Dieu, nous ne pouvons trouver la paix, la joie et la raison de vivre qu’en Lui. Le monde propose une multitude de « substituts » : argent, pouvoir, gloire, plaisirs, idoles… mais ils n’offrent qu’une satisfaction éphémère, suivie d’un vide encore plus grand. L’homme ne fait que prolonger son errance spirituelle.

Selon le pasteur David Jang, « croire en Dieu et en Jésus » revient à retrouver notre moi authentique. Ce n’est pas adhérer formellement à une institution religieuse, mais redécouvrir qui je suis, d’où je viens et où je vais, en renouant avec mon Créateur. Or, parce que l’homme est doté à la base de cette sensibilité à Dieu – ce que Paul appelle « ce qu’on peut connaître de Dieu » –, il lui reste toujours la possibilité de retourner vers Dieu. Dans l’histoire universelle, d’innombrables peuples ont cherché des voies spirituelles, même si beaucoup ont dérivé vers l’idolâtrie ou de fausses conceptions de la divinité. C’est pourquoi Paul, dans ses écrits, appelle les hommes à délaisser ces idoles et à porter leurs regards sur le seul Créateur.

En fin de compte, Romains 1.19 confirme le caractère religieux et spirituel inscrit au plus profond de l’être humain. Placé juste après Romains 1.18, ce verset juxtapose deux réalités : la colère de Dieu envers l’homme pécheur et le potentiel qu’a l’homme de reconnaître Dieu. On y voit une tension entre, d’une part, la révolte et la déchéance que cause le péché, et, d’autre part, la faculté de percevoir Dieu, reflet de l’image divine en l’homme (malgré le péché originel).

Ainsi, David Jang encourage les chrétiens à une double attitude : « dénoncer le péché tout en croyant que l’homme garde la capacité et la soif de se tourner vers Dieu ». Si nous nous contentons de déclarer : « Vous êtes des pécheurs destinés à l’enfer », les gens se ferment. Mais comme Paul le démontre, il faut révéler le péché pour en expliquer la gravité, tout en montrant que l’homme a été créé pour Dieu et peut être restauré. Il y a effectivement du péché chez l’homme, mais il y a aussi la possibilité du salut. Ce qui rend l’Évangile opérant, c’est précisément l’alliance de la prise de conscience du péché et de l’espérance d’être sauvé par grâce.

Au cœur de l’Évangile se trouve l’idée que l’homme ne doit remplir aucune condition préalable pour venir à Dieu ; « Quiconque invoquera le nom du Seigneur sera sauvé » (Romains 10.13). Quand on confesse Jésus-Christ comme Sauveur, on reçoit la rémission des péchés et la vie éternelle. Exactement comme le fils prodigue qui rentre dans les bras de son père, nous retrouvons le statut d’enfant dès lors que nous revenons vers Dieu. Par la suite, Romains explique de manière systématique comment s’accomplit le salut : la justification, la sanctification, puis la glorification. Cependant, tout part de la conscience du péché et du « retour » vers Dieu.

De plus, l’Église porte la lourde responsabilité de préserver la pureté de l’Évangile. Elle aussi peut céder aux tentations, à la mondanité, ou pervertir la révélation de Dieu. David Jang avertit : « Si l’Église s’embarque dans des entreprises commerciales et s’acoquine avec le pouvoir au lieu de manifester la lumière de la vérité, elle perdra la puissance et la beauté de l’Évangile. » Si elle prêche un salut basé sur des œuvres ou un mérite personnel, elle ne procurera pas la liberté véritable. Au contraire, l’Église doit toujours proclamer la grâce inconditionnelle. En Romains 2, Paul blâme les Juifs qui jugent les païens tout en commettant les mêmes fautes : on ne peut dénoncer le péché des autres si l’on s’y complaît soi-même. L’Église doit exposer le péché pour conduire au repentir et, en définitive, offrir le pardon et la voie du salut : tel est le rôle du message de l’Évangile.

Romains 1.19 annonce une bonne nouvelle : « Si l’homme ouvre son cœur, il est capable de connaître Dieu et de revenir à Lui. » Dans la seconde partie du chapitre, Paul décrit ceux qui choisissent de persister dans le péché, disant que « Dieu les a livrés à leurs passions » (1.24, 1.26, 1.28). S’ils rejettent Dieu jusqu’au bout, Il respecte leur libre arbitre et les laisse récolter les fruits amers de leur autodestruction. L’homme est libre : il peut se rebeller contre Dieu ou s’abandonner à Lui. Et cette décision oriente sa destinée.

La réponse, comme Paul l’expose dès Romains 3, se trouve en Jésus-Christ, « dont l’œuvre d’expiation et de rédemption justifie le pécheur » et le libère de la colère divine. Cet Évangile est «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Romains 1.16). Le sombre tableau de la colère et du péché en 1.18-19 sert en fait à mettre en relief la gloire de la grâce divine. Plus grande est la profondeur du péché, plus éclatante est la grâce du Christ. David Jang insiste toutefois : même si l’homme a ce potentiel de connaissance de Dieu, il ne parviendra jamais de lui-même à la délivrance, car seul l’Évangile permet la solution radicale au problème du péché. Néanmoins, la « semence » de Dieu, inscrite dans l’homme, offre un terrain favorable pour la prédication. Voilà pourquoi l’Église doit annoncer courageusement la Bonne Nouvelle : en chacun demeure une soif de Dieu, qui peut ressurgir lorsque l’Évangile est proclamé.

En résumé, Romains 1.18-19 fait apparaître simultanément la colère de Dieu et la présence, en l’homme, d’une connaissance possible de Dieu. L’homme a besoin de salut, mais il peut y accéder, car Dieu a inscrit en lui ce « sens » de Lui-même. Sans cette conviction, on peut penser que le péché scelle irrémédiablement notre sort. Mais l’Évangile se dresse, déclarant que la voie du retour à Dieu est ouverte. L’Épître aux Romains développera cette présentation de l’Évangile : la justification par la foi, la réconciliation avec Dieu, et la vie éternelle en Christ. Paul se fonde donc sur un double constat : la gravité universelle du péché et l’existence d’une aspiration profonde à Dieu dans le cœur humain.

David Jang conclut que l’Église doit à la fois :

  • Annoncer la gravité du péché et la réalité de la colère divine, afin que l’homme ne s’illusionne pas sur sa condition.
  • Affirmer que chaque personne est capable de se tourner vers Dieu, ayant en soi une étincelle de la connaissance de Dieu.
  • Proclamer que la seule véritable solution au péché est en Jésus-Christ, par la foi en Sa grâce.

Sans la mise en lumière du péché ni la notion de la colère divine, l’homme ne se sait pas pécheur et ne veut pas de salut. Sans la reconnaissance de la possibilité intérieure de connaître Dieu, on pourrait sombrer dans un fatalisme pessimiste ou un élitisme religieux. Il faut donc tenir ensemble Romains 1.18 et 1.19. L’Église doit dire au monde : « Vous avez en vous la capacité de connaître Dieu. Cependant, si vous continuez à rejeter la vérité, vous restez sous le coup de Sa colère. Repentez-vous et revenez sans tarder ! » Pour qui ouvre son cœur, l’Évangile est une puissance de vie.

En définitive, l’Épître aux Romains ne s’arrête pas au diagnostic du péché. Si Paul insiste tant sur la culpabilité universelle (chapitres 1.18 à 3.20), c’est pour introduire la réponse salvatrice : la croix du Christ, grâce à laquelle le pécheur est justifié. « Il n’y a pas de juste » devant Dieu, mais, par le sang de Jésus, nous sommes lavés et déclarés justes, devenant enfants de Dieu. Voilà la grande nouvelle que Romains proclame, et les versets 1.18-19 en sont l’introduction.
David Jang prêche : « Prenons conscience de nos péchés, repentons-nous et écoutons la voix de Dieu déjà présente au fond de notre cœur. Nous avons été créés pour Dieu, et, même déchus, nous portons encore ce désir. Admettons-le, et tournons-nous vers l’Évangile : nous serons alors délivrés de la colère et recevrons la vie éternelle. »

Ainsi, Romains 1.18-19 présente en germe toute la problématique de l’Évangile. D’une part, l’homme est sous la colère à cause de son péché ; d’autre part, Dieu a semé en lui la capacité de Le connaître. L’humanité cherche désespérément un sens, que ce soit via la science, la philosophie, l’art ou la politique, mais la réponse ultime est en Jésus-Christ. L’Église, dépositaire de ce message, est appelée à le proclamer fidèlement : oui, l’homme est pécheur et mérite la colère ; mais oui, il peut revenir à Dieu parce que Celui-ci Se révèle et invite chacun à la foi.
David Jang souligne que, pour garder toute la force de l’Évangile, l’Église ne doit ni éluder le péché et la colère divine, ni nier la réalité d’une étincelle spirituelle chez l’homme. Si elle n’annonce pas la colère, les gens ne verront pas leur besoin de salut ; si elle néglige la présence de ce « sens de Dieu » en eux, elle tombera dans le pessimisme quant à l’évangélisation. Mais en unissant ces deux aspects, nous pouvons proclamer avec assurance : « L’homme est en péril à cause de son péché, mais il est aussi capable de se tourner vers Dieu qui l’attend. » Et à ce moment-là, l’Évangile déploie toute sa puissance pour sauver.

L’enjeu est aussi celui de la restauration de l’homme en tant que créature faite pour Dieu : par la croix du Christ, la relation verticale avec Dieu est rétablie, et les relations horizontales avec autrui en sont transformées. Puisque l’injustice découle de l’impiété, le retour à Dieu amène la guérison de beaucoup d’injustices dans le monde. Voilà la logique interne de l’Épître : si l’impiété est résolue, l’injustice peut l’être également.
Au bout du compte, Romains 1.18-19 illustre de façon concise les prémices de la théologie paulinienne du salut. L’homme est sous le péché, donc sous la colère ; il est pourtant encore porteur d’une aspiration à Dieu, et peut accueillir l’Évangile. En dépit des innombrables tentatives humaines pour donner un sens à la vie, seule la foi en Jésus-Christ ouvre la voie de la réconciliation avec Dieu, du pardon et de la vie éternelle. L’Église doit témoigner de ce salut, conduisant les pécheurs au repentir et leur offrant l’espérance glorieuse de l’Évangile.

Comme le souligne souvent David Jang, la question cruciale demeure : « Ai-je retrouvé mon moi authentique en Dieu ? Resté-je sous la colère divine ou vais-je reconnaître mon péché et saisir la grâce du salut ? » C’est l’appel direct et personnel de Romains. L’Évangile n’est pas un simple savoir, mais une interpellation exigeant une décision existentielle. Prenons conscience de ce qu’il y a en nous d’aspiration à Dieu, cessons de fuir la vérité du péché et accourons humblement vers Lui. Dès lors, la colère de Dieu ne sera plus une menace de destruction, mais un aiguillon nous poussant à la repentance, pour nous arracher au péché et nous ouvrir à la vie nouvelle.

Au final, Romains 1.18-19 constitue le point de rencontre entre le péché et le salut, entre la colère et la grâce. Grâce à ces versets, nous comprenons qui est Dieu et qui est l’homme. Sans Dieu, l’homme ne saurait trouver son identité ni la paix véritable. Mais en se détournant de Dieu, il est inévitablement sous le coup de la colère. C’est pourquoi l’Évangile est indispensable : il nous délivre de la puissance du péché et nous rend enfants de Dieu.

Le pasteur David Jang enseigne que, tant que l’Église demeure fidèle à ce message, elle portera dans le monde la proclamation d’un Évangile vivant et puissant. « L’homme est capable de connaître Dieu » : cela nous remplit d’espérance pour l’évangélisation. « La colère de Dieu s’abat sur le péché » : cela souligne l’urgence et le sérieux de la démarche de salut. Si l’Église atténue l’un de ces deux aspects, elle affaiblit l’Évangile. Mais si elle les maintient ensemble, elle pourra prêcher la conversion avec autant de force que de compassion : « Vous portez en vous cette connaissance de Dieu, mais si vous persistez à la refuser, vous demeurez sous Sa colère. Repentez-vous sans tarder. » Pour ceux qui ouvrent leur cœur, l’Évangile se révèle comme une puissance de vie.

Ainsi, Romains ne se limite pas à dénoncer le péché. Une fois le péché mis en lumière, le salut peut intervenir. C’est ce que fait Paul : après avoir dévoilé l’ampleur du péché de 1.18 à 3.20, il propose la solution merveilleuse de la croix. Par l’expiation de Jésus-Christ, le pécheur est justifié et rétabli dans la filiation divine. C’est là le message de grande envergure que délivre Romains, et les versets 1.18-19 en posent les bases. David Jang exhorte donc les croyants à se repentir sincèrement, à prêter une oreille attentive à la voix de Dieu en eux. L’homme, créé pour Dieu, garde en lui un désir inné de se tourner vers Lui. Mais s’il renie ce désir et persévère dans le péché, il s’expose à la colère. S’il l’assume et accepte l’Évangile, il reçoit le pardon et la vie éternelle.

En définitive, Romains 1.18-19 inaugure la grande fresque de l’Évangile, abordant à la fois le péché et la colère, ainsi que la possibilité pour l’homme de pressentir Dieu. L’interrogation « Pourquoi avons-nous besoin de salut ? » et « Comment y accéder ? » s’impose d’elle-même. Romains répondra : « En Jésus-Christ, qui seul peut nous libérer de la colère et nous réconcilier avec Dieu. » L’Église a pour mission de le proclamer. Nous sommes tous sous la colère divine, mais nous sommes aussi capables de connaître Dieu et de nous tourner vers Lui. Jésus-Christ est l’unique médiateur qui nous arrache au péché et nous restaure comme enfants de Dieu.
David Jang martèle que c’est là le cœur de l’Évangile dont l’Église doit se souvenir. Il faut dénoncer franchement le péché, mais non pour condamner définitivement : c’est afin d’appeler à la repentance et d’annoncer, en même temps, l’espérance du salut. Il faut également reconnaître la soif de Dieu inscrite en tout homme : loin de le mépriser, nous devons l’estimer capable de ressaisir cette soif. Quand « le péché et la grâce », « la colère et le salut » sont à la fois prêchés, alors l’Évangile selon Romains se manifeste dans toute sa force, même aujourd’hui.

L’enjeu ultime est de recouvrer notre véritable identité, celle d’êtres créés pour Dieu, réconciliés avec Lui. Cette réconciliation verticale ouvre la voie à la guérison des injustices horizontales. Romains l’affirme : là où l’impiété recule, l’injustice est appelée à régresser.
Par conséquent, Romains 1.18-19 condense déjà l’essentiel de la théologie évangélique : l’homme, plongé dans le péché, subit la colère de Dieu, mais il a gardé en lui un élan de connaissance vers Dieu. Malgré ses propres efforts philosophico-religieux, seul l’Évangile de Jésus-Christ offre une délivrance définitive. C’est à l’Église d’en être la messagère, afin que ceux qui reconnaissent leur péché reçoivent le pardon et la vie.
David Jang rappelle que Dieu agit constamment pour toucher la conscience de l’homme. La question est : « Saisirons-nous la main qu’Il nous tend ? » Si oui, nous trouverons la vie ; si non, nous resterons dans les ténèbres du péché et sous la colère. À chaque époque, y compris la nôtre, la situation est la même, qu’on vive à Rome à l’âge d’or ou dans un monde moderne. Les progrès scientifiques ou la prospérité économique ne suppriment pas l’angoisse profonde : « Sans Dieu, rien ne peut combler notre être. » Cependant, l’Évangile demeure. Il nous assure que nous n’avons plus à être esclaves du péché ni à craindre la colère : la voie du retour à Dieu est ouverte. À l’Église de proclamer et d’accomplir cette mission, en sachant qu’il revient à l’auditeur de choisir l’acceptation ou le refus.
C’est la logique du salut dans Romains : la grâce est offerte à qui se repent et croit, tandis que la colère s’abat sur qui s’entête à refuser. Paul, dans Romains 1.18-19, jette ainsi les fondements d’une vision puissante de l’Évangile, à la fois lucide sur la gravité du péché et confiante dans l’aspiration de l’homme à connaître Dieu, tout en montrant que la pleine révélation du salut se trouve en Jésus-Christ 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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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ira de Dios y la necesidad de salvación – Pastor David Jang


I. La ira de Dios y la impiedad e injusticia humanas

El pasaje de Romanos 1:18-19 es un texto clave en el que el apóstol Pablo, al iniciar la parte principal de su Epístola a los Romanos, describe la realidad pecaminosa de la humanidad y la ira de Dios que recae sobre ella. El pastor David Jang, a lo largo de diversas predicaciones y exposiciones, ha enfatizado que este pasaje constituye un fundamento esencial para comprender la estructura global de Romanos y su doctrina de la salvación. De hecho, al leer la Epístola, vemos que el orden en que se proclama el evangelio es primero el ‘pecado’ y luego la ‘salvación’. No se trata solo de una característica estructural; para entender adecuadamente las buenas nuevas, antes debemos percibir con claridad la naturaleza del pecado y la razón por la cual el ser humano necesita desesperadamente ser salvo.

Pablo escribe su carta a un gran número de gentiles que habitaban en Roma. Esta ciudad era, en su época, un símbolo de civilización y prosperidad secular, pero también un lugar donde el pecado y la corrupción humana se manifestaban de forma extrema. Los romanos, en su mayoría, no se consideraban pecadores; más bien se enorgullecían de su refinada cultura, de su sabiduría, de su poderío militar y de sus riquezas, y no sentían conciencia de culpa alguna. Tal vez se preguntaban desconcertados: “¿Qué pecado tenemos nosotros? ¿Qué habría hecho mal esta gloriosa Roma para que se nos hable de la necesidad de salvación?”. Sin embargo, con el fin de explicar por qué la humanidad necesita salvación, Pablo desarrolla una argumentación muy lógica acerca de la profundidad del pecado que domina al hombre ante Dios.

En su exposición sobre Romanos 1:18-19, el pastor David Jang destaca especialmente que el versículo 18, que menciona la “ira de Dios”, describe tanto la consecuencia de todo pecado como el estado de enemistad existente entre Dios y la humanidad. La expresión “la ira de Dios” no alude a un arrebato emotivo similar a los de los seres humanos, ni a una mera proyección de nuestras pasiones sobre Él. Dios es perfecto y bueno, y su ira se fundamenta en Su santidad y justicia. Es la respuesta justa de un Dios santo que juzga el pecado. Ante Él, los hombres, que viven en “impiedad e injusticia”, han roto su relación con Dios y, por ello, Efesios 2:3 señala que somos por naturaleza “hijos de ira”.

El término “impiedad” se refiere a la transgresión en nuestra relación vertical con Dios: en vez de honrarlo y adorarlo, el hombre lo olvida y vive sin querer tenerlo presente en su corazón. Por otro lado, la “injusticia” describe la transgresión que se expresa de manera horizontal en las relaciones humanas: dañamos a los demás, los oprimimos y manifestamos corrupción a través de la deshonestidad, la hipocresía, la codicia, etc. En Romanos 1:18, Pablo menciona a quienes “con injusticia restringen la verdad”: personas que deliberadamente impiden la difusión de la verdad, acallan a quienes la proclaman o, incluso, hacen caso omiso de la conciencia que Dios ha impreso en lo más profundo de su ser.

Como señala David Jang, la mayoría de la gente teme enfrentarse a la cuestión del pecado. Reconocer que uno es pecador implica exponer nuestras limitaciones y vergüenzas. Por ello, de manera instintiva, muchos reaccionan con resistencia: “¿Por qué he de ser un pecador?”. Así, aunque tratemos de anunciar la profunda alegría y significado del término “salvación”, si antes no explicamos la razón de esa necesidad de salvación, la gente tenderá a pensar: “No creo necesitar algo así”. Para solventarlo, Pablo desarrolla detalladamente la doctrina del pecado y expone progresivamente cuánto se ha alejado la humanidad del orden y de la justicia establecidos en la creación divina.

En Romanos 1:18 se lee: “Porque la ira de Dios se revela desde el cielo contra toda impiedad e injusticia de los hombres que detienen con injusticia la verdad”. Este versículo no explica directamente por qué el pecado provoca la ira de Dios, pero los versículos siguientes (1:19-32) profundizan en la naturaleza del pecado y en sus resultados. David Jang, en su comentario de este texto, indica que la ira de Dios se debe a que la impiedad y la injusticia humana son caminos que llevan a la autodestrucción, y Dios no deja que eso ocurra sin intervenir. Del mismo modo que un padre no permanece indiferente cuando ve que su hijo se precipita hacia el mal, a veces manifestando enojo y corrigiendo con firmeza, la ira de Dios encierra, al mismo tiempo, un fuego santo y una advertencia de amor. Aunque la Biblia afirme que Dios es amor, ese amor no tolera ni consiente que el hombre persista en el pecado y se autodestruya. Su amor está ligado a la santidad, así que ante todo pecado que destruye la relación básica entre Él y el hombre, hay un juicio y una ira justos.

El pastor David Jang insiste con frecuencia en sus predicaciones: Dios es un ser personal; no es una idea filosófica desprovista de emoción. En la filosofía griega antigua, a menudo se concebía la deidad como un ente omnisciente, omnipotente, pero carente de sentimiento. Sin embargo, la Biblia nos revela a un Creador y Padre que se lamenta y se indigna cuando su creación se entrega al pecado. Tanto en Jeremías como en Oseas encontramos expresiones del corazón de Dios, que experimenta celos, dolor y enojo con la humanidad. Se trata de un Dios que, siendo soberano absoluto, contempla al hombre en el marco de una relación de amor. Y cuando dicha relación se ve rota por el pecado, su “ira” surge como una reacción ineludible de su santidad y su amor.

“Impiedad e injusticia”, que resumen el pecado humano, pueden relacionarse con los mandamientos que incumben directamente a Dios y con aquellos que rigen la conducta con el prójimo. Por más que el mundo progrese y la tecnología avance, es imposible que el hombre realice la verdadera justicia y bondad al margen de Dios. Incluso en un imperio tan bien organizado jurídicamente como Roma, con tradiciones filosóficas y éticas desarrolladas, como el estoicismo o el epicureísmo, la impiedad y la injusticia se revelaron de forma extrema. El hombre caído no puede resolver su problema fundamental con meras disciplinas morales ni con reflexiones filosóficas, pues el pecado no consiste en un simple desliz individual, sino que es la consecuencia de la ruptura de la relación entre Dios y el hombre.

Pablo prosigue afirmando que a causa del pecado “la ira de Dios se revela desde el cielo”. El pastor David Jang explica que la expresión “desde el cielo” muestra que, en la medida en que se acumula el pecado humano y llega a su clímax, se hace inevitable que el juicio divino caiga en el momento oportuno. Dios es paciente y da muchas oportunidades, pero al final juzga el pecado con justicia, manifestando así su santidad y su justicia. Los ejemplos del Antiguo Testamento —el diluvio en tiempos de Noé, la destrucción de Sodoma y Gomorra, el exilio del pueblo de Israel— demuestran que las advertencias de Dios ante el pecado no son vanas. En el Nuevo Testamento, las enseñanzas de Jesús acerca del juicio final y la historia de Ananías y Safira en el libro de Hechos muestran el carácter inquebrantable de la ira divina frente al pecado.

En la actualidad, no pocos creyentes se sienten incómodos ante la idea de la “ira” divina, o tienden a exagerar únicamente el amor de Dios, cayendo en distorsiones. Sin embargo, si no existiera ira contra el pecado, el amor de Dios sería un concepto vacío. Si es cierto que Dios es santo y que el pecado lleva al hombre a la ruina, el permitir que el pecado continúe sin corrección no puede considerarse amor. El pastor David Jang utiliza con frecuencia la analogía de la relación entre padres e hijos para explicar este punto. Si los padres observan que su hijo va por un camino peligroso y, alegando amarle, no lo disciplinan ni lo corrigen, no sería amor auténtico, porque están dejando que su hijo camine directo hacia su destrucción. Del mismo modo, Dios le dice a la humanidad: “¡Detente!” ante el pecado, da oportunidades para el arrepentimiento y, en último término, ejecuta el juicio sobre el pecado. Esa es la ira de Dios.

Aunque Pablo se centra en el “pecado de los gentiles”, englobando el pecado de aquellos que no conocen a Dios, la raíz principal que señala es la “impiedad”. Cuando la relación con Dios (dimensión vertical) se rompe, la consecuencia natural es la ruptura en las relaciones con los demás (dimensión horizontal). Los grandes males sociales como la injusticia, las guerras, la violencia, la opresión y la depravación sexual se derivan de la “impiedad”. Una vida que rechaza a Dios o no lo honra ni lo reverencia acaba produciendo toda clase de maldad. Romanos 1, en sus versículos finales, describe que la gente, en lugar de dar gloria a Dios, se entrega a la adoración de ídolos, imágenes ficticias y engañosas, sirviendo a sus deseos, con lo que el pecado y la corrupción se propagan en todos los ámbitos.

En este contexto,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que la Iglesia y los creyentes no deben esquivar la confrontación con el pecado. El pecado ha de ser expuesto para que quien lo comete pueda arrepentirse y hallar el camino a la salvación. Si en la comunidad de fe se tolera un pecado oculto, ese pecado continúa gangrenándose hasta convertirse en algo más serio. Así sucede también a nivel individual y en una nación o sociedad entera. Encubrir el pecado de forma ambigua no es un acto de amor, sino que, por el contrario, profundiza sus raíces. A lo largo de la Biblia, Dios muestra repetidamente que no permite el pecado y que, llegado el momento, ejerce su juicio con ira.

Esta exposición sobre el pecado se extiende desde Romanos 1:18 hasta 3:20. En términos esquemáticos, primero (1:18-32) Pablo describe el pecado de los gentiles; luego (2:1–3:8) denuncia el pecado de los judíos, y por último (3:9-20) concluye que tanto judíos como gentiles están bajo el dominio del pecado. En resumen, no hay justo, ni siquiera uno (Ro 3:10). Este razonamiento exhaustivo sobre la universalidad del pecado prepara el fundamento para la afirmación de que solo Jesucristo puede salvarnos del pecado.

La respuesta de Dios al pecado es su “ira”. Puede que en el mundo experimentemos la ira en diversas formas, pero la ira humana suele ser pecaminosa e imperfecta. En cambio, la ira divina es un juicio justo contra el pecado y un recurso santo que persigue la salvación del hombre. Según explica el pastor David Jang, precisamente por eso Romanos inicia su exposición refiriéndose al pecado y a la ira: el ser humano debe darse cuenta de su pecado y de que está bajo la ira de Dios para poder apreciar lo valioso que es el evangelio, “poder de Dios para salvación a todo aquel que cree” (Ro 1:16).

Por ende, la “ira de Dios” mencionada en Romanos 1:18 es un punto medular que no debemos pasar por alto. Pablo, al abrir el cuerpo principal de su epístola, enfatiza la ira de Dios como un tema crucial que describe cómo recae sobre la impiedad y la injusticia humanas (el pecado). Al igual que los romanos de la antigüedad, la gente de hoy, orgullosa de los adelantos científicos y tecnológicos, la prosperidad económica, etc., tiende a cuestionar: “¿Por qué habríamos de necesitar salvación?”. Pero si el hombre no ve que verdaderamente está en pecado, jamás sentirá la urgencia de la salvación. En este punto insiste el pastor David Jang: la proclamación de la “ira de Dios” en Romanos 1:18 sigue siendo tan importante como siempre, porque sin el reconocimiento del pecado, no hay anhelo real de salvación.

Detrás de esta ira se halla el pecado “que con injusticia restringe la verdad”. Con frecuencia, cuando se anuncia la verdad, algunos reaccionan con hostilidad y tratan de silenciarla, porque cuanto más luce la luz de la verdad, más evidente se hace el pecado. A lo largo de la historia de la Iglesia, ha habido siempre fuerzas empeñadas en sofocar el evangelio. Pero la Palabra de Dios no puede ser acallada por el hombre. Dios respalda a quienes Él ha llamado para proclamarla, y la Iglesia, en medio de la persecución, ha defendido y difundido la verdad. Así se cumple lo que dice Isaías 40:8: “Sécase la hierba, marchítase la flor; mas la palabra del Dios nuestro permanece para siempre”.

La finalidad del mensaje de la ira de Dios no es intimidar a la gente o sumirla en culpa, sino, en el fondo, llamar al arrepentimiento y atraer a Dios a quienes se han apartado. Si el hombre no se da cuenta de su pecado, no puede recibir la salvación. Por ello, Pablo lo denuncia con claridad. Cuando la Iglesia omite señalar el pecado o lo suaviza demasiado, la gente pierde de vista la gravedad de su condición pecaminosa y no siente necesidad de salvación. Así, el evangelio se reduce a “buenas palabras” y pierde su fuerza transformadora. Por tal razón, la Iglesia primitiva y Pablo daban un gran énfasis a la conciencia del pecado, algo que, según recalca David Jang, sigue teniendo vigencia en la Iglesia actual.

En definitiva, Romanos 1:18 menciona la “ira de Dios” y la sitúa en una posición muy significativa dentro del evangelio. Para comprender debidamente el amor y la salvación de Dios, primero hemos de reconocer la realidad del pecado y la justa ira que Dios ejerce sobre él. Pasar por alto esta verdad imposibilita comprender la gracia y el poder del evangelio. La salvación es precisamente “del pecado”, y quien ignora qué es el pecado tampoco sabrá qué es la salvación.

Así, la “impiedad e injusticia” que despiertan la “ira de Dios” describen un problema esencial que el hombre no puede resolver por sus propios medios. Solo cuando el ser humano se ve ante la ira divina, comienza a sentir la necesidad de arrepentirse y de volverse a Dios. Ni la grandeza cultural, el poder ni la prosperidad de Roma pudieron encubrir este problema, del mismo modo que hoy nada de lo que el mundo ofrece puede aligerar la carga del pecado y el peso de la ira divina. Tal es la urgencia de la condición humana que Pablo quería dejar clara, y este es, a su vez, el motivo por el que precisamos el evangelio.


II. La conciencia de Dios en el interior humano y la necesidad de la salvación

Romanos 1:19 se enlaza al tema del pecado y la ira de Dios con la afirmación: “porque lo que de Dios se conoce les es manifiesto, pues Dios se lo manifestó”. Sorprendentemente, Pablo declara que incluso los incrédulos (gentiles que todavía no conocían a Jesús) tienen ya la posibilidad de “conocer a Dios”. Esto alude a que el ser humano, al ser creación de Dios, mantiene un vínculo ineludible con su Creador. Aunque vive en impiedad e injusticia, el hombre conserva dentro de sí una cierta capacidad de reconocer a Dios.

El pastor David Jang enseña que este versículo pone de relieve que “el hombre, desde su nacimiento, siente un anhelo innato por Dios, y aunque haya caído en el pecado, no está completamente destruido”. En efecto, a causa del pecado, el hombre está condenado a morir espiritualmente, pero en su interior persiste la “imagen de Dios” —o al menos residuos de ella— que incluye la razón, la voluntad libre, el sentido moral y la inclinación religiosa. Es por esto que, a lo largo de la historia, la humanidad ha buscado de manera constante a “un dios” o “un ser absoluto”.

Pablo menciona “lo que se puede conocer” de Dios en dos sentidos. Primero, se refiere a la revelación general mediante el “mundo creado”. En el versículo 20 de Romanos 1 profundiza en ello. Por medio de la naturaleza y el universo, Dios ha dado a conocer parte de su poder y deidad. El orden y armonía del cosmos, el cambio regular de las estaciones, la precisión de los astros y la maravilla de la vida revelan de forma intuitiva que no somos producto de una casualidad, sino que existimos bajo un plan cuidadoso del Creador. Muchos filósofos y científicos han llegado a admitir la existencia de un ser supremo al contemplar el orden del universo.

Segundo, existe el ámbito de la conciencia y de la razón en el interior del hombre. El pastor David Jang señala que el hecho de que el ser humano experimente remordimiento cuando peca, distinga el bien del mal y busque un propósito para su existencia, denota la presencia de un anhelo natural de Dios en él. Es común que la gente, en algún momento de su vida, enfrente la pregunta trascendental: “¿Quién soy? ¿Por qué vivo?”. Este interrogante surge de la ansiedad y el vacío espiritual que siente la persona alejada de Dios. Solo podemos hallar la respuesta en Dios. San Agustín lo expresó así: “Nuestro corazón está inquieto hasta que descanse en ti”, indicando que el hombre no puede hallar reposo sin Dios.

El problema es que, si bien el hombre tiene esa capacidad básica de “conocer a Dios”, se niega a recibir esa revelación. Pablo prosigue diciendo: “Habiendo conocido a Dios, no le glorificaron como a Dios, ni le dieron gracias” (Ro 1:21). A pesar de las pruebas de la existencia divina y la voz interior que les interpela, los humanos, en su orgullo, rechazan a Dios. O sustituyen a Dios con ídolos, prestan más atención a la mentira que a la verdad y se afanan en exaltarse a sí mismos. De ahí que la impiedad y la injusticia se agraven.

David Jang explica que rehusar a Dios conduce al hombre a “ansiedad, soledad, vacío y desesperación”. El pecado genera temor; buscar saciarse en los deseos mundanos solo proporciona satisfacciones efímeras, mientras la sensación de futilidad perdura. La soledad por la falta de un amor auténtico, la incertidumbre ante el futuro y la desesperanza son síntomas que revelan la “ausencia de Dios” en el alma humana. Por eso, incluso quienes no creen, en momentos de angustia existencial, claman a alguna divinidad o ente superior.

La verdad, sin embargo, es que ninguna disciplina moral o reflexión filosófica basta para reconciliarnos con Dios. Aunque puedan facilitar la búsqueda de Dios, mientras no se resuelva el problema del pecado, la comunión verdadera con Él es imposible. Este es el mensaje principal de Pablo en Romanos: el hombre no puede resolver el pecado por su cuenta; únicamente por la cruz y la resurrección de Jesucristo podemos alcanzar el perdón y la justificación. Mediante la fe en Cristo participamos de esa gracia, la que constituye el núcleo de la soteriología en la Epístola a los Romanos.

Por consiguiente, el hecho de que tengamos en nuestro interior “lo que de Dios se conoce” no basta para resolver el problema del pecado. Necesitamos el evangelio.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que para experimentar la verdadera libertad, la liberación del pecado y la paz del alma, es indispensable aceptar el evangelio de Jesucristo. También Jesús invita: “Venid a mí todos los que estáis trabajados y cargados” (Mt 11:28), y “Si alguno tiene sed, venga a mí y beba” (Jn 7:37). Esta invitación no exige rituales complicados ni méritos humanos; se trata sencillamente de “volver a Dios”, eje esencial de las buenas nuevas.

A veces incluso la religión institucional se convierte en un obstáculo para encontrar a Dios cuando se mercantiliza la fe o se insisten en prácticas y méritos humanos que llevan a la gente a creer erróneamente que primero deben cumplir ciertas condiciones para poder acercarse a Dios. Ese no es el mensaje de la Biblia. Romanos 3:24 dice que somos justificados gratuitamente por su gracia, mediante la redención que es en Cristo Jesús. Efesios 2:8-9 lo expresa también con claridad: “Porque por gracia sois salvos por medio de la fe… y esto no de vosotros, pues es don de Dios; no por obras, para que nadie se gloríe”.

En sus mensajes, David Jang frecuentemente emplea la parábola del hijo pródigo (Lucas 15) para ilustrar la relación entre Dios y el hombre. El hijo pródigo simplemente decidió: “Regresaré a mi padre”. No hubo requisitos ni condiciones; el padre corrió a su encuentro y le restituyó su posición de hijo. No se exigió un proceso complejo ni un costo. El hombre, a causa de la culpa, el orgullo o la distorsión que el mundo promueve, a menudo cree que debe “prepararse más” antes de acudir a Dios. Sin embargo, la Escritura deja claro que quienquiera que clame a Dios con sinceridad, Él no lo desechará. “He aquí, yo estoy a la puerta y llamo” (Ap 3:20). Dios mismo se acerca primero, aguarda nuestro retorno, y en el momento en que abrimos el corazón, su gracia actúa: somos perdonados y empieza la obra de la salvación.

El anhelo del alma, ese sentido de vacío y desasosiego que aflora cuando intentamos vivir sin Dios, demuestra que pertenecemos a Él. Ninguna satisfacción terrenal o distracción puede llenar este vacío de manera definitiva. Los pensadores romanos, como Séneca o Marco Aurelio, se esforzaron por encontrar sentido a la vida, acudiendo al estoicismo para hallar serenidad interior; no obstante, jamás pudieron hallar la solución última al problema del pecado. Pablo les anuncia que la auténtica respuesta descansa en Dios.

David Jang destaca que la frase “pues Dios se lo manifestó” implica que Dios no desea ignorar ni abandonar al hombre a su suerte. Desde la creación hasta el presente, Dios se revela al hombre de múltiples maneras: a través de la naturaleza, de la conciencia, de la historia, y de forma definitiva en Jesucristo. El punto crucial está en si el hombre lo recibe o lo rechaza.

Si el hombre persiste en rechazarlo, persiste en la impiedad y en la injusticia, y finalmente sufre la ira de Dios (Ro 1:18). Pero si lo acepta, se restablece la comunión con Dios, la relación de “reconciliación” (véase Romanos 5). Esta reconciliación es la salvación misma y significa que quien ha nacido de nuevo pasa a poseer la vida eterna. Teológicamente, el pecado que rompió nuestra relación con Dios es perdonado por la obra de Cristo. Así lo expresa el pastor David Jang: “En el momento en que reconocemos nuestro pecado y volvemos a Dios, recobramos la condición de hijos con que fuimos creados inicialmente”.

No se trata de un simple cambio de adscripción religiosa ni de participar en un acto de culto. Es descubrir “quién soy” en esencia, de dónde vengo y adónde voy, el propósito y significado últimos de la vida. Lo que dijo San Agustín —“mi alma no halla reposo sino en ti”— expresa la esencia de la existencia humana a través de los tiempos: fuimos creados a imagen de Dios, y solo en Él encontramos la plenitud, la paz, el gozo y el amor.

Entre tanto, el mundo propone muchos sustitutos, pretendiendo que pueden sustituir a Dios: dinero, poder, fama, placer y toda clase de ídolos. Todos ellos prometen felicidad, pero solo producen complacencias momentáneas y un vacío mayor. Así, el hombre prosigue su errancia espiritual. Para David Jang, “creer en Jesús” significa volver al ser auténtico que Dios diseñó. No se trata de afiliarse a una institución religiosa o apegarse a una liturgia, sino de un proceso de autodescubrimiento esencial: comprender mi verdadera identidad, origen y destino, y el sentido que guía mi vida.

Dado que el hombre ya tiene, en cierto modo, la capacidad de “conocer a Dios”, en cualquier momento puede ocurrirle que, alzando su clamor hacia el Señor, Dios le responda. El Apocalipsis 3:20 (“He aquí, yo estoy a la puerta y llamo”) muestra que es Dios quien nos invita primero a volvernos a Él. Y cuando abrimos nuestro interior, la gracia divina nos alcanza y se inicia la salvación: el perdón de los pecados y el regalo de la vida eterna.

Ninguna prosperidad o entretenimiento mundano puede resolver definitivamente la sed del alma. Los filósofos y eruditos de la Roma antigua, como vemos, se preguntaban por el sentido de la existencia, pero no hallaban respuesta al problema esencial del pecado. Pablo proclama a estos mismos romanos que la respuesta verdadera está en Dios.

El pastor David Jang también reflexiona que “Dios se lo manifestó” implica que el deseo de Dios no es mantener al hombre en la ignorancia, sino mostrarse y guiarlo hacia Él. La iniciativa es divina, y el hombre puede acoger o rechazar esa revelación. Si la rechaza, incurrirá en la ira descrita en Romanos 1:18. Si la acepta, tendrá la “reconciliación” (Romanos 5), es decir, la salvación y la vida eterna. Es la restauración de la relación rota por el pecado a través de Cristo. David Jang subraya que cuando uno reconoce con sinceridad que es pecador y se vuelve a Dios, recupera la esencia de sí mismo como “hijo de Dios”.

No es asunto de cambiar de religión o adoptar un formato de culto diferente; es partir de la convicción de que “sin Dios no puedo ser plenamente yo”. La famosa frase de San Agustín —“estamos hechos para Dios y nuestro corazón no halla sosiego si no descansa en Él”— resume la verdad universal de la condición humana. Fuimos creados a imagen de Dios y solo en la comunión con Él podemos hallar la paz y el gozo genuino.

A pesar de ello, el mundo ofrece una variedad de ídolos que fingen saciar ese deseo innato. El dinero, el poder, el prestigio, el placer y diversas ideologías pretenden conducir al hombre a la felicidad, pero al final solo brindan satisfacción efímera, acrecentando la sed interior. Por ello, muchos vagan incesantemente, con un vacío cada vez mayor. David Jang predica que la fe en Jesús implica, en realidad, el retorno a la identidad original. No se reduce a unirse a un grupo religioso o atenerse a reglamentos; es recobrar la consciencia de nuestra creación en Dios y de que sin Él estamos incompletos.

El hombre puede reconocer a Dios porque cuenta en su interior con “lo que de Dios se conoce”. De hecho, toda cultura humana ha intentado expresar la búsqueda de lo divino o de lo trascendente. Pero esa búsqueda se ha desviado a menudo hacia la idolatría y ha terminado enfocándose en conceptos que no son el Dios verdadero, sino meras creaciones humanas. Por eso Pablo continúa exhortando: “No se engañen con sus muchos dioses, ni con las filosofías erradas ni con la deificación del Imperio; vuelvan la mirada al Creador único y verdadero”.

Así, Romanos 1:19 (“porque lo que de Dios se conoce les es manifiesto”) confirma la dimensión religiosa y espiritual innata del ser humano. No obstante, en paralelo, Romanos 1:18 presenta la “ira de Dios”. Esto revela la naturaleza dual de la existencia humana: por un lado, anhelamos a Dios; por otro, nos rebelamos contra Él por el pecado. Desde una perspectiva teológica, esta tensión puede describirse como la coexistencia del “pecado original” y la “imagen de Dios”.

En sus predicaciones, David Jang señala que, por ello, los cristianos debemos “denunciar el pecado, pero a la vez creer que el ser humano conserva ese anhelo y potencial para hallar a Dios”. Si nos limitamos a decir al mundo: “Ustedes son pecadores que irán al infierno”, seguramente muchos se cerrarán. Pero, como hace Pablo, hemos de señalar el pecado con claridad y, al mismo tiempo, extender la esperanza que surge de decir: “En ustedes hay una semilla de anhelo hacia Dios; si se vuelven a Él, serán transformados”. Porque, aunque el hombre es pecador, tiene también la posibilidad de salvación. Ese potencial se vuelve realidad por medio del evangelio.

La esencia del evangelio es que el ser humano no necesita aportar méritos ni cumplir requisitos complejos; con solo invocar el nombre de Jesucristo y recibirlo como Salvador, halla el perdón de pecados y la vida eterna: “Porque todo aquel que invoque el nombre del Señor será salvo” (Ro 10:13). Al igual que el hijo pródigo que vuelve a la casa paterna, cualquier pecador puede volver a Dios y, al hacerlo, recobra su condición de auténtico hijo. Romanos, más adelante, muestra de manera sistemática cómo la salvación incluye la justificación, la santificación y, finalmente, la glorificación. Pero todo empieza por “reconocer el pecado y volverse a Dios” de corazón.

La Iglesia, por su parte, lleva la enorme responsabilidad de anunciar este mensaje, sin ignorar que ella misma también está expuesta a tentaciones y a la secularización. Es fácil que, incluso dentro de la Iglesia, la “conciencia de Dios” se distorsione o se manipule para otros fines. El pastor David Jang advierte que cuando la Iglesia, lejos de ser luz de la verdad, se dedica a los negocios o a ejercer un poder abusivo, pierde la pureza y la fuerza del evangelio, y obstaculiza el deseo de la gente de buscar y encontrar a Dios. Si el evangelio, en vez de proclamar la gracia incondicional de Dios, se tergiversa poniendo el énfasis en los logros humanos, no conduce a la verdadera libertad del alma.

Así, la Iglesia y los creyentes deben examinarse continuamente. Igual que en Romanos 2 Pablo reprende a los judíos: “¿Tú, que juzgas a los gentiles, no haces lo mismo?”, si la Iglesia denuncia el pecado y, a la vez, vive en pecado, eso sería pura hipocresía. La comunidad de fe no debe “restringir la verdad” con su propia impiedad e injusticia. Por el contrario, está llamada a iluminar el pecado y guiar al arrepentimiento, ofreciendo el perdón y la reconciliación del evangelio. Ha de ser un canal de la verdad y no limitarse a la condenación, sino abrir el camino a la salvación.

Romanos 1:19 encierra un mensaje de esperanza: “si el hombre abre el corazón, puede reconocer a Dios y volverse a Él”. Posteriormente, en la segunda parte del capítulo 1 (vv. 24, 26, 28), Pablo menciona tres veces que Dios “los entregó” a sus pasiones. Cuando las personas persisten en su rechazo a Dios, éste respeta su libre albedrío y permite que prosigan en su camino de perdición, cargando con las consecuencias de su elección. El ser humano, creado con libre voluntad, asume entonces la responsabilidad de afrontar el desenlace de vivir según sus propias pasiones.

¿Cuál es la respuesta? A partir del capítulo 3 de Romanos, Pablo muestra la solución: gracias a la expiación realizada por Jesucristo, cualquier pecador puede ser justificado y escapar de la ira de Dios, para entrar en la vida eterna. Este es el evangelio que constituye “poder de Dios para salvación” (Ro 1:16). La contundente declaración de la culpa universal en 1:18–3:20 hace resplandecer aún más el glorioso poder del evangelio: cuanto más consciente es el hombre de su pecado y su desesperanza, más grandiosa aparece la gracia de Cristo.

El pastor David Jang insiste: incluso si el hombre tuviese en su interior la capacidad de reconocer a Dios, sin Jesucristo y el evangelio, seguiría imposibilitado de alcanzar la salvación. Ni la revelación general ni la conciencia moral resuelven el pecado de raíz. Sin embargo, el hecho de que Dios haya sembrado en nosotros esa “búsqueda innata de Él” indica que, al oír el mensaje del evangelio, el hombre puede responder a esa voz interior. Por eso la Iglesia ha de proclamar el evangelio con valentía, confiando en que el Espíritu Santo tocará el anhelo profundo que hay en cada corazón humano.

Resumiendo, Romanos 1:18 y 19 describen conjuntamente la ira de Dios y la posibilidad de que el hombre conozca a Dios. Esta combinación plantea la pregunta de por qué necesitamos la salvación y cómo podemos obtenerla. Debido a la impiedad e injusticia, estamos bajo la ira divina; pero, al mismo tiempo, la conciencia de Dios que llevamos nos permite, si nos arrepentimos y aceptamos el evangelio, alcanzar la salvación. Así llega Pablo a la conclusión en Romanos 3: no hay justo, pero la redención en Cristo es accesible a todo el que cree. Este es el corazón del mensaje de salvación, tan válido hoy como entonces.

Ninguno de nosotros puede jactarse de estar libre del pecado y de la ira de Dios, según la Escritura. Sin embargo, esa realidad no anula nuestra esperanza, porque Dios ha impreso en nosotros la semilla de la búsqueda de Él y ha abierto un camino de salvación en Cristo. Al comprender esto, el hombre halla su verdadero yo al reconciliarse con Dios, recuperando el sentido y el propósito de su existencia.

David Jang explica que “el evangelio es el poder de Dios para dar vida al hombre bajo el pecado”, y que “el hombre puede reconocer su pecado gracias a la voz interior (la ley moral, la conciencia) y la revelación que Dios hace por medio de la creación”. Cuando se anuncia el evangelio, muchos advierten con sorpresa: “Esto es lo que siempre he anhelado”, o un sentimiento de culpa que estaba adormecido surge a la superficie y los conduce al arrepentimiento. Ese “volverse a Dios” o “venir a Cristo” marca el inicio de la salvación que describe Romanos.

Romanos 1:18-19 enseña que, aunque el hombre esté de espaldas a Dios, éste sigue llamándolo para que se vuelva a Él. Pero, si el hombre rechaza esa llamada, no puede escapar de la ira provocada por el pecado. Este mensaje valía para la Roma de Pablo y vale para cualquier civilización. En la actualidad, a pesar de los avances científicos y el bienestar material, el vacío y la ansiedad interiores no han desaparecido. Ello confirma que, aunque llevamos “lo que de Dios se conoce” dentro de nosotros, vivir sin Él inevitablemente produce esa desazón.

Si escuchamos el mensaje del evangelio y abrimos nuestro corazón, ya no permaneceremos como esclavos del pecado. Podemos escapar de la ira divina y ser adoptados como hijos de Dios. Ésta es la verdad que la Iglesia debe proclamar al mundo. Cada persona puede acoger o rechazarla, y de esa elección depende su destino. Si aceptamos el mensaje y acudimos a Dios con arrepentimiento y fe, recibimos perdón y vida eterna; si lo rechazamos, permanece la ira de Dios. Este es el planteamiento soteriológico de toda la Epístola a los Romanos.

Vemos, pues, que Romanos 1:18-19, al mostrarnos la ira de Dios y la conciencia de Él en el hombre, no es un mero texto antiguo para un contexto específico. Mientras exista el ser humano y persista el pecado, el problema sigue vigente. Y la respuesta del evangelio también permanece invariable: el hombre ha sido creado para buscar a Dios, pero el pecado lo separa, aunque Dios ha provisto el camino de la reconciliación en Jesucristo. La tarea de la Iglesia y los creyentes es difundir este camino, presentándoselo a todos.

Tal como señala David Jang, la pregunta clave de este pasaje es: “¿Has recuperado tu identidad real?”, “¿Permanecerás bajo la ira de Dios o admitirás tu pecado, te arrepentirás y abrazarás la gracia de la salvación?”. La Epístola a los Romanos interpela así al oyente de forma personal y directa, pues el evangelio no es solo una doctrina, sino un llamado a una decisión existencial. Una vez comprendemos que en nuestro interior hay una “conciencia de Dios” y admitimos nuestro pecado sin excusas, retornamos a Dios con humildad. Entonces la ira de Dios se convierte, no en una amenaza para aniquilarnos, sino en la sacudida que nos hace salir del pecado y recibir la salvación.

Con ello, Romanos 1:18-19 es el prólogo donde se entrecruzan pecado y salvación, ira y gracia. Este pasaje nos revela a Dios y también la naturaleza humana. El hombre, sin Dios, jamás hallará su auténtica esencia ni la paz verdadera. Al tiempo, si rechazamos a Dios, persistimos en el pecado y encaramos inevitablemente su ira. Por eso necesitamos el evangelio, que nos libera del pecado y nos reconcilia con Dios, haciéndonos sus hijos.

El pastor David Jang insiste en que, mientras la Iglesia conserve fielmente este mensaje, podrá anunciarlo con eficacia en el mundo. Reconocer que el hombre tiene una capacidad básica para conocer a Dios nos anima a evangelizar con esperanza, sabiendo que, en el interior de cada persona, late un anhelo de Dios. A la vez, proclamar la “ira de Dios” nos muestra la urgente necesidad del evangelio. Si la Iglesia elude hablar del pecado y de la ira, las personas no percibirán la gravedad de su condición ni sentirán la necesidad de salvación. Por otro lado, si ignoramos que cada persona conserva un anhelo de Dios, corremos el riesgo de adoptar un pesimismo que nos impida testificar.

Por ello, ambos versículos (Ro 1:18 y 1:19) han de mantenerse en equilibrio. De este modo, afrontamos con realismo la seriedad del pecado y de la ira divina, pero también albergamos la esperanza de que quien se arrepienta encontrará la salvación. Así la Iglesia puede decir al mundo: “Dentro de ti hay una semilla que puede conocar a Dios. Pero mientras te aferres al pecado, estarás bajo la ira divina. Arrepiéntete pronto y vuelve a Dios”. Y a quien acepte esta invitación, el evangelio se manifestará como poder de vida y salvación.

En resumen, Romanos no termina denunciando el pecado; más bien, lo revela para llevarnos a la salvación. Pablo expone sin rodeos la perversidad humana desde el capítulo 1 hasta el 3, y luego nos presenta la obra redentora de Jesucristo, mediante la cual el pecador puede ser justificado y convertirse en hijo de Dios. Este es el evangelio magistral desarrollado en la Epístola, y Romanos 1:18-19 es su pórtico de entrada.

En las exposiciones de David Jang, se nos recuerda que debemos “reconocer nuestros pecados y arrepentirnos” y “abrirnos a la voz de Dios que ya está impresa en lo más profundo de nuestro ser”. Nadie puede vivir sin Dios, porque fuimos creados para Él, y por eso, aun estando en el pecado, lo buscamos y lo necesitamos. Ese anhelo puede impulsarnos a la salvación, a menos que lo rechacemos por completo. Si decidimos desecharlo, nos toparemos con la ira divina. Si, en cambio, lo aceptamos y nos dirigimos al encuentro con Dios a través del evangelio, recibimos el perdón y la vida eterna.

Así pues, Romanos 1:18-19 funciona como una obertura que anticipa toda la trama del evangelio. Muestra el problema del pecado y la ira de Dios, y a la vez la posibilidad de percibir a Dios. De esta manera plantea preguntas inevitables: “¿Por qué necesitamos salvación? ¿Cómo podemos salvarnos?”. Y el resto de Romanos responde: la salvación se halla en Cristo Jesús. La Iglesia, por ende, está llamada a proclamar esta verdad: estamos bajo la ira de Dios a causa del pecado, pero somos capaces de conocerle y Él nos ha brindado el camino de retorno en Jesús. Este mensaje debe resonar en medio de la humanidad, porque el hombre es un ser creado para Dios. Solo Cristo, y no ninguna otra alternativa, puede librarnos del pecado y de la ira divina, restituyendo nuestra condición de hijos de Dios.

En palabras de David Jang, la Iglesia no debe olvidar jamás este meollo del evangelio. Debe señalar el pecado sin tapujos, pero sin omitir la esperanza de la conversión y la posibilidad de volver a Dios. Y, al mismo tiempo, reconocer que cada persona conserva una chispa de anhelo por Él, de modo que podemos acercarnos al mundo con respeto y confianza, presentándoles las buenas nuevas. Solo así, juntando la realidad del pecado y la grandeza de la gracia, el evangelio de Romanos seguirá mostrando su poder transformador en el presente.

El fin último de todo este planteamiento es que el hombre “recupere su yo auténtico” y se reconcilie con Dios. Separados de Él, vivíamos en hostilidad y, al ser justificados por la sangre de Cristo, recibimos la adopción como hijos y experimentamos su amor por el Espíritu Santo, encontrando un nuevo significado y propósito en la vida. Al restablecerse la relación vertical con Dios (la piedad), pueden comenzar a restaurarse también las relaciones horizontales (la justicia). El principio de Romanos es claro: si no resolvemos la impiedad, la injusticia no podrá sanarse.

En definitiva, Romanos 1:18-19 condensa en tan solo dos versículos los pilares centrales de la teología del evangelio. La humanidad está en pecado y bajo la ira divina, pero a la vez existe en nosotros un “conocimiento de Dios” que puede llevarnos a aceptar el evangelio. Hoy, como ayer, hay incontables personas que buscan sentido en la ciencia, la filosofía, las artes y múltiples corrientes de pensamiento, sin encontrar la respuesta definitiva. Esta solo reside en Jesucristo. La Iglesia, como depositaria de esta verdad, debe presentar el perdón del pecado y la vida eterna a quienes reconozcan su falta y se arrepientan.

David Jang remarca que el análisis de estos versículos de Romanos exhorta a la Iglesia a contemplar tanto la severidad del problema espiritual humano como la magnitud de la gracia de Dios. La ira de Dios es real, y su amor y salvación también lo son. El hombre está en poder del pecado y la muerte, pero también existe un deseo de Dios en su interior. Viendo esto, debemos proclamar: “Cree en Jesucristo y serás salvo”. Cuando esa voz alcanza la dimensión más profunda del corazón humano, de la que habla Romanos 1:19, muchos reconocen: “Esto es lo que mi interior pedía”. El paso decisivo es la conversión, el “volvernos al Señor” que nos introduce en la salvación.

En conclusión, Romanos 1:18-19 superpone la ira de Dios y la percepción de Dios en el interior del hombre. Este texto enuncia el prólogo que abordará plenamente la realidad del pecado y de la salvación en la Epístola. Pablo, a la vez que conduce a sus lectores a reconocer la profundidad del pecado, les abre la puerta a la esperanza de la reconciliación con Dios. Tanto el pastor David Jang como muchos otros pastores y teólogos examinan este pasaje con detenimiento porque es ahí donde comienza Romanos su gran desarrollo del evangelio: ver primero el pecado para poder comprender la salvación, y percibir que en lo profundo del hombre late el anhelo de Dios, para dejar espacio al evangelio.

Que la Iglesia y los creyentes no olviden que la proclamación de la ira divina y la conciencia interior de Dios son esenciales para presentar con fidelidad el mensaje de Cristo. Quien desconoce su pecado difícilmente anhelará salvación; quien no sabe que lleva en su interior la huella de Dios podría sentirse sin esperanza. La conjunción de ambos aspectos sostiene el ministerio de anunciar a un mundo caído que, pese a hallarse bajo la ira, puede volver a Dios por medio de Jesucristo. Precisamente en esa tensión radica el poder del evangelio que describe Romanos: de la muerte a la vida, de la ira a la reconciliación, del pecado a la justificación.

Así, podemos resumir: “Estamos bajo la ira de Dios por causa del pecado, pero dentro de nosotros existe la capacidad de buscar a Dios, y Él ha dispuesto la vía de salvación en Cristo”. Esta afirmación sigue vigente para cualquier tiempo y cultura. Quien acepte la invitación y se arrepienta será liberado; quien la rechace, se enfrentará al juicio. Por tanto, cada cual debe decidir cómo responderá al evangelio. Romanos 1:18-19 da inicio a este gran drama de la salvación, presentándonos la realidad del pecado y la esperanza de la redención. La Iglesia debe predicar este mensaje, y cada persona debe confrontarse con él. Y si lo abraza, hallará la vida eterna y recobrará su verdadera identidad en Dios. Esa es la esencia del mensaje de Pablo a los romanos y, también, el eco de las enseñanzas del pastor David Jang.

The Wrath of God and the Necessity of Salvation – Pastor David Jang


I. The Wrath of God and Humanity’s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Romans 1:18–19 marks the beginning of the main body of the Epistle to the Romans, where the Apostle Paul deals with the reality of human sin and God’s wrath upon it. Pastor David Jang, in various sermons and expositions, has repeatedly emphasized that this passage forms a critical foundation for understanding the structure of Romans and its doctrine of salvation. Indeed, as one reads Romans,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begins with sin, followed by a detailed explanation of salvation. This is not merely a structural feature; it underscores that to understand the gospel properly, one must first grasp the nature of sin and why human beings need salvation.

Paul was writing to numerous Gentiles living in Rome—a city that symbolized the civilization and secular prosperity of that era, but also showcased some of the most degenerate forms of human sin. The Romans themselves did not acknowledge their own sinfulness. Instead, they took pride in their splendid civilization, intellect, military might, and wealth, and likely felt no sense of guilt. They might have thought, “What sin do we have? Why should such a glorious city like Rome need salvation?” Yet Paul systematically unfolds how deeply humanity is mired in sin before God, thereby showing why salvation is necessary.

In his exposition of Romans 1:18–19, Pastor David Jang particularly highlights that verse 18’s reference to the wrath of God points to the outcome of all sin and the state of discord between God and humanity. The phrase “the wrath of God” does not merely describe divine anger as a human projection. God is perfect and good; His wrath is not an emotional outburst but a just response grounded in His holiness and righteousness. Because humanity dwells in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estranged from God, Ephesians 2:3 says that all people “by nature” have become children of wrath.

Here, “ungodliness” refers to sins that violate our vertical relationship with God: ignoring Him, refusing to worship or revere Him, and essentially despising His rightful place in our lives. Meanwhile, “unrighteousness” entails sins in the horizontal dimension—hurting and oppressing others, practicing dishonesty and hypocrisy, indulging in greed, and so forth. In Romans 1:18, Paul singles out “those who by their unrighteousness suppress the truth,” indicating that these individuals intentionally block the truth, oppress those who preach the Word, or willfully ignore their instinctive, conscience-based awareness of God.

As Pastor David Jang often emphasizes, most people feel uncomfortable confronting the issue of sin. Acknowledging one’s sinfulness also means exposing one’s own limitations and shame; thus, people instinctively resist, asking, “Why am I a sinner?” Consequently, when we share the gospel, if the concept of “why we need salvation” is not well explained beforehand, people often conclude, “I don’t need salvation.” Paul, therefore, systematically lays out the doctrine of sin, progressively revealing just how far humanity has strayed from God’s creative order and righteousness.

Romans 1:18 states, “For the wrath of God is revealed from heaven against all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of men, who by their unrighteousness suppress the truth.” While this verse does not explicitly say why sin provokes God’s wrath, the following verses (1:19–32) gradually explain the nature and consequences of sin. In examining this passage, Pastor David Jang notes that God’s wrath comes because the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of humanity inevitably leads to self-destruction, and God does not simply leave humanity to be destroyed. Just as a parent will not abandon a child who takes a wrong path but will sometimes express anger and discipline to set the child right, God’s wrath is the flame of holiness and a warning of love. Although Scripture declares that God is love, His love does not permit or condone the ongoing sin that destroys human beings. God’s love cannot be separated from His holiness. Thus, sin, which shatters the fundamental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humanity, inevitably draws rightful judgment and wrath.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quotes this point in his sermons: God is personal, not a cold, emotionless philosophical concept. In ancient Greek philosophy, gods were sometimes depicted as omniscient, omnipotent beings indifferent to human emotions. However, the God of the Bible is our Creator and Father, who grieves and even becomes indignant when we sin. The prophetic books Jeremiah and Hosea, for instance, reveal a divine heart that experiences jealousy, sorrow, and anger toward humanity. This is because our sovereign God considers us in a loving relationship, and divine “wrath” arises from God’s holy nature and loving heart when that relationship is broken.

Humanity’s sin, summed up as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may be recapitulated in the language of the Ten Commandments—sins against God. No matter how progressive the world becomes or how advanced science and technology grow, humanity cannot realize true righteousness and goodness apart from a right relationship with God. Even with Rome’s powerful legal system and its rich ethical and philosophical traditions (Stoicism, Epicureanism, and so forth), sin still manifested in extreme forms. Fallen humanity cannot resolve its fundamental problem through philosophy or mere moral discipline, because sin is not merely an individual lapse but an existential downfall stemming from a broken relationship with God.

Paul next asserts that “the wrath of God is revealed from heaven” (Rom. 1:18). Pastor David Jang explains that this phrase implies there comes a time when, if human sin accumulates to a tipping point, God’s judgment inevitably descends. Although God is patient and grants us many opportunities, eventually He must judge sin to display His holiness and justice. Events in the Old Testament, such as the Flood in Noah’s day,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and Israel’s exile, confirm that God’s warnings of judgment on sin are far from empty threats. Likewise, in the New Testament, Jesus’ warnings about the final judgment and episodes like the fate of Ananias and Sapphira (Acts 5) clearly exhibit God’s decisive wrath against sin.

Some believers today are uncomfortable with the concept of “wrath,” preferring to focus on God’s love. Yet, if there were no divine wrath against sin, God’s love would become an empty notion. If God is truly holy and sin truly leads humanity to destruction, then ignoring sin would not be loving at all. In his sermons, Pastor David Jang often uses the analogy of a parent-child relationship: if a child is heading down a dangerous path, a parent who truly loves the child does not stand idly by in the name of “love,” offering no discipline or warning. Seeing the certain harm that awaits, the parent would intervene, sometimes forcefully. Likewise, seeing humanity spiraling into destruction through sin, God declares, “No!” firmly calling us to turn back and ultimately passing judgment on sin’s result. That is the wrath of God.

Paul’s depiction of “the sin of the Gentiles” signifies the sins of those in the world who do not know God, with a particular focus on “ungodliness.” The reason is that once our relationship with God (the vertical dimension) is destroyed, it naturally wreaks havoc on all human relationships (the horizontal dimension). Social injustices, wars, violence, exploitation, sexual corruption, and other evils ultimately begin in “ungodliness.” A life that denies or disregards God is the root of every form of wrongdoing. The latter part of Romans 1 shows people worshiping idols instead of glorifying God, devoting themselves to false images and ideologies, and idolizing their own desires, which leads to countless sins and corruption.

In this context, Pastor David Jang stresses that Christians and the church must not avoid exposing sin. Only when sin is confronted and laid bare can there be an opportunity to repent and find salvation. If sin remains concealed, it festers and grows into a more serious disease, whether in an individual life, a church community, or an entire society. Scripture repeatedly teaches that God does not leave sin unchecked; eventually, His wrathful judgment will fall.

The doctrine of sin is extensively unfolded from Romans 1:18 through 3:20. In short:

  1. Romans 1:18–32 discusses the sin of the Gentiles.
  2. Romans 2:1–3:8 confronts the sin of the Jews.
  3. Romans 3:9–20 concludes that all humanity—Jew and Gentile alike—are under sin.

Summarized, Paul’s conclusion is that no one is righteous, not even one (Rom. 3:10). He thus lays a rigorous foundation for the universal nature of sin before emphasizing that Jesus Christ is the only way to be saved from sin. And God’s response to sin is “wrath.” While in our world anger takes myriad forms, human anger generally stems from sinful emotion. In contrast, God’s wrath is a righteous indictment of sin—a holy strategy for human salvation. Pastor David Jang underscores that this is precisely why Romans deals with sin and wrath right from the start: only when we recognize our sin and our position under divine wrath can we truly understand the gospel as “the power of God for salvation to everyone who believes” (Rom. 1:16).

Thus, the phrase “the wrath of God” in verse 18 is not to be taken lightly. From the outset of Romans, one of Paul’s central themes is that God’s wrath is directed against human sin—namely,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In Paul’s day, Romans found religious and philosophical reasons to justify themselves and refused to admit to being sinners. Modern people do the same, priding themselves on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achievements or economic prosperity, thinking, “Why do we need salvation?” Yet if one does not grasp the gravity of human sin, one will never feel the urgent need for salvation. Thus, Pastor David Jang tirelessly reminds us how crucial it is for us, even today, to heed Paul’s declaration of the wrath of God from Romans 1:18.

This wrath is grounded in a concrete sin—that people “suppress the truth by unrighteousness.” When truth is proclaimed, rather than welcoming it, many respond with hostility, because the more truth sheds light, the more one’s sin is exposed. Those who love sin would rather silence the voice of truth. Throughout church history, whenever the gospel has spread, there have always been forces that tried to suppress it. Yet God’s Word is never fully obstructed. His servants and faithful witnesses have continued to proclaim the gospel, and despite persecution, the church has upheld the truth and expanded. This echoes Isaiah 40:8: “The grass withers, the flower fades, but the word of our God will stand forever.”

Paul’s message of God’s wrath was never meant merely to threaten or to instill guilt without hope. Ultimately, its purpose was to say: “Turn away from sin and come to God.” Without a recognition of sin, people cannot receive salvation; hence, Paul spoke forthrightly about sin. When the church avoids or glosses over sin, people fail to see themselves as sinners. Naturally, salvation no longer appears necessary to them, and the gospel loses its power, reduced to mere “pleasant words.” Therefore, the apostle Paul and the early church placed strong emphasis on recognizing sin—a principle that remains indispensable for the church today, as Pastor David Jang reiterates.

In conclusion, the statement in Romans 1:18 about “the wrath of God” occupies a pivotal place in the gospel message. To rightly know God’s love and salvation, we must first acknowledge the reality of human sin and God’s righteous wrath against it. If we dismiss this, we cannot fully grasp the power and grace of the gospel. Salvation is from sin; if one knows nothing of sin, one cannot understand salvation. The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that invite “God’s wrath” describe a fundamental dilemma no human can solve on their own. Confronted with sin and divine wrath, humanity is compelled to sense our need to repent and trust God. The splendor, success, and prosperity of Rome could not overshadow this issue; nor can any form of modern security or wealth make light of sin and wrath. That stark reality underlies the dire human predicament, while simultaneously underscoring our need for the gospel.


II. Humanity’s Innate Knowledge of God and the Necessity of Salvation

Romans 1:19 continues the theme of sin and the wrath of God (v. 18), stating, “For what can be known about God is plain to them, because God has shown it to them.” Remarkably, Paul asserts that even unbelievers—Gentiles who do not yet know Jesus—already possess within themselves the capacity to “know God.” This highlights the inseparable bond between humanity and our Creator God. Despite being mired in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there remains in the human heart some latent potential to seek and perceive God.

Pastor David Jang explains that this verse demonstrates that “human beings are born with an inherent longing for God, and though we are fallen by sin, we are not irredeemably ruined.” While sin leaves us spiritually dead without God’s intervention, each person still bears vestiges of the imago Dei—reason, free will, moral intuition, and a religious disposition. Hence, throughout history, humanity has never ceased from seeking some notion of “god” or an “Absolute Being.”

Paul seems to speak of “what can be known about God” on two levels. First, there is general revelation through “the created world.” In Romans 1:20, he elaborates that the natural world—its grand order, the cycle of seasons, the movements of the sun and stars, the wonders of life—attests to God’s invisible attributes and power, rather than being the product of chaos or random chance. Even many philosophers and scientists acknowledge that the universe exhibits intricate order, which prompts recognition of a Creator.

Second, there is the inner realm of conscience and reason. Pastor David Jang notes that human beings, instinctively feeling guilt over wrongdoing, discerning good and evil, and searching for meaning, are in fact expressing their built-in longing for God. Many people eventually confront profound questions about identity and purpose: “Who am I? Why do I exist?” Such reflections stem from our spiritual emptiness and anxiety from having departed from God. Only God can truly satisfy these yearnings. As Augustine famously stated in his Confessions,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rests in You.”

Yet the problem remains that people do not accept this “knowledge of God” as they should. Paul goes on to say in Romans 1:21 that humanity “knew God but did not honor him as God or give thanks.” In other words, despite the internal evidence of God’s existence, humanity’s pride and sin cause us to reject Him, replacing God with idols, clinging to lies rather than truth, and obsessing over self-exaltation. Consequently,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accelerate.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underlines how rejecting God yields destructive outcomes such as anxiety, loneliness, meaninglessness, and despair. When we sin, we feel uneasy and cannot find lasting peace, no matter how we chase fleeting pleasures. We feel alone and unloved, uncertain about our future, and we sink into hopelessness. These struggles expose the deep void left in the human soul when separated from God. Even unbelievers will often cry out for some “god” or “deity” in moments of deep distress.

Nevertheless, Scripture’s truth stands: no moral training or philosophical reasoning alone can lead us back to God. While such pursuits may guide us to the doorstep, the fundamental problem of sin remains unsolved without divine intervention. This is Paul’s overarching message in Romans. Sin is beyond human remedy, and only the cross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can bring forgiveness and justification. By faith, we partake of this grace—this is the heart of Romans’ soteriology.

Therefore, even though “what can be known about God” resides in every human being, that spark alone cannot solve the sin problem. Ultimately, the gospel is needed. Pastor David Jang stresses that to escape sin and enter genuine freedom, peace, and salvation, one must embrace the gospel of Jesus Christ. Jesus Himself declared: “Come to me, all who labor and are heavy laden” (Matt. 11:28); “If anyone thirsts,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John 7:37). These invitations do not demand complicated rituals or self-merit. The essence of the gospel is simply to “return to God.”

The tragedy is that even religion can sometimes obstruct this path, becoming a “merchant’s stall” instead of an open way to God—adding rules and works, implying that individuals must achieve certain qualifications before approaching the divine. But this is not the biblical teaching. Romans 3:24 proclaims that we are “justified by his grace as a gift, through the redemption that is in Christ Jesus.” Ephesians 2:8–9 reiterates: “For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 And this is not your own doing; it is the gift of God, not a result of works, so that no one may boast.”

In his sermons, Pastor David Jang often references Jesus’ parable of the prodigal son (Luke 15) to illustrate God’s fatherly heart. When the prodigal decided to return home, there was no prerequisite for his acceptance. The father ran to him in joy, forgave his sin, and restored his status as a son. No lengthy procedures or payments were demanded. He simply came back. Yet human beings, due to guilt, pride, or distorted religious ideas, frequently believe they must prepare or prove something before they can approach God.

However, Romans 1:19 affirms that even unbelievers have “what can be known about God,” so if anyone seeks Him and cries out to Him, God will never turn that person away. Revelation 3:20 proclaims, “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God takes the initiative, urging us to return, and if we open our hearts, His grace immediately enters, bringing forgiveness of sins and the work of salvation.

This unquenchable thirst, the anxiety and emptiness that cannot be fully relieved by anything else, testifies that human beings belong to God. No worldly achievement or pleasure can entirely fill that void. Ancient Roman intellectuals such as Seneca or Marcus Aurelius sought life’s meaning through Stoic philosophy, yet none could resolve the core issue of sin. Paul’s answer for them was firm: the ultimate solution lies in God.

Pastor David Jang observes that the phrase “God has shown it to them” (Rom. 1:19) indicates God does not intend to remain hidden or leave humanity ignored. From the beginning, God has revealed Himself to humankind in multiple ways: through nature, conscience, history, and, supremely, through Jesus Christ. The question is whether people will accept or reject God’s revelation. To reject it is to be confronted by God’s wrath against our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Rom. 1:18). To accept it is to experience reconciliation with God (Romans 5), which is the essence of salvation—a restored relationship through which renewed individuals enjoy eternal life. Theologically, it is the reconnection of the broken bond with God through Christ.

As Pastor David Jang often preaches, “When we honestly confess our sins and turn to God, we reclaim our original identity as His children.” This is not merely adopting a new religious affiliation or altering worship forms. It is rooted in the realization that apart from God, our very existence cannot be whole. Augustine’s well-known statement, “My soul is restless until it finds rest in You,” resonates throughout the ages. We ar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and only in Him can we find true peace, joy, love, and purpose.

Yet the world offers countless substitutes, luring us to think they can replace God—wealth, power, fame, pleasure, idols. All these promise happiness but end up giving only temporary gratification and deeper discontent, fueling perpetual spiritual wandering. Pastor David Jang declares that “to have faith in Jesus” is essentially to recover our authentic selves. It does not mean simply joining an institution or adopting certain forms of worship. It means rediscovering who we fundamentally are, where we came from, and where we are going—finding life’s true meaning and purpose.

Humanity inherently has “what can be known about God,” so the possibility of returning to Him is ever-present. Throughout history, across cultures, human beings have ceaselessly groped for God. But this search often devolves into distortions—idolatry, man-made religious concepts, or self-defined philosophies. Thus, Paul urges them to abandon all these false gods, philosophical illusions, and emperor-worship to fix their gaze on the one true Creator God.

Hence, Romans 1:19—“For what can be known about God is plain to them”—reveals our innate religious and spiritual nature. Alongside Romans 1:18—“the wrath of God”—these two texts portray the paradoxical reality of humanity. On the one hand, we are endowed with a longing and conscience directed toward God; on the other, our sinful nature compels us to resist and reject Him. Theologically, this can be described as the tension between our “original sin” and the “image of God.”

Pastor David Jang teaches that Christians, therefore, must “rebuke sin while believing in the possibility of renewal through God that still exists in every person.” If the church merely shouts, “You are all sinners going to hell!” people will shut their ears. Paul’s example is more balanced: he calls out sin candidly, but the ultimate purpose is to proclaim “You can be changed, because deep within you there is a capacity to know God, if you turn back to Him.” Yes, humans are sinners, but there is still hope for salvation. That hope becomes reality through the gospel.

The essence of the gospel is that we can approach God just as we are, without having to qualify ourselves.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Rom. 10:13). When we invoke Jesus’ name, embracing Him as our Savior, we receive forgiveness of sins and eternal life. Like the prodigal son returning to his father, if we come back to God, He restores us as His true children. Romans will later elaborate theologically on this salvation—justification, sanctification, and glorification. Yet it always begins with “recognizing sin and turning to God” in one’s heart.

The church must bear this mission seriously. It, too, faces myriad temptations toward secularization. Even within the church, “what can be known about God” can be corrupted if we succumb to the pursuit of power or commerce under the guise of religion. Pastor David Jang warns that if the church, which is meant to shine with the light of truth, instead engages in profiteering or exercises domineering authority, it loses the purity and power of the gospel and obstructs people from accessing the God they inwardly seek. When human pride or works-based righteousness overshadows the unconditional grace of the gospel, souls cannot encounter true freedom.

Thus, the church and believers must constantly examine themselves. Just as Paul rebuked Jewish Christians in Romans 2 for judging Gentiles yet doing the same things, it is hypocrisy for the church to denounce sin while being entangled in the same. The church should not turn a blind eye to sin or, conversely, punish it mercilessly without love. Rather, it must expose sin so as to lead people to repentance, ultimately extending the possibility of forgiveness and salvation—becoming a faithful channel of the gospel.

Romans 1:19 ultimately brings us a hopeful message: anyone who opens their heart can perceive God and return to Him. In the latter part of Romans 1, Paul describes those who abandon such hope by persisting in sin as being “given up” by God (Rom. 1:24, 26, 28). In other words, God honors human free will; if a person stubbornly insists on pursuing sinful desires without God, God allows them to face the consequences of their choice, which leads to destruction.

So what is the answer? From Romans 3 onward, Paul tells us that through the atoning work of Jesus Christ, all sinners are justified and delivered from God’s wrath, entering into eternal life. This gospel is “the power of God for salvation to everyone who believes” (Rom. 1:16). The weighty doctrine of sin and the announcement of wrath from Romans 1:18–19 only serve to magnify the splendor of the gospel. The more profound our sin and despair, the more glorious Christ’s grace appears.

Pastor David Jang concludes this segment by emphasizing that while humanity has an innate capacity to “know God,” it is only through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at we can truly attain salvation. General revelation or conscience alone is insufficient to resolve our fundamental sin problem. Yet the fact that God has planted within us an innate longing for Him means that when the gospel is proclaimed, the human soul can resonate with that truth. This encourages the church to preach the gospel boldly, trusting that in the depth of every person’s heart lies a yearning for God, however buried.

In summary, Romans 1:18–19 juxtapose divine wrath with the possibility of humans knowing God, thus introducing why we must be saved and how salvation becomes attainable. Because of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we remain under wrath, yet “what can be known about God” resides within us, and anyone who turns to the gospel in faith can be saved. This is the very essence of Paul’s argument in Romans, and it remains an eternal truth for us today.

We learn from Scripture that no one can claim, “I’m free from sin,” or escape God’s wrath. Yet we hold onto hope because God has already planted within us the means to seek Him, and He has opened the way fully through Jesus Christ. When we come to understand this, we begin to rediscover our true selves. Our relationship with God is restored, granting us genuine purpose and meaning for our lives.

Pastor David Jang reiterates, “The gospel is solely God’s power to save those under sin,” and “people recognize their sin, in part, because God has etched into the human heart a longing for Himself and provided general revelation.” When that gospel is announced, people often think, “Ah, this is what my soul has been yearning for!” or they are convicted of their sins and repent. This “turning back” and “coming to the Lord” is precisely the beginning of salvation that Romans describes.

Hence, Romans 1:18–19 demonstrate that even if humanity is distant from God, He still extends His invitation, although those who definitively reject it cannot avoid His wrath. This was true in Paul’s day in Rome and remains so in every age and culture. No matter how advanced science may become or how prosperous our material world, inner anxiety and emptiness never fully vanish. Such human emptiness arises from “what can be known about God” being suppressed while living apart from Him.

Yet upon hearing the gospel and opening our hearts, we realize we no longer need to live as slaves to sin. We can escape God’s wrath and instead become God’s children. The church is called to proclaim this truth, while each person in the world faces a choice: to accept or to reject it. One’s destiny hinges on this response. Those who repent and believe receive forgiveness of sins and eternal life. Those who persist in rejection stand under God’s wrath—this is the stark but consistent logic of salvation laid out in Romans.

Thus, we see that Romans 1:18–19, speaking of God’s wrath and the innate human capacity for knowing God, has relevance not just for Paul’s time but for every generation. As long as humans exist and sin remains, this dilemma endures. At the same time, the gospel’s answer also endures. We are created to seek God; though sin obscured this capacity and we lost our way, God reopened the path to fellowship with Him through Jesus Christ. The church and its members are commissioned to make this path known, leading people to that road of salvation.

As Pastor David Jang often stresses in his exposition of this passage, the core questions are: “Have you recovered your true self?” “Will you remain under God’s wrath, or will you acknowledge your sin, turn from it, and seize the gift of salvation?” Romans demands a personal and existential decision, for the gospel is not merely theoretical—it requires a real-life response. We realize there is “something of God” already in our hearts, so we can no longer hide behind excuses or avoidance. If we humbly return to God, His wrath no longer drives us to destruction but serves as a warning that leads us to repentance and salvation.

Romans 1:18–19 thus intersect sin and salvation, wrath and grace. Through them we gain clarity about who God is and who we are. We discover that humans can never find our true selves or genuine peace apart from God. Meanwhile, if we live in sin, separated from Him, we inevitably incur His wrath. Hence our urgent need for the gospel, the only way to escape sin and wrath, to be restored as God’s children in Christ Jesus.

Pastor David Jang notes that as long as the church preserves this message, it will proclaim the gospel powerfully in the world. The church must acknowledge that human hearts already possess the capacity to perceive God, while also recognizing the seriousness of sin and wrath. If the church neglects the reality of sin and divine wrath, people will not recognize their own sinfulness, and salvation will lose its relevance. Conversely, if the church forgets that humans retain an innate longing for God, it may succumb to a defeatist outlook, thinking people are hopelessly closed off.

Thus, only when these two verses (Rom. 1:18, 19) are held together in balance can we face the seriousness of sin and wrath while maintaining hope for repentance and salvation. The church should say to people: “Within you is an inherent sense of God, but if you deny it because of sin, you remain under His wrath. Turn back as soon as possible!” Those who heed this call and open their hearts to God find the gospel to be the power of life and salvation.

Romans does not stop at pointing out sin. Because only where sin is confronted can salvation arrive, Paul devotes the latter part of chapter 1 and chapters 2–3 to laying bare human sinfulness, then leads readers to the good news of Christ’s atoning death on the cross—justification by faith alone. Before God, we have no righteousness of our own, but through the blood of Christ, we are washed clean, justified, and adopted as God’s children. This is the breathtaking gospel revealed in Romans, and Romans 1:18–19 serves as the opening movement to that grand message.

Pastor David Jang, reflecting on this passage, challenges believers “to admit sin and repent deeply,” and “to listen more attentively to the voice of God already placed in our hearts.” No person can truly live without God. Even in our sinfulness, we are wired to seek Him; that yearning is often the very spark that leads us to salvation. Yet if we persist in denying that yearning and suppress the truth, we cannot escape God’s wrath. If we embrace it and respond to the gospel, we receive forgiveness and eternal life.

Hence, Romans 1:18–19 is, in essence, the prologue to the entire gospel narrative in Romans. By highlighting both the severity of sin and God’s wrath alongside humanity’s capacity to know God, it naturally raises the questions: “Why do we need salvation?” and “How can we be saved?” Romans ultimately answers these questions with “the gospel in Jesus Christ.” The church and all believers must proclaim this. We humans are under the wrath of God, yet endowed with the ability to know Him and return to Him. Jesus Christ alone is the path out of sin and wrath, restoring us to our status as God’s children.

As Pastor David Jang insists, the church must not forget these essential truths. It should not fear boldly exposing sin, but it must couple this with a message of repentance and salvation. Moreover, it must respect the fact that even those outside the church are endowed with an internal sense of God’s existence, inviting them with genuine love. When sin and grace, wrath and salvation, stand side by side, the gospel message in Romans remains potent and relevant.

And at the heart of it all is our recovery of our “true selves” and our reconciliation with God. Having once been God’s enemies due to sin, we are declared righteous and reunited as His children through Christ. By the Spirit, we experience God’s love, rediscover our life’s purpose, and find abiding joy. When the vertical relationship with God is restored, our horizontal relationships can begin to heal as well. Romans teaches that the remedy for ungodliness must precede the cure for human unrighteousness.

Thus, Romans 1:18–19, though just two verses, encapsulate core premises of Pauline theology. Humanity is under sin, subject to the unavoidable wrath of God, yet we carry within us the seeds of knowing God, enabling us to respond to the gospel. No matter how humanity pursues philosophy, science, art, or ideology to find meaning, Christ’s gospel alone offers the ultimate solution. The church, entrusted with that solution, must faithfully address sin, call for repentance, and offer the path to salvation to all who seek it.

Pastor David Jang’s exposition of Romans reminds us how grave our spiritual predicament is, yet also how marvelously God has opened a way of salvation for us. God’s wrath is real, but so are His grace and redemption. Humanity remains under the dominion of sin and death, yet we also yearn, at the deepest level, for God. Recognizing both realities, we proclaim the gospel’s call: “Believe in Jesus Christ and be saved!” This is the pivotal first step of the salvation story that Romans narrates.

Ultimately, Romans 1:18–19, placing side by side “the wrath of God” and “what can be known about God,” inaugurates the entire argument of Romans. With it, Paul ushers readers into the depth of sin while simultaneously pointing to the doorway of hope—returning to God. This is why Pastor David Jang and countless other pastors and theologians delve into these verses so thoroughly. We must confront sin to behold salvation, and we must realize that God has already sown a longing for Himself within us so that there is room for the gospel to enter.

May we not avoid sin’s diagnosis but, rather, accept the cure that is the gospel. For indeed, when we do, God’s wrath becomes a catalyst urging us back into His loving arms. The entirety of Romans is the unfolding of this beautiful redemptive plan, beginning powerfully here in Romans 1:18–19.

하나님의 진노와 구원의 필요성 – 장재형목사

Ⅰ.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의 불경건·불의

로마서 1장 18-19절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의 본론을 시작하며 제시하는, 인간이 처한 죄의 현실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다루는 핵심 구절이다. 장재형 (장다윗)목사는 여러 설교와 강해를 통해 이 본문이 로마서 전체의 구조와 구원론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반임을 강조해 왔다. 사실 로마서를 읽다 보면, 복음이 선포되는 순서는 ‘죄’가 먼저 등장하고, 그다음에 ‘구원’이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이는 단순한 구조적 특징이 아니라,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실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지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살고 있던 수많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편지를 써 내려갔는데, 이 로마라는 도시는 당대에 문명과 세속적 번영의 상징이자 인간의 죄가 가장 부패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던 대표적 장소이기도 했다. 로마인들 역시 스스로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았고, 오히려 화려한 문명과 지혜, 군사력, 부를 자랑삼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는가? 이 찬란한 로마가 무얼 잘못했길래 굳이 구원이 필요하단 말인가?” 하는 자세로 바울의 메시지를 의아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왜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한지를 말하기 위해, 먼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존재인지를 매우 논리적으로 펼쳐 보였다.

장재형 목사는 이 로마서 1장 18-19절 강해에서, 특히 18절이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죄의 결과이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화 상태를 보여주는 말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진노”란 표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의 분노나, 인간적 감정의 투영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선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진노는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거룩과 의로움에 기초하여 죄를 심판하시는 정당한 반응이다. 하나님 앞에 “불경건과 불의” 가운데 있는 인간은 죄로 인해 그분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 결과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고 에베소서 2장 3절도 말한다.

여기서 “불경건”이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위배하는 죄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예배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잊고 살거나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태도를 뜻한다. 반면 “불의”는 인간 관계에서의 수평적 죄의 양상으로, 서로를 해치고 타인을 억압하며, 부정직과 위선, 탐욕 등으로 드러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8절에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을 지목하며, 이들은 의도적으로 진리를 가로막고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억누르려 하거나, 자신들 안에 있는 본능적·양심적 하나님 인식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듯, 대부분의 사람은 죄의 문제를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와 수치를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므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왜 내가 죄인이냐”며 반발한다. 그렇기에 복음을 전할 때 ‘구원’이라는 용어가 주는 깊은 의미와 기쁨을 알려주려 해도, 먼저 “왜 구원이 필요한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면 상대는 ‘나는 구원 같은 게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에 대해 바울은 죄론을 자세히 전개하며, 인간의 실존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의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차근차근 파헤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라는 로마서 1장18절은, 죄가 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지 그 이유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어지는 구절들(1장 19-32절)을 통해 점차 죄의 본질과 결과를 설명한다. 특히 장재형 목사는 이 본문을 분석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이 저지르는 불경건과 불의가 결국 자기 파멸로 가는 길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를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점을 짚는다. 마치 사람이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고, 때로는 진노하고 책망하여 바로잡으려 하듯이,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의 불꽃이요 사랑의 경고이기도 하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말하지만, 그 사랑은 결코 인간이 죄를 지속적으로 저지르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을 허용하거나 묵인하는 형태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과 분리되지 않고,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기본 관계를 파괴하는 죄에 대해서는 응당한 심판과 진노가 뒤따르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설교에서 이 점을 자주 인용한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시며, 단순히 철학적 개념의 ‘무감정적 신’이 아니라고 말이다. 고대 헬라의 철학적 신 개념은 전지전능하고 냉철한 본질로서, 인간적 감정과는 아예 무관한 존재로 그려진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요 아버지이시며, 인간이 죄 가운데 있을 때 탄식하시고 격분하시기도 하신다. 예레미야와 호세아 같은 선지서들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인간을 향한 질투, 슬픔, 분노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이는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시기 때문이며, 이 사랑의 관계가 깨질 때 “진노”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사랑의 본성에서 나오는 필연적 반응이다.

“불경건과 불의”로 묶이는 인간의 죄는, 십계명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에 대한 죄로 요약될 수 있다. 아무리 세상이 진보하고 과학 문명이 발전해도,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참된 선과 의를 실현하기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로마 제국처럼 강력한 법 체계를 지니고, 스토아 철학이나 에픽쿠로스 학파 등 여러 윤리적·철학적 전통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경건과 불의는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타락한 인간은 철학적 지식이나 도덕적 훈련만으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죄가 단지 개인적 일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데서 비롯된 실존적 타락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어서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말한다. 장재형 목사는 설교에서,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는 표현이 인간의 죄가 누적되어 정점에 이를 때,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임하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많은 기회를 주시지만, 결국은 공의롭게 죄를 심판하심으로써 당신의 거룩과 정의를 드러내신다. 구약에서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생활 등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공허한 경고가 아님을 입증해준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종말 심판의 경고나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등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한 진노를 잘 보여준다.

이 “진노”라는 개념을 우리 시대 일부 신앙인들은 불편하게 여기거나,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다가 왜곡시킬 때가 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진노가 없다면, 사실상 하나님의 사랑도 공허한 개념이 되고 만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고, 죄가 인간에게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죄를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장재형 목사는 설교에서 이것을 부모와 자녀 관계에 자주 비유한다. 자녀가 위험한 길로 가고 있는데, 부모가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전혀 징계나 책망을 하지 않고 방관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 아이에게 영원한 해가 닥쳐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역시 죄로 인해 멸망 가운데 떨어진 인간을 향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돌이킬 기회를 허락하시며, 결국 죄의 결과에 대한 심판을 내리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이다.

바울이 말하는 ‘이방인의 죄’는 곧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죄를 총칭하지만, 그중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불경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 즉 수직적 관계의 파괴가 곧 수평적 관계의 파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사회적 불의, 전쟁, 폭력, 착취, 성적 타락 등은 궁극적으로 ‘불경건’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삶, 혹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이 모든 악행의 뿌리가 된다. 로마서 1장 후반부를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긴커녕 우상에게 절을 하고, 거짓된 이미지와 이념에 헌신하며, 자기 욕망을 우상화한 결과로 온갖 죄악과 부패가 만연해진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맥락에서, 죄가 드러나는 것을 교회나 성도들이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죄를 직면하고 드러낼 때에만, 비로소 죄에서 돌아설 기회와 구원받을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죄가 숨겨지면, 결국 그것이 곪아서 더 심각한 병으로 발전한다. 한 개인도 그렇고, 한 나라나 사회도 그렇다. 죄를 애매하게 덮는 것은 사랑의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 죄의 뿌리를 더 깊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방치하지 않으시며, 때가 되면 반드시 진노로 심판하실 것을 성경 전반에서 거듭해서 알려주신다.

이러한 죄론은 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간략히 구분하면, 바울은 첫째 1장 18-32절에서 이방인의 죄를 말하고, 둘째 2장 1절-3장 8절에서 유대인의 죄를 고발하며, 셋째 3장 9-20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음을 선언한다. 요약하자면,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바울의 결론이다(롬 3:10).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에서 구원하시는 유일한 길이 됨을 강조하기 위한 전제 논증으로, 바울은 죄의 보편성을 철저히 파헤쳐 놓는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진노”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진노를 경험하지만, 인간의 분노는 대개 죄된 감정에서 나오는 불완전한 형태이다. 반면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향한 공의로운 정죄이며, 인간의 구원을 위한 거룩한 방책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야말로 로마서가 시작부터 죄와 진노를 다루는 근본 이유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노 아래에 있음을 알아야만,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18절에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결코 가볍게 지나칠 부분이 아니다. 바울이 로마서 본론을 시작하며 제시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이 하나님의 진노이며, 이것이 인간의 불경건과 불의, 곧 죄를 향해 임한다는 것이다. 로마시대에도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자신의 삶을 정당화했고,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기를 꺼렸다. 현대인 역시 과학과 기술, 경제 발전 등을 자랑하며 “왜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인간이 진정으로 죄 가운데 있음을 알지 못하면, 구원의 필요성 역시 절대 절감하지 못한다. 따라서 장재형 목사는 이 로마서 1장 18절 말씀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바울의 선포가 현대에도 얼마나 중요한가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러한 진노의 배경에는, 사람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는 구체적인 죄가 놓여 있다. 진리가 선포될 때 사람들은 그것을 환영하기보다 되려 적대시할 때가 많다. 진리가 빛을 비출수록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므로, 죄를 사랑하는 자들은 진리가 전해지는 입을 틀어막으려 든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복음이 전파될 때 그것을 탄압하는 세력은 항상 있어 왔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이 막히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과 믿음의 증인들이 계속해서 복음을 외치고, 교회는 여러 핍박 속에서도 진리를 지켜내며 확장되어 왔다. 이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8)라는 성경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한편, 바울이 전했던 하나님의 진노 메시지는 결코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죄책감에만 사로잡히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궁극적으로는 ‘죄에서 돌아서라’,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초대의 성격이 더 강하다. 인간이 죄를 깨닫지 못하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바울은 가차 없이 죄를 지적한다. 교회가 죄의 지적을 회피하거나 적당히 넘어가면,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구원 또한 당연히 개인에게 절실하지 않게 되고, 복음은 ‘좋은 말’ 이상의 힘을 잃게 된다. 그래서 바울과 초대교회는 철저한 죄 인식을 강조했고,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장재형 목사는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로마서 1장 18절에 명시된 “하나님의 진노”는 그 자체로 복음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매김을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처한 죄의 실상과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직면해야 한다. 이것을 외면하면, 결국 복음의 능력과 은혜 또한 절실히 깨달을 길이 없다.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이고,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구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이처럼 “경건치 않음과 불의”가 불러온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이 자기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본질적 문제이다. 죄의 문제 앞에, 죄로 인해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인간은 비로소 회개와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로마의 화려한 문화와 성공, 번영도 이 문제를 덮을 수 없었고, 오늘날 어떤 세속적 안정과 풍요도 죄와 진노의 문제를 가볍게 할 수 없다. 이것이 바울이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 실존의 절박함이며, 동시에 복음이 필요한 이유다.

Ⅱ. 인간 내면의 하나님 인식과 구원의 필요성

로마서 1장 19절은 이러한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내용에 이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바울은 불신자, 곧 아직 예수를 모르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어떤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불경건과 불의 가운데 있으나, 여전히 사람 안에는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인식하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설교에서, 이 구절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지고 있으며, 설령 죄로 타락했어도 완전히 망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물론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의 파편이라 할 수 있는 이성, 자유의지, 도덕적 감각, 종교적 본성 등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신’이나 ‘절대자’에 대한 탐색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바울은 “알 만한 것”을 두 가지 차원에서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피조세계’를 통한 일반계시 차원이다. 로마서 1장 20절에서도 이어지는데,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과 우주, 세상의 질서를 통해 그분의 신성과 능력을 어느 정도는 인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시사철 바뀌는 계절, 질서 정연한 자연의 이치, 태양과 별의 운행, 생명의 경이로움 등은 우연이나 혼돈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의 섭리와 계획 아래 움직이는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많은 철학자나 과학자들조차, 우주가 무질서한 혼돈이 아니라 정교한 질서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절대자를 인정하기도 한다.

둘째, ‘인간 내면’의 양심과 이성 차원이다. 장재형 목사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선과 악을 구분하며, 자신의 존재 목적을 찾으려는 움직임 등을 통해 이미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살면서 근본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에 부딪힌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기본적으로 느끼는 영적 공허, 불안에서 기인한다. 하나님을 알 때만이 해갈될 수 있는 이 목마름이, 바로 인간 영혼에 새겨진 ‘하나님을 향한 본능적 갈망’이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처럼, “하나님 안에 안식하기 전에는 인간의 영혼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다”는 통찰은 시대를 초월하여 계속 이어져 내려온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않았다”(롬 1:21)고 이어서 말한다. 즉 하나님을 알 만한 증거와 내면의 소리가 있음에도, 인간은 죄로 인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배척한다. 혹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체하고, 진리보다 거짓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높이기에 급급하다. 그 결과, 불경건과 불의는 더욱 가속화된다.

장재형 목사는 설교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배척함으로 생겨나는 결과를 “불안, 고독, 허무, 절망” 등으로 요약한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세속적 욕망으로 일시적 만족을 얻으려 해도 근본적 허무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엄습하는 고독감,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에서 생겨나는 절망감 등은, 결국 인간 영혼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상태”를 스스로 고통스럽게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불신자들도 깊은 고뇌의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신’ 혹은 ‘절대자’를 찾게 된다.

하지만 진리는 분명하다. 인간은 어떠한 도덕 수련이나 철학적 사유로만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찾도록 돕는 도구일 수는 있지만, 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참된 사귐은 불가능하다. 이는 바울이 로마서 전체에서 강조하는 메시지다. 죄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이 주어진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 은혜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로마서의 핵심 구원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인간 내면에 있으나, 그 불씨만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복음이 필요하다. 장재형 목사는 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해방, 그리고 영혼의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한다. 예수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고 외치셨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초대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초대는 종교 의식이나 공로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문제는 종교조차도 때로는 ‘장사꾼’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곤 한다는 점이다. 구원의 조건을 규정하고, 여러 행위나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마치 인간이 스스로 어떤 자격을 갖춰야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오해를 낳는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따르면,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된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도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장재형 목사는 이 부분을 설교할 때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비유한 예수님의 가르침(누가복음15장 탕자의 비유)을 강조한다.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오겠다”는 마음만 먹었을 때, 그가 무슨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던 게 아니다. 아버지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그의 죄를 용서해주고,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 과정에서는 어떤 복잡한 절차나 대가가 개입되지 않았다. 그냥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죄책감이나 교만, 또는 세상의 왜곡된 종교관 때문인지, 자기가 뭔가를 더 준비해야만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본문이 말하듯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이미 인간 안에 있는 상태에서, 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먼저 인간을 찾아오셔서 돌아오기를 촉구하신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그 즉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죄 사함과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처럼 우리 영혼이 하나님 없이는 갈급하고 불안하고 허무하다는 것은, 인간 존재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어떤 세속적 성취나 오락거리도 이 갈증을 완전히 해소해주지 못한다. 고대 로마의 지식인들, 예컨대 세네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철학자들도 인생의 의미를 찾는 데 몰두했고, 스토아 철학으로 내면의 평안을 추구했지만, 결국 죄 문제 자체를 해결할 길은 없었다. 바울은 이들에게, 진정한 해답은 하나님께 있음을 강력히 피력한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는 구절을 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결코 인간을 모르쇠로 방치하는 데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당신을 드러내고 계신다. 자연을 통해, 양심을 통해, 역사를 통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보여주셨다. 문제는 인간이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달려 있다.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 불경건과 불의를 책망하시고, 결국 진노로 심판하신다(롬 1:18). 받아들일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회복된 관계인 ‘화목’이 이뤄진다(롬 5장). 화목은 곧 구원이며, 거듭난 인생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상태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죄로 깨진 관계가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죄가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이킬 때,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나 자신을 되찾는다”고 설교한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소속을 바꾸거나 예배 형식을 갖추는 차원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온전해질 수 없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어거스틴의 유명한 말, “하나님 안에 안식하기 전에는 내 영혼이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는 고백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인간 실존의 본질을 관통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게 창조되었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평안과 기쁨, 사랑,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세상은 온갖 대체물을 제시하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돈, 권력, 명예, 쾌락, 온갖 우상적 대상들이“이것이 너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말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일시적 만족과 더 큰 갈증을 야기할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영혼의 방황을 지속한다. 장재형 목사는, “신앙한다는 것,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본래의 나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이는 특정 종교에 입문하거나 제도권에 소속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본래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삶의 참된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근원적으로 깨닫는 과정이다.

인간은 이미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지니고 있기에, 언제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가능성이 열려 있다. 세상 어느 지역, 어느 문화권에서든 인류는 끊임없이 신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종종 왜곡되거나, 우상 숭배로 흐르거나, 진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신 개념에 갇히기도 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당신들이 지금 섬기는 무수한 우상이나 철학의 신, 제국 신격화가 아니라,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외치는 것이다.

결국, 로마서 1장 19절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는 선언을 통해, 인간 내면의 종교적·영적 본질을 확인시켜 준다. 동시에 1장 18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진노”와 나란히 제시되어, 인간의 이중적 실존을 보여준다. 즉, 한편으로 인간 안에는 하나님을 향하는 갈망과 양심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로 인해 하나님을 거부하는 반발심이 함께 존재한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원죄와 하나님의 형상’의 혼재라고 볼 수도 있다.

장재형 목사는 설교에서,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죄를 책망하되,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가능성을 믿어 주는 시선”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무작정 “당신들은 지옥 갈 죄인”이라고만 말하면, 그들은 귀를 닫아버릴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보여준 것처럼, 죄를 정확히 지적하되, 그 이유는 결국 “인간 안에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능력이 있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변화될 수 있다”는 소망을 함께 전하기 위함이다. 인간에게 죄가 있지만 동시에 구원에 이를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길이 바로 복음이다.

이 복음의 본질은, 인간이 어떤 자격을 갖출 필요가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오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할 때, 죄 사함과 영생이 주어진다. 탕자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듯, 죄인 된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참된 아들·딸로 회복시키신다. 로마서는 이후에 이 구원론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칭의와 성화, 영화로 이어지는 구원의 단계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항상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마음이다.

한편, 이를 전하는 교회의 사명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교회 역시 무수한 유혹과 세속화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교회 안에서조차“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왜곡되는 일이 벌어지기 쉽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진리로 빛을 비추어야 할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이면, 결국 복음의 순수성과 능력을 잃고,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막아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복음이 지닌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은혜를 전하는 대신, 인간적 자랑이나 행위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면, 영혼들이 참 자유를 경험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는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바울이 로마서 2장에서 “유대인인 네가 이방인을 판단하느냐? 너희도 똑같다”고 선언하듯이, 죄를 지적하는 교회가 스스로 죄에 빠져 있다면 위선이 된다. 교회 공동체가 진리를 막는 일, 즉 불경건과 불의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죄를 적당히 눈감아 주거나, 죄를 지적할 때 사랑 없이 정죄만을 하는 극단적 태도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죄를 밝혀 회개로 인도하고, 궁극적으로는 용서와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로마서 1장 19절은, 결국 “인간이 마음만 열면 언제든 하나님을 인식하고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울은 1장 후반부에서 이 희망을 버리고 계속해서 죄를 즐기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내어 버려두셨다”는 표현을 쓴다(롬 1:24, 26, 28). 인간이 끝까지 거부하니, 하나님도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시되, 그 결과가 어떠한 파멸을 가져오는지 결국 당사자 스스로가 맛보도록 허용하신다는 뜻이다.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인간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욕망에 따라 사는 길을 택하면, 파멸의 책임도 자신이 지게 된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그 답을 로마서 3장 이후에 바울이 밝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모든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벗어나 영생의 길에 들어가는 길이 제시된다. 이 복음이 바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 로마서 1장 18-19절의 무거운 죄론과 진노 선언은,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죄가 크고 인간이 절망적일수록,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더 분명해지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을 알지 못하면 여전히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명확하게 정리한다. 일반계시나 양심의 기능만으로는 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본능”을 주셨다는 사실은, 복음이 선포될 때 영혼이 그 음성에 반응할 수 있는 영적 토양이 이미 준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교회는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사람들의 심령 깊은 곳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으며,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분출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로마서 1장 18절과 19절은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을 나란히 보여주는 말씀이자, 인간이 왜 구원받아야 하고,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한 서론을 제공한다. “불경건과 불의”로 요약되는 죄 때문에 인간은 진노 아래 놓여 있으나, 동시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인간 안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마음만 돌이켜 복음을 받아들이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전체에서 전개하는 복음의 정수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영원한 진리이다.

우리는 각자 어느 누구도 “나는 죄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자가 없음을 성경을 통해 배운다. 그러나 그 무게감 속에서도 희망을 갖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존재 깊숙이 당신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심어 놓으셨고, 그 길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완전하게 열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인간은 비로소 참된 나 자신을 찾아가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써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올바르게 붙들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복음은 오직 죄 아래 있는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인간이 죄를 깨닫는 길은 이미 하나님이 내면에 심어두신 갈망과 자연계시를 통해 가능해진다”고 거듭 강조한다. 복음이 선포될 때,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아, 내가 늘 갈급했던 바로 그것이구나” 하고 인식하거나, 혹은 마음속에 숨어 있던 죄책감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회개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런 ‘돌이킴’과 ‘주님께 나아옴’이야말로 로마서가 말하는 구원의 출발점이다.

결국, 로마서 1장 18-19절은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는 손길을 거두지 않으시며, 다만 인간이 그 손길을 뿌리칠 때, 죄에 대한 진노를 면할 수 없음을 천명한다. 바울의 시대 로마뿐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문화권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과학이 발전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해도, 내면 깊은 곳의 불안과 허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내재되어 있으나,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데서 오는 필연적 결과다.

그러나 이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마음을 열면,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그분의 자녀로 회복되는 길이 열려 있다. 교회는 이 사실을 전해야 하고, 세상은 이를 거부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복음을 받아들여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죄 사함과 영생이 약속되고, 끝까지 거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이 로마서 전체가 말하는 구원의 논리다.

이렇게 보면, 로마서 1장 18-19절이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 내면의 하나님 인식 문제는 단지 바울 시대나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죄가 있는 한, 이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동시에 복음의 답변도 계속된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찾도록 창조되었고, 그 갈망을 죄가 가려버려서 스스로 길을 잃었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다시 열어 두셨다. 교회와 성도는 바로 이 길을 세상에 소개하고,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장재형 목사가 이 본문을 강해할 때마다 핵심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당신은 참된 자신을 회복하였는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계속 남을 것인가, 아니면 죄를 인정하고 돌이켜 구원의 은혜를 붙들 것인가?”이다. 이는 로마서가 주는 매우 직접적이고도 개인적인 도전이기도 하다. 복음은 단순 지식이 아니라, 실존적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 안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음을 깨닫고, 더는 죄를 핑계 삼거나 회피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를 멸망으로 몰고 가는 공포가 아니라, 죄로부터 돌아오게 만드는 ‘구원의 기회’가 된다.

결국 로마서 1장 18-19절은 죄와 구원, 진노와 은혜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결코 참 자아도, 참된 평화도 찾을 수 없는 존재이다.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을 외면할 때, 죄 가운데 머무를 수밖에 없고, 그 죄로 인해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불가피하다. 그래서 복음이 필요한 것이며, 복음이야말로 죄 사함과 영생, 하나님과 화목되는 길이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이 메시지를 잃어버리지 않을 때 세상 속에서 힘있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존재”임을 전제해야, 죄를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회복을 믿고 기다릴 수 있다. 또 “하나님의 진노”를 전제해야, 복음이 얼마나 절실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만일 교회가 죄나 진노를 회피해 버리면, 인간은 자기가 진정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구원 또한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반대로 인간 내면의 하나님 인식을 무시한다면, 복음 전파에 있어서 ‘상대방은 아예 희망이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두 구절(롬 1:18, 1:19)이 함께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죄와 진노의 심각성을 직시하면서도, 회개와 구원의 가능성을 소망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당신 안에 이미 하나님을 알 만한 무엇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루속히 돌이켜야 합니다”라고 권면할 수 있다. 이 권면을 듣고 마음을 열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복음은 생명과 구원의 능력이 된다.

결과적으로 로마서는 죄를 지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죄가 드러나야 구원이 임할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1장 후반부와 2-3장에서 인간의 죄를 철저히 폭로한 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하여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칭의”의 복음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로움이 없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가 임한다. 이것이 로마서가 펼치는 위대한 복음이다. 그리고 1장 18-19절은 바로 그 위대한 복음의 문을 열어 주는 시작점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말씀을 통해, 성도들에게 “스스로 죄를 깊이 인정하고 회개하며, 이미 내면에 주어진 하나님의 음성에 더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라”고 권면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없이 살 수 없게 창조되었고, 그렇기에 죄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게 마련이다. 그 갈망이 결국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끝까지 그 갈망을 부정하고 진리를 막으면, 진노를 피할 수 없다. 반대로 갈망을 인정하고,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면, 죄 사함과 영생을 얻게 된다.

이렇듯 로마서 1장 18-19절은 복음의 전말을 보여주는 서곡이다. 죄의 현실과 하나님의 진노, 그리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인간의 내면적 가능성이 교차하면서, “왜 구원이 필요한가?”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자연스레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로마서는 이 물음에 대한 최종 해답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으로 제시한다. 교회와 성도는 이 답을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분께 돌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길을 열어 두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야말로 죄와 진노에서 벗어나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회복시키시는 유일한 길이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듯,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복음의 핵심이다. 교회는 죄를 노골적으로 지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되, 정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를 동시에 전해야 한다. 또한 세상이 이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본적 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며,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죄와 은혜, 진노와 구원이 함께 드러날 때, 로마서가 말하는 복음은 오늘날에도 생생한 능력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의 가장 핵심은, 인간이 ‘본래의 나’를 되찾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등을 지고 불화 관계에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어 그분의 자녀가 되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삶의 목적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불의한 인간관계 역시 치유와 회복으로 나아갈 길이 열린다. 수직적 관계가 회복되어야 수평적 관계도 회복된다는 것이 로마서의 핵심 논리다. 불경건을 해결해야 불의의 문제들도 점차 치유된다.

결국, 로마서 1장 18-19절은 짧은 두 구절 안에 복음 신학의 중요한 전제가 다 들어 있다. 인간은 죄 가운데 있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길이 없으나, 동시에 인간 안에는 하나님을 알 만한 씨앗이 있어 복음을 받아들일 잠재력이 존재한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과학, 철학, 예술, 사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 하지만, 참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다. 교회는 이 해답을 가진 공동체로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은혜의 길을 안내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의 로마서 강해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점은, 인간이 처한 영적 현실이 얼마나 엄중한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돌아올 길을 열어 두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동시에 바라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현실이지만,그분의 은혜와 구원도 현실이다. 인간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라’는 복음의 초대에 온전히 응답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라는 두 축을 한눈에 보여주는 본문(롬 1:18-19)은, 로마서 전체의 서론이자 복음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바울은 이를 통해 독자들을 죄의 심연으로 안내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의 문을 열어 준다. 장재형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목회자와 신학자가 이 본문을 심도 있게 강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죄를 인식해야 구원이 보이고, 이미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음을 깨달아야 복음이 들어올 자리가 열리는 것이다. 

La voie de la justice dans la sanctification – Pasteur David Jang

Le texte qui suit est centré sur le chapitre 6 de l’Épître aux Romains et aborde le thème de la « justification et de la sanctification, et de l’offrande de nos membres comme instruments de justice à Dieu ». Il reflète les points d’emphase pastorale de David Jang, de sorte qu’il offre une lecture élargie tant de la théologie du chapitre 6 de Romains que des applications concrètes que David Jang en tire dans son ministère.


1. Le changement de statut par grâce – mourir au péché et vivre en Christ (la justification) selon l’approche du salut de David Jang

David Jang, à travers de nombreux sermons et ouvrages, a toujours distingué clairement les trois étapes du salut : la « justification » (justification) comme événement ponctuel, la « sanctification » (sanctification) comme processus continu de transformation, et la « glorification » (glorification) à venir. Pour autant, il insiste sur le fait que ces trois dimensions ne peuvent être séparées, mais forment plutôt un grand itinéraire, une aventure unifiée. Lorsqu’il commente le chapitre 6 de l’Épître aux Romains, il souligne cette déclaration de Paul : « Nous sommes morts au péché et présentés à Dieu » pour rappeler sur quoi repose la certitude du salut. Autrement dit, la justification est un événement simultanément unique et achevé, mais cela ne veut pas dire que l’entier processus de sanctification soit automatiquement accompli. De même, il est impossible d’évoquer la sanctification sans passer par la justification – point sur lequel David Jang revient souvent.

Dans Romains 6.1-2, Paul répond à une question potentiellement mal comprise, issue de sa précédente affirmation selon laquelle « là où le péché a abondé, la grâce a surabondé » (Romains 5). On pourrait en effet se demander : « Alors, pour faire abonder encore plus la grâce, ne devrions-nous pas pécher davantage ? » Paul répond fermement : « Loin de là ! » David Jang y voit la correction d’une illusion fréquente : sous prétexte que Dieu est amour et riche en grâce, on pourrait en conclure que notre salut reste intact même si nous vivons à notre guise. Pourtant, comme le dit Paul, si nous sommes déjà morts au péché (= justifiés), comment pourrions-nous persister dans le péché ? Selon David Jang, « le salut est un événement spirituel qui, dès le début, bouleverse l’entièreté de la vie ». Être « mort au péché » n’est pas une simple formule dogmatique, mais un changement radical de statut : notre identité est transformée.

Ce changement de statut, ainsi que le déclare Paul, s’inscrit dans la volonté de Dieu qui veut nous faire « marcher en nouveauté de vie » (Romains 6.4). Lorsque David Jang répète que « la justification est un changement de statut », il met l’accent sur la vérité selon laquelle le péché ne définit plus notre identité. Autrefois qualifiés de « pécheurs », nous sommes maintenant désignés comme ceux qui ont été « déclarés justes », ce qui signifie que notre être n’appartient plus au péché. Cette réalité rejoint la parole de Romains 6.7 : « Celui qui est mort est libéré du péché. »

David Jang insiste pour dire qu’il s’agit à la fois d’une « déclaration spirituelle accomplie une fois pour toutes » et d’un « point de basculement nécessitant une nouvelle responsabilité et décision ». Le sacrifice de Jésus-Christ, mort en croix pour porter tous nos péchés, a une fois pour toutes réglé la question du péché, et c’est à ce moment précis que nous avons été déclarés justes. Toutefois, pour que cette grâce de la justification agisse puissamment dans nos existences, nous devons renoncer à toute attitude de « banalisation » ou de « mauvaise utilisation » de la grâce, et opérer un tournant résolu vers la reconnaissance et la révérence envers Dieu.

La formule de Romains 6.3-5 concernant le fait d’être « baptisés en Jésus-Christ pour être unis à sa mort » est elle aussi fréquemment citée dans les sermons de David Jang. Il enseigne que le baptême n’est pas seulement un rite d’entrée dans l’Église ou une tradition ecclésiale, mais qu’il symbolise la « réalité de notre union avec le Christ ». C’est un signe et un sacrement qui exprime la mort et la résurrection en Christ. Paul explique que, par le baptême, nous avons été ensevelis avec Jésus (Romains 6.4), signifiant que notre ancienne nature pécheresse, la vie reçue d’Adam, a été crucifiée et ensevelie avec Christ. La résurrection du Christ proclame que nous avons reçu une vie nouvelle.

Dans ce contexte, David Jang exhorte souvent : « N’osez pas douter de la réalité selon laquelle votre péché a déjà été réglé une fois pour toutes. » En effet, beaucoup de croyants traversent des chutes et des échecs dans leur vie de foi et se demandent s’ils sont vraiment sauvés. Toutefois, à la lumière de l’enseignement de Paul, David Jang affirme avec force que « l’identité du croyant comme sauvé ne vacille pas ». Ce n’est ni nos émotions ni nos fautes ponctuelles qui déterminent notre statut de salut, car le problème du péché originel est définitivement tranché à la croix par Jésus-Christ.

En somme, proclamer que nous sommes « morts au péché » implique simultanément que nous « vivons pour Dieu ». Romains 6.8 l’exprime ainsi : « Si nous sommes morts avec le Christ, nous croyons que nous vivrons aussi avec lui. » Pour David Jang, cette confession de foi est le cœur du christianisme. Mourir au péché revient à sortir de son emprise ; vivre avec Christ revient à entrer sous sa souveraineté, dans le cadre d’une nouvelle vie. Croire en Jésus ne signifie pas seulement recevoir un « ticket pour le ciel après la mort », mais c’est dès ici-bas vivre déjà sous le règne de Dieu, de manière positive et active. Voilà le point central que souligne Jang.

Ainsi, le premier volet de notre réflexion porte sur la conséquence concrète de l’affirmation « nous sommes morts au péché ». David Jang éclaire le salut comme un « acte instantané et un appel spirituel pour l’avenir », nous invitant à réaffirmer chaque jour notre identité de sauvés. Nous qui étions jadis « en Adam » sommes désormais « en Jésus-Christ », et nous sommes déjà déclarés justes. Ce fondement doit être le socle de notre vie. De plus, cet événement salvifique ne doit pas rester un concept théologique abstrait, mais ouvrir la voie vers une mise en pratique concrète de la mort et de la résurrection de Christ dans nos corps. De là naît le second volet, la « sanctification », autrement dit le combat spirituel, la lutte contre soi-même, et la marche pratique visant à devenir de véritables « instruments de justice », tels que Paul l’énonce en Romains 6.


2. Le processus acharné de sanctification – maîtriser son corps et mener le combat spirituel selon David Jang

À partir de Romains 6.12, Paul se concentre sur la question de savoir pourquoi « ceux qui sont déjà morts au péché » doivent encore faire face à la tentation, et comment ils peuvent remporter cette bataille. David Jang explique : « Même si notre statut a changé et que nous appartenons à Dieu, la faiblesse de notre corps et les restes du péché sont encore présents. » Selon la formulation de Paul, « le péché cherche toujours à régner dans notre corps mortel » (Romains 6.12). Bien que le statut soit déjà acquis (nous sommes à Dieu), notre ‘état’ (state) requiert encore des transformations progressives.

Le pasteur Jang note que « ce n’est pas encore le temps d’entrer directement au ciel, mais le moment de vivre sur terre ‘la sanctification’ en termes de transformation intérieure et spirituelle ». Lorsque nous plaçons notre foi en Jésus, il ne fait pas disparaître d’un coup toutes nos mauvaises habitudes ou les tentations diaboliques. C’est même souvent l’inverse : en tant qu’enfants de Dieu, nous percevons de manière plus fine l’œuvre rusée de l’ennemi. Si Paul insiste sur le « corps », c’est pour une raison : nos pensées, émotions, paroles et actes se manifestent à travers ce « corps mortel », et c’est précisément par ce canal que Satan tente de nous ramener dans l’ancien mode de vie pécheur.

Pour David Jang, la manière de mener ce combat spirituel au quotidien se décline principalement en deux axes, énoncés régulièrement dans ses sermons et écrits. Premièrement : « Demeurez dans la vérité. » Sans la Parole de Dieu (la vérité), il est impossible de puiser la force spirituelle qui permette de maîtriser notre corps et ses impulsions. Deuxièmement : « Entraînez-vous de manière répétée à soumettre votre corps. » Il ne s’agit pas d’un ascétisme outrancier ni d’un légalisme, mais plutôt d’une discipline volontaire, soutenue par la puissance du Saint-Esprit, pour contrôler nos yeux, nos oreilles, notre bouche, nos mains et nos pieds. C’est un exercice permettant de réduire progressivement l’emprise du péché.

Lorsque Paul déclare : « Ne livrez pas vos membres au péché pour qu’ils soient des instruments d’iniquité, mais donnez-vous vous-mêmes à Dieu comme des instruments de justice » (Romains 6.13), il indique que notre corps ne constitue pas un support neutre : il peut être l’« arme » (ou l’instrument) de quelqu’un. Si le péché règne, notre corps devient l’instrument du péché ; si la justice règne, il devient l’instrument de la justice de Dieu. David Jang évoque cette image simple et concrète : lorsque nos mains et nos pieds servent dans le culte ou le service au prochain, ils se transforment en instruments de justice ; mais s’ils servent à commettre le mal, ils sont au service du péché. Ce n’est donc pas l’outil lui-même qui est problématique, mais « à qui nous abandonnons cet outil ».

Dans Romains 6.14, on lit : « Car le péché n’aura point de pouvoir sur vous, puisque vous n’êtes pas sous la loi, mais sous la grâce. » David Jang revient fréquemment sur ce thème dans ses prédications. Il explique qu’« être sous la grâce » nous fait réaliser que nous sommes devenus un peuple libre, affranchi, et que le péché n’a plus de droit légal pour nous asservir. Sous la loi, la conscience humaine reste constamment dans la peur de la condamnation ; et bien des fois, le péché peut alors apparaître comme une forme de “liberté”. Mais cette “liberté” mène en fait à la servitude et à la mort. En revanche, sous la grâce, c’est Christ qui exerce la seigneurie, et le péché n’a plus aucune base légitime pour revendiquer notre appartenance. Le pasteur Jang qualifie Satan « d’occupant illégal » : depuis que Christ a racheté parfaitement notre vie au prix de son sang, le diable n’a plus qu’à user de mensonges pour tenter de nous déstabiliser.

David Jang insiste : « Il faut garder en mémoire que Satan est un occupant illégal. » Il ne peut plus légalement s’emparer de nous, puisque le Christ nous a rachetés, ce qui a transféré notre propriété à Dieu. Lorsque nous faiblissons et chutons, Satan essaie de murmurer : « Ne vois-tu pas que tu es toujours esclave du péché ? » Pourtant, c’est un mensonge. Dans ce cas, le croyant est invité à proclamer : « Je suis sous la grâce, mon maître est Jésus-Christ. » Par ce rappel, nous réaffirmons notre identité de justifiés, et dans la pratique, nous rejetons le péché de façon concrète.

Aux versets 15 et suivants, Paul reprend la question : « Puisque nous sommes sous la grâce, allons-nous pécher ? » et répond à nouveau : « Loin de là ! » David Jang relève qu’il s’agit là d’une mise en garde contre les désirs contradictoires qui subsistent en nous. Il demeure dans la chair une tendance qui consiste à manipuler la grâce en croyant pouvoir pécher impunément. L’orgueil et la paresse de l’homme le poussent à vouloir s’émanciper de la discipline de l’Esprit pour tirer avantage de la bonté divine. Pourtant, Paul est clair : puisque nous sommes déjà affranchis du péché, y retourner serait nous asservir nous-mêmes, un non-sens et une absurdité.

Au verset 16, Paul précise : « Ne savez-vous pas qu’en vous livrant à quelqu’un comme esclave pour lui obéir, vous devenez ses esclaves ? » Selon David Jang, tout est question de « choix » dans notre vie quotidienne : malgré le changement de maître, à qui offrons-nous concrètement notre cœur et nos actes ? « L’obéissance venue du cœur » fait de nous des serviteurs de Dieu, produisant la justice et conduisant à la vie (Romains 6.17-18). À l’inverse, si nous nous abandonnons à nos anciennes convoitises, nous redevenons des esclaves du péché, dont l’issue est la mort. C’est non seulement ce que déclare Paul, mais aussi ce que David Jang réaffirme en guise d’avertissement.

Le pasteur Jang souligne aussi l’expression du verset 19 : « Je parle à la manière des hommes, à cause de la faiblesse de votre chair ». Paul use de la métaphore de l’esclavage, familière à la société romaine, pour se faire comprendre du plus grand nombre. David Jang qualifie cette image d’« illustration simple, mais loin d’être anodine ». Autrefois, comme esclaves du péché, nous étions condamnés à la corruption et à la transgression qui mènent à la ruine, mais désormais, nous sommes appelés à nous livrer à Dieu pour progresser en sainteté.

Dans les versets 20-21, Paul invite à se souvenir des fruits que nous portions lorsque nous étions esclaves du péché : des fruits honteux aboutissant finalement à la mort. David Jang y voit le principe de « destruction et de dévastation » qui accompagne la satisfaction des désirs de la chair. Le péché engendre plus de péché, ruinant notre santé spirituelle et psychique, ainsi que nos liens sociaux. C’est un cycle sans fin de souffrance et de décomposition. En revanche, dans le verset 22, Paul affirme que nous avons été affranchis du péché, que nous sommes désormais esclaves de Dieu, pour produire « des fruits qui mènent à la sanctification ». C’est le thème central des exhortations de David Jang : la voie de la justice n’est pas un chemin terne de simple austérité ; c’est un chemin où la joie et la reconnaissance deviennent de plus en plus abondantes, débouchant sur la vie éternelle.

Le verset 23 boucle le raisonnement : « Car le salaire (ὀψώνια, opsōnia) du péché, c’est la mort, mais le don (χάρισμα, charisma) gratuit de Dieu, c’est la vie éternelle en Jésus-Christ notre Seigneur. » David Jang aime commenter le terme grec ὀψώνια, qui désigne la « solde du soldat », c’est-à-dire la paie obtenue en échange d’un dur labeur. Être asservi au péché, c’est récolter la mort en guise de rémunération. En revanche, devenir l’esclave de Dieu, c’est recevoir la χάρισμα, la grâce d’en haut, qui se donne sans contrepartie humaine. Ce contraste amène la conclusion : « À la lumière de ce choix, pourquoi ne pas nous décider avec joie à être les serviteurs du Seigneur ? »

Ce deuxième volet met donc en évidence que, même justifié, le croyant doit s’engager dans une lutte de sanctification pour triompher des convoitises charnelles. Selon David Jang, l’enseignement de Paul interpelle le croyant contemporain : « Chaque jour, il nous faut décider de nous offrir nous-mêmes comme armes de justice à Dieu, à travers un exercice, une formation, et une consécration continue. » Non par contrainte légaliste, mais dans une « obéissance aimante et volontaire », soutenue par l’Esprit. De cette manière, nous progressons peu à peu à l’image de Christ.


3. Vivre comme instruments de justice pour Dieu et l’insistance de David Jang sur la mission communautaire

David Jang souligne que le raisonnement de Paul dans Romains 6 ne se limite pas à l’intériorité et à la piété individuelles. Il s’étend à la dimension du témoignage communautaire et de la mission dans le monde. Romains 6.13 ordonne de « présenter nos membres à Dieu comme instruments de justice » : sur le plan individuel, il s’agit de livrer notre corps à Dieu plutôt qu’au péché, mais ce commandement s’élargit au fait d’être « témoins de la justice de Dieu au milieu du monde ».

Le pasteur Jang cite souvent le discours d’adieu de Jésus (Jean 15) : « Si vous demeurez en moi et que je demeure en vous, vous porterez beaucoup de fruit. » Or, ce fruit ne surgit pas de façon purement solitaire : il grandit dans la communion de l’Église, et il s’étend en témoignage vis-à-vis du monde incroyant. Ainsi, « être un instrument de justice » ne consiste pas seulement à repousser notre propre péché et à rechercher la sainteté intérieure ; il s’agit de manifester concrètement la lumière et le sel de l’Évangile au sein de la famille, de la communauté ecclésiale, et de la société toute entière. Selon David Jang, cette sanctification s’exprime dans des actions concrètes : servir, évangéliser, secourir les pauvres et partager avec ceux qui en ont besoin. Autant de domaines dans lesquels nos « mains et nos pieds » deviennent de véritables « instruments de justice » pour l’avancement du Royaume de Dieu.

David Jang énonce une règle importante : « Nous avons reçu la justification comme un don entièrement gratuit, mais ce don n’est pas à contempler de manière passive ; il appelle des fruits tangibles et visibles dans la ressemblance au caractère de Dieu. » Autrement dit, ce « fruit de sainteté » (Romains 6.22) désigne non seulement la pureté morale ou la piété, mais aussi la mise en œuvre concrète de la justice et de l’amour divins dans la communauté et dans la société. L’Église, en se fortifiant collectivement, encourage et soutient chacun de ses membres dans cet engagement, afin qu’ensemble nous restions des « instruments de justice » offerts à Dieu.

Par ailleurs, David Jang exhorte à « ne pas rester prisonniers de nos échecs ni de nos culpabilités passées ». Dans la mesure où nous sommes « morts au péché » et vivons désormais en Christ, nous ne devons plus nous appesantir sur nos fautes passées. Comme le dit Paul (Romains 6.4), nous sommes invités à « marcher en nouveauté de vie ». C’est un appel à continuer la marche de la sanctification, sans s’arrêter à nos remords. Pour cela, le pasteur recommande des soutiens au sein de l’Église : prière mutuelle, exhortation fraternelle, formation et discipline spirituelles, ainsi que des œuvres de solidarité envers les démunis et un engagement missionnaire.

Au final, l’enseignement global de Romains 6 vise à montrer qu’« ayant été libérés de l’esclavage du péché et devenus esclaves de Dieu en Christ, nous sommes appelés à vivre de manière à ne pas retourner à l’ancienne servitude, mais à mettre nos corps et nos existences au service de la sainteté, en portant de bons fruits ». David Jang reprend ce thème, insistant sur la distinction entre la justification et la sanctification, sans pour autant les séparer. Nous sommes devenus justes (acte unique et décisif), mais, forts de cette grâce, nous nous engageons dans le chemin de la sanctification, luttant contre la chair, progressant sous la direction de l’Esprit, et collaborant au projet de Dieu pour porter la justice dans le monde.

Comme Paul le proclame en Romains 6.23, « le salaire du péché, c’est la mort ; mais le don de Dieu, c’est la vie éternelle en Jésus-Christ notre Seigneur ». David Jang rappelle que notre espérance s’enracine dans la vie éternelle, le « cadeau gratuit de Dieu en Christ », et que cette espérance nous donne l’énergie nécessaire pour la vie présente. Cette perspective nourrit la joie et la reconnaissance lorsque nous nous offrons comme « instruments de justice », car elle nous fait déjà goûter quelque chose de la gloire à venir.

Ainsi, l’interprétation de David Jang concernant Romains 6 illustre comment la justification et la sanctification sont organiquement reliées, et comment le croyant, uni à la mort et à la résurrection du Christ, peut concrètement offrir son corps à Dieu pour en faire un instrument de justice. Romains 6 peut être considéré comme un condensé du message paulinien, et l’exégèse de David Jang apporte une approche pastorale et pratique pour mieux le saisir.


En résumé

  1. Le changement de statut par grâce : mourir au péché et vivre en Christ (justification)
    • Sous la loi du péché et de la mort, nous avons reçu par grâce la « justification » qui nous confère un statut entièrement nouveau, et ce changement s’opère en union avec la mort et la résurrection de Christ (confirmé symboliquement par le baptême).
    • David Jang décrit la justification comme le « changement de notre statut » : le problème de notre passé pécheur est résolu définitivement, et le péché ne peut plus déterminer notre destinée.
  2. La lutte acharnée pour maîtriser son corps (sanctification) et la conscience d’être sous la grâce
    • Même sauvés, nous restons exposés aux tentations via notre « corps mortel », et Satan cherche illégalement à nous récupérer.
    • David Jang prône une vie ancrée dans la Parole (la vérité) et un exercice spirituel, soutenu par le Saint-Esprit, pour dominer les désirs charnels. Lorsque nous saisissons que nous sommes « sous la grâce », nous réalisons que le péché n’a plus d’autorité légitime sur nous. Nous pouvons alors résister et devenir « instruments de justice ».
  3. Vivre comme instruments de justice et la mission communautaire
    • Il ne s’agit pas seulement d’une sainteté personnelle ou d’une éthique privée, mais d’une action engagée dans l’Église et dans le monde, afin de manifester la justice et l’amour de Dieu.
    • David Jang souligne qu’être « esclaves de la justice » doit se traduire par une consécration totale à Dieu et l’accomplissement de sa volonté dans la société, exprimée par le service, la mission, le partage, etc.

Le pasteur David Jang présente tout ce processus comme un « grand drame du salut qui commence à la croix de Jésus-Christ et s’étend jusqu’à l’éternité », soulignant que la grâce et l’amour de Dieu nous accompagnent inlassablement, tout en faisant appel à notre décision responsable et à notre obéissance effective. Romains 6 occupe une place cruciale dans cet itinéraire en proclamant le « passage de la mort à la vie, de l’esclavage du péché à l’esclavage de la justice », un mystère spirituel qui nous définit profondément.

En conclusion, le message central de Romains 6 peut se condenser ainsi : puisque Dieu, par la mort et la résurrection de Christ, a libéré les croyants de la puissance du péché, il les exhorte à ne pas revenir à leur ancienne servitude, mais à offrir tout leur être à Dieu pour porter des fruits de sainteté. Selon David Jang, c’est là « le privilège et la responsabilité » qui définissent la vie du chrétien, rappelant que notre raison d’être, notre but sur terre, est de devenir « des instruments de justice qui transforment le monde ». Cela nous ouvre un futur radicalement différent de celui que connaissaient ceux qui vivaient jadis sous la domination du péché, car nous y recevons « la vie éternelle », le don gratuit que Dieu réserve à tous ceux qui sont en Christ.

Ainsi, l’exposé de David Jang sur Romains 6 montre en quoi la justification et la sanctification sont indissociables, et il explique comment le croyant, uni à Christ dans sa mort et sa résurrection, peut mettre en pratique cette vérité en se donnant à Dieu corps et âme. Romains 6 est comme un « résumé de l’Évangile selon Paul », et l’approche pastorale de David Jang en fait un guide précieux pour intégrer ces vérités dans la vie de tous les jours.

圣化的义之路——张大卫牧师

围绕《罗马书》第六章所展开的“称义与圣化,以及献给上帝作义的兵器”这一主题,本文结合了张大卫牧师在牧会中的重点信息撰写而成。透过对《罗马书》第六章的神学阐释以及张大卫牧师的实际应用,我们期望能够更广泛地探讨保罗此处的教义核心与实践要点。


1. 因罪而死、在基督里活的恩典身化(的救恩

张大卫牧师在多次的讲道和著作中,一直明确区分救恩的三个阶段:一次性事件的“称义”(justification)、持续被更新的“圣化”(sanctification)以及终将完成的“荣耀”(glorification)。但同时,他强调这三者并不是彼此割裂的,而是同属一个宏大的救恩旅程。《罗马书》第六章中,保罗宣告“我们已经向罪死了,且献给了上帝”,张牧师由此带领我们回顾救恩的根基何在。也就是说,“称义”虽然是一次性且完结的事件,但并不意味着圣化的全过程会自动完成;然而,没有称义的前提,也不可能谈圣化。他对此反复强调。

在《罗马书》6章1-2节,保罗回应了人们可能对前文“罪越多,恩典就越多”(参罗5章)的误解:“那我们是否可以任意犯罪,好让恩典更多彰显吗?”保罗的回答是:“断乎不可!”对此,张大卫牧师指出,信徒常常陷入一种“上帝是爱、恩典丰富,所以我随心所欲活也不会失去救恩”的错误念头。但保罗直截了当地告诉我们,既然我们已经向罪死了(=称义),为何还能继续活在过去的罪中?张牧师进一步解释,“得救”从一开始就意味着整个人生被彻底翻转——“向罪死了”不仅是一句教义口号,而是表明我们的“身份”已被完全改变。

就像保罗所说,“使我们在新生命里生活”(参罗6:4),这是上帝的目标和心意,借此清晰地展现出来。张大卫牧师常常重复一句话:“称义就是身份的改变”,其中蕴含的真理就是:罪再也无法定义我们的本质。原本我们是被定义为“罪人”,如今却成为“被称义者”,这意味着我们的存在不再属于罪,而是已经摆脱了它的辖制。这正与《罗马书》6章7节“因为已死的人是脱离了罪,得以称义”的陈述相通。

张大卫牧师指出,这种改变既是“一次性完成的属灵宣告”,也是“一个呼唤新责任与新抉择的转折点”。也就是说,耶稣基督在十字架上一次性解决了我们的罪,因着祂的代赎,我们在那一刻便被称为义。然而,要让“称义”这一恩典在我们日常生活中发挥动力,我们就必须摒弃“滥用恩典”的态度,从内心深处向上帝献上感恩和敬畏,这才是正道的转向。

在《罗马书》6章3-5节所提及的“借着与基督的死联合而领受的洗礼”,张大卫牧师也常引用来阐释。他强调,洗礼并不只是加入教会或某一宗派的仪式而已,它乃是象征“我们与基督联合”的真实信仰宣告。虽然洗礼是一种礼仪,但其属灵意义在于“与基督同死同生”。保罗说我们因洗礼与耶稣同葬(罗6:4),象征过去在亚当里的旧罪性,已与基督同钉十字架、同葬在坟墓里;基督复活也宣布了我们获得新生命的事实。

在这一点上,张大卫牧师常常鼓励信徒:“不要怀疑‘罪已被一次性清算’的事实。”许多信徒在生活中会因软弱失败而沮丧,甚至动摇“我究竟得救了吗”的疑惑。然而,根据保罗的教导,张牧师亦反复强调:“信徒被得救的身份是不可动摇的。”即便我们因某些罪行或过错而跌倒,也并不会因此而丧失救恩,“原罪的问题”已经在基督的十字架上彻底解决了。

“向罪死了”的这一宣告也蕴含着另一面:“向上帝而活。”在《罗马书》6章8节,保罗说:“我们若是与基督同死,就信必与他同活。”张大卫牧师指出,这一信仰告白是基督信仰最核心的起点:若真是向罪死了,就不再受罪的支配;与基督同活,就意味着我们进入了祂的统治之下。这也就决定了我们的信仰绝非只是得到一张“死后可去天堂”的车票,而是在世时就已经走进了上帝的国度,享受并彰显那新的生命秩序。张牧师常常提醒不要错失这一积极意义。

归根结底,在第一个小主题里,重点在于“我们已经向罪死了”这一宣告所带出的具体影响。张大卫牧师将救恩视为一次性的宣告,也视为引领未来的属灵呼召,呼吁信徒每日重新确认这一救恩身份:我们原本在亚当里,如今却迁移到基督里,已被上帝称为义。这一救恩事件不能只是神学或教义的知识,而应当转化为“以身体切实实践基督的死与复活”的生活态度。正是在这一点上,引出了第二个小主题:信徒要进入圣化历程——在身体层面经历属灵争战、自我否定,并成为“义的器具”的具体道路。


2. 管理身体的激烈属灵争战观

从《罗马书》6章12节之后,保罗开始关注另一个核心议题:已经“向罪死”的人,为什么仍然要与罪恶引诱争战?又要怎样在这场争战里得胜?张大卫牧师在讲道中解释说:“虽然我们的身份已然转换归属给上帝,但由于血肉之躯的软弱和罪的残余仍在,罪依然会试图掌控我们这必死的身体。”(参罗6:12)虽然身份已经是属上帝,但在实际状态(state)上还需经历不断的更新过程。

张牧师着重强调:“我们现在并非直接被提进天国,而是在地上度过‘圣化’这一人格与灵性不断变化的阶段。”人虽因信主即时得救,但罪的习惯和罪的诱惑并不会瞬间消失;相反,得救后,我们可能更加敏锐地感受到罪的诡计与引诱。保罗在这里特别提到“身体”,正是因为我们的思想、情感、目光、言语与行动都通过“这必死的身体”来实现,而撒但便借此用各样情欲、试探来牵引我们回到旧的罪性模式中。

对此张大卫牧师提出若干切实的“属灵争战”路径。首先,他强调:“要常在真理里。”唯有上帝的话(真理)才能提供超越人体本能冲动的属灵力量。其次,他主张“借由持续操练来管控肉身。”这并非传统禁欲主义或律法主义,而是依靠“内住于我们心中的圣灵”,主动地在眼、耳、口、手脚上操练节制,通过自律性操练削弱罪的影响。

保罗宣告:“不要将你们的肢体献给罪作不义的兵器;倒要献给上帝,作义的兵器。”(罗6:13)这表明我们的身体并非中立的通道,而是一种“工具(兵器)”。若罪作主宰,我们的身体就成为罪的工具;若义作主宰,我们的身体就成为彰显上帝之义的工具。张大卫牧师指出,这幅图像极具具体性。当我们在敬拜或服事中使用自己的“手脚”去完成上帝的工作时,它们就是“义的兵器”。然而,如果同样的手脚被投入罪恶的现场,它们就成了助长罪的“兵器”。关键不在于“工具”本身有无问题,而在于“由谁使用这工具”。

《罗马书》6章14节写道:“罪必不能再作你们的主,因为你们不在律法之下,而是在恩典之下。”张大卫牧师常常从中教导说:“当我们知道自己是在恩典之下,就能觉悟到自己是尊贵的,不再被罪所辖制。”当人在律法之下时,犯罪就意味着被定罪,这令罪看似具备某种“自由”吸引力;但实际上,罪最终让人沦为奴仆,走向死亡。反之,在恩典之下——就是在耶稣基督里——罪对我们的“合法所有权”已经终结,撒但只能非法侵占,而不再具有合法的主权。

因此,张大卫牧师常提醒信徒要“记住,撒但是非法侵占者。”因着耶稣基督的宝血,我们的所有权已完全移转给上帝;当我们软弱失败时,撒但可能会趁机讥讽“你看,你还是罪的奴隶”。可这全然是谎言。对此,张牧师强调:“信徒必须时刻宣告‘我是在恩典之下,我的主是耶稣基督’。”当罪来定我们罪之时,我们就需重申自己“被称义之人”的身份,并在实际生活中果断拒绝罪的诱惑。

在第15节以后,保罗再次针对“既然在恩典之下,是否就可以任意犯罪呢?”这一疑问重申:“断乎不可!”张大卫牧师指出,保罗之所以如此重复,是因为“我们里面存在矛盾的欲望”。由于肉体软弱,一旦听到“恩典”的福音讯息,就可能有人误解和滥用,产生“那我就可以放心犯罪了”的想法。人的骄傲、懒散以及逃避圣灵管理的本能,会曲解天国的怜悯,而保罗的结论却很清楚:我们既已从罪中得释放,若再投身罪恶,就是“自愿回到罪的奴役中”,这是极大的愚昧。

第16节保罗说:“你们将自己献上作奴仆,顺从谁,就作谁的奴仆。”张大卫牧师将此解释为“选择的问题”。每日生活中,我们究竟是谁的仆人,由我们自己决定。我们的真正主权虽然已属上帝,但实际上,若我们依然将心思意念、行为肢体“献给罪”,就会实际感受到罪的管辖;相反,若我们“从心里顺服”,归顺上帝,就作祂的奴仆,带来义与生命(参罗6:17-18)。保罗宣告,若故意沉溺在旧情欲里,结局就是死亡;若甘心顺服上帝,则通往生命与永生。张牧师对此表示强烈的赞同与提醒。

在第19节,“因你们肉体的软弱,我就照人的常话对你们说”,保罗之所以采用“奴仆”这一比喻,有罗马社会普遍存在奴隶制度的背景,也有为了让人更容易理解的缘故。张大卫牧师评价此比喻“简明易懂却决不轻描淡写”。昔日我们作罪的奴仆,结果只能收获污秽和不法的恶果;如今我们将自己献给上帝,理当行走“迈向圣洁”的道路。

在20-21节,保罗回顾过去我们作罪奴仆之时所结出的果子,终究是可耻并且导致死亡。张大卫牧师将此形容为:“顺从肉体私欲所带来的破坏与荒废。”罪会衍生更多罪,从内在的灵性到心理层面,再到外在的人际关系与社会体系,都被慢慢侵蚀。因此,那些罪恶横行的地方,从来不会有持续的平安或真正的自由。相反,在22节,保罗宣告我们已从罪中得释放,成为上帝的奴仆,可以结出“通往圣洁”的果子。这里再次显现张大卫牧师经常强调的重点:罪之路指向死亡,义之路通向永生;而“义之路”并非单调的痛苦,而是更深的喜乐、感恩与丰富生命的历程。

最终保罗在23节总结道:“罪的工价乃是死;但上帝的恩赐(恩典的礼物)在基督耶稣里,却是永生。”张大卫牧师经常解释“罪的工价”(原文ὀψώνια)其实是当时士兵服役所得的“薪饷”。人在罪里劳苦,获得的报酬终究是死亡;但成为上帝的仆人,就能白白地领受上头赐下的恩典礼物。二者之间的对比清晰地呈现:“我们应当欢喜地选择作主的仆人,而非作罪的奴隶。”

因此,本小主题的重点在于:即便我们已被称义,仍要持续在身体层面与罪争战,并努力进到圣化的过程。张大卫牧师将保罗的教导应用到当代信徒的生活中,再三嘱咐:“每天都需要‘将自己献上,作义的器具’的决心与操练。”这并非律法主义的桎梏,而是在圣灵里主动献身的爱之顺服。通过这样的过程,我们会渐渐成长,更像基督的形象。


3. 自己上帝作的兵器之生活的群体使命

张大卫牧师经常指出,《罗马书》第六章贯穿的保罗论述,并不止于个人内在的圣化,也要延伸到教会群体与世界之中、承担“使命”的层面。在罗6:13节“将肢体作义的兵器献给上帝”这句话里,个人层面上,我们不可把身体交给罪作工具,而要献给上帝。但其更深层的意义乃是成为“在这世界中彰显上帝之义”的见证人。

张牧师也常引述耶稣在约翰福音15章临别训示:“你们若常在我里面,我也常在你们里面,就多结果子。”然而,那果子并非只在个人层面结出,而要在教会群体与外部世界中共同成长,成为世上的光与盐。“作义的兵器”绝不只是拒绝罪恶或追求个人成圣的行为,更意味着在家庭、职场、教会乃至社会各领域,主动散发基督馨香之气,实践上帝之爱与公义。

沿着《罗马书》第六章的脉络,保罗反复提醒“你们是已经从死里转向生的人”(罗6:11),张大卫牧师将之诠释为:“曾经历经一死,并又活过来的人,不再被世俗的欲望或恐惧所捆绑。”凡真正“死过一次”并“在基督里复活”的人,将活出与众不同的生命尺度,这份心灵的自由和大能,正是能够摆脱罪恶虚假的承诺,勇敢走上义路的助力。而这一动力不仅在个人,也需在教会群体里共同实践。

特别是张牧师提到,教会历史上屡有只注重个人得救、却忽略了“作义的兵器”之召命的情况。他提醒:“当我们被献给上帝时,就当思想如何在教会与社会中发挥属灵影响力。”例如,服事与宣教、救助贫困者、关怀孤苦的弱势群体,甚至向未闻福音者传扬真理等,都展现了我们“身体”被用为拓展上帝国度的真实事例。它不仅限于个人的道德或敬虔生活,也涉及教会整体实践与社会关怀。

在此,张大卫牧师提出一项关键原则:“我们之所以被称义,完全是出于恩典,却不可仅仅停留在自我享用的层面,还必须结出效法上帝性情的变化之果子。”《罗马书》6:22所言的“通往圣洁的果子”,不仅意味着个人的道德完善,更包含在群体、社会中扩散上帝公义与慈爱的实质行动。当众多信徒共同实践,就会在教会中形成彼此激励,操练彼此鼓励、培育属灵品格,也愿意在社会中尽力行善,为主作光作盐。

张牧师另外强调:“切不可让过去的失败或罪疚感束缚自己。”既然我们已经向罪死了,又在基督里活,就不该整日沉溺于悔恨与自责。保罗在罗6:4所说:“我们也要在新生命里生活”,正是强调要有勇气投身这持续“成就救恩”的圣化之路。而教会群体中也应彼此代祷,帮助破除罪的恶习,共同操练良善品格与各种服事、宣教、慈善行动等,以具体的方式活出“将身体献作义的兵器”的信仰。

因此,整章《罗马书》第六章,保罗传递的中心讯息是:“我们既脱离罪的奴役,成为上帝的仆人,借与基督同死同埋同复活而得新生命,那么现在该如何生活?”张大卫牧师也以同样脉络来教导:既要清楚区分一次性、决定性的“称义”,也不可将其与“圣化”割裂。我们已经借一次性的“称义”改变了身份,现今靠着恩典同样需要日复一日地对抗肉体欲望、顺服圣灵,从而一步步在圣化之路上与教会一同,献上身体为义的器具、建立上帝的国度。

如保罗在6:23总结:“罪的工价乃是死,上帝的恩赐在我们的主基督耶稣里却是永生。”这是绝对且永恒的对比。张大卫牧师指出:“我们的盼望就在于这永生——出于基督耶稣白白赐予的礼物。”正是对这永生的信心,使我们能在今世艰苦的道路上继续前行,并带着喜乐与感恩,将自己毫无保留地献给上帝,作祂手中的“义的兵器”。


综观以上三个小主题,可以将《罗马书》第六章的信息与保罗的本意,以及张大卫牧师的主要教导相结合,整理如下:

  1. 因罪而死、在基督里活的恩典身化(
    • 我们原本在罪与死的律之下,但因着恩典获得“称义”,身份被彻底更新,与基督的死与复活联合,并通过洗礼而象征性见证这一事实。
    • 张大卫牧师将“称义”阐释为身份改变,意味着过去的罪已被完全解决,罪再也不能决定我们的终局。
  2. 管理身体的激烈程(属灵争明了自己在恩典之下
    • 虽然已得救,仍需在“必死的身体”层面抵御罪之诱惑,撒但会非法地再度侵占。
    • 张大卫牧师教导要常在真理里,并依靠圣灵之力,坚持操练管制身体情欲;一旦确知自己在“恩典之下”,罪便无处可合法辖制我们,我们也能真实地拒绝罪,让身体成为“义的兵器”。
  3. 自己上帝作的兵器之生活群体使命
    • 不应只停留于个人的虔诚或道德层面,而要在教会及社会中积极彰显上帝的义和爱。
    • 张大卫牧师着重提醒我们已经成为“义的奴仆”,呼召我们以顺服与委身,实践上帝的旨意。保罗在《罗马书》6章末了表明:罪的结局是死亡,而上帝在基督里赐下的恩典则通往永生,这为我们的人生方向与终极盼望奠定了核心真理。

张大卫牧师曾把这一切过程描述为“由耶稣基督的十字架开始,延伸至永恒的救恩宏大戏剧”。从开端到结束,上帝的恩典与慈爱始终牵引着我们,但同时,需要我们人的责任性决断与顺服在其中真实地发挥作用。《罗马书》第六章正是这长程救恩进程的重要枢纽,宣告我们“从死到生,从罪的奴仆到义的奴仆”的属灵奥秘。

最后总结来说,《罗马书》第六章的核心讯息可浓缩为:上帝借着耶稣基督的死与复活,使我们脱离了罪的权势,并呼召我们不再回到旧有的奴役之中,而要将自身完全献给上帝,结出圣洁与美善的果子。张大卫牧师称之为“得救之人的权利与使命”,指出我们活在世上的目的和目标,在于成为“义的兵器”去转化世界。当我们遵循此道,与过去罪与死作主宰的世界割裂,就能被引领进入一个截然不同、荣耀非凡的未来,也就是保罗所宣告的“永生”的礼物。张大卫牧师鼓励信徒坚信:这永生的盼望,正是我们在今生持之以恒地将自己交在上帝手中、活出“义的道路”之喜乐与感恩的泉源。

如此,张大卫牧师对《罗马书》第六章的诠释,生动展示了称义与圣化之间的紧密关联,并且进一步阐明了当信徒与基督同死同复活时,理当如何切实地把身体献给上帝,在真实生活中结果子。《罗马书》第六章可谓保罗福音的缩影,而张大卫牧师的解读也为我们提供了丰富的牧养性、实践性指引。愿我们都能在这宝贵教导中,越发明白并活出保罗在本章所启示的福音真义。

聖化の義の道 – 張ダビデ牧師

ローマ書6章を中心とする「称義と聖化、そして神に捧げる義の武器」というテーマについて、張ダビデ牧師の牧会的強調点を反映させながら叙述しました。ローマ書6章がもつ神学的要素とともに、張牧師が提示する実践的な適用点を幅広く考察できる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


1. 罪にして死に、キリストにあって生きるみの身分化(義)と張ダビデ牧師の救いの理解

張ダビデ牧師は、さまざまな説教や著書を通して、救いは単回的出来事としての「称義」(justification)と、継続的に変えられていく「聖化」(sanctification)、そして将来完成される「栄化」(glorification)の三段階にわけて明確に説きつつも、これら三つが互いに切り離せない一つの大きな旅路だと強調してきました。ローマ書6章を論じる際、彼は「罪に対して死に、神に捧げられた者となった」というパウロの宣言から、救いの確かさがどこに基礎を置くのかを再確認させます。つまり「称義」は一度きりで完結する出来事でありながら、それがすぐに聖化の全過程を自動的に成し遂げたという意味ではないし、同時に称義なくして聖化を語ることもできないと何度も強調するのです。

ローマ書6章1~2節でパウロは、「罪が増すところに恵みがいっそう満ちる」という前章(ローマ書5章)の宣言を聞いた人々が、誤解しかねない問いに答えを提示します。「では、恵みを増そうとするために、もっと罪を犯してもよいのか?」という問いに対して、パウロは毅然として「絶対にそんなことはありえない」と答えます。張ダビデ牧師は、この箇所で私たちが陥りやすい信仰上の錯覚を指摘します。すなわち、「神は愛であり、豊かな恵みをくださるのだから、自分勝手に生きても救われた事実は揺るがな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放縦な考えです。しかしパウロが語るように、すでに罪に対して死んだ者(=称義)であるならば、どうして過去の罪の中に居続け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というわけです。張ダビデ牧師はここで「救いとは始まったその瞬間に、人生全体が覆されてしまう霊的出来事」であると解説します。つまり「罪に対して死んだ者」という認識は単なる理論的・教理的な文言ではなく、私たちの「身分」が完全に変えられたことを意味すると説明するのです。

このように身分が変えられたということは、パウロが述べるように「新しいいのちにあって歩むためである」(ローマ6:4)という神の目的と意図が具体的に表されたことです。張ダビデ牧師がたびたび強調する「称義は身分の変化だ」という言葉には、もはや罪が私たちの正体を規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真理が込められています。かつて「罪人」と定義されていた私たちは、今や「義とされた者」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それはすなわち私たちの存在がもはや罪の所有物ではないことを宣言するものです。これはローマ書6章7節の「死んだ者は罪から解放されて義とされている」という言葉とも重なります。

張ダビデ牧師は、この変化が「一度きりで完成された霊的宣言」であると同時に、「新たな責任と決断を要求する転換点」だと解釈します。すなわち、私たちのあらゆる罪を負い、十字架で死なれたイエス・キリストの功績によって、一度で私たちの罪の問題は清算され、その瞬間に私たちは義とされました。けれども、この「称義」という恵みの始点が私たちの人生の中で力強く働くには、その恵みを「浪費」する態度を捨て、全き感謝と畏敬をもって神に向かう方向転換が必要なのだと説くのです。

ローマ書6章3~5節で言及される「キリストの死にあずかるバプテスマを受けた」という表現も、張ダビデ牧師の説教でしばしば引き合いに出されます。彼は洗礼が単なる入会式や教派的伝統ではなく、「私たちがキリストと連合した」という信仰の実在を象徴するものであると教えます。洗礼とは一つの標徴であり儀式ですが、その中に秘められた霊的意味は「キリストにあって死に、再び生きること」です。パウロは洗礼によって私たちがイエスとともに葬られた(6:4)と語りますが、それは過去の罪深い本性、アダムのうちにあったいのちがキリストとともに十字架に付けられ、葬られたことを象徴します。そしてキリストの復活によって私たちもまた新しいいのちを得たことを宣言する装置なのです。

張ダビデ牧師は、この場面で「罪がすでに一度きりで清算された事実を恐れずに信じよ」としばしば説教します。実際、多くの信徒が信仰生活の中でつまずき、失敗し、「本当に自分は救われているのだろうか?」と疑いを抱くことがあります。しかしパウロの教えに倣い、張牧師は「救われているというアイデンティティは揺るがない」と強調します。私たちの感覚や感情、あるいは一時的な過ちや罪によって救いの地位が失われるのではなく、「原罪」の問題はすでに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によって完全に解決された事実を忘れてはならないというのです。

このように「罪に対して死んだ」という宣言は同時に、「神に対して生かされた」という逆説を内包しています。ローマ書6章8節でパウロは「もし私たちがキリストと共に死んだのなら、また共に生きることを信じます」と語ります。張ダビデ牧師は、この信仰告白こそキリスト教信仰の最も核心的な出発点だと強調します。罪に対して死んだということは、もはや罪の支配力のもとにはいないという意味であり、キリストと共に生きるということは、すなわちキリストのご支配のもとにある新しいいのちの体制に入ったことを意味します。イエスを信じるとは、ただ「死後、天国行きの切符を得る」ことだけではなく、この地上の生活の中でも既に神の支配のうちに入り、新しいいのちを生きるという積極的な意味を見失ってはならないと、張牧師は力説します。

結局、この第一の小主題において要となるのは、「罪に対して死んだ」という宣言が具体的にどのような結果をもたらすのかという点です。張ダビデ牧師は、救いを単回的な宣言であると同時に、未来への霊的召しと捉えつつ、私たちは日々この救い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再確認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説きます。アダムのうちにあった私たちが、今やイエス・キリストのうちへ移され、すでに神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たという事実を私たちの生涯の土台と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救いの出来事が単なる神学知識や教理で終わるのではなく、私たちの身体をもってキリストの死と復活を実行に移す道が開かれたという認識につながることが重要です。そしてまさにここで、第二の小主題として扱う「聖化」のプロセス、すなわち私たちの身体を通して行われる霊的戦いと自己否定、そして「義の武器」となる具体的な歩みが始まっていくのです。


2. 身体を支配するための苛烈な聖化の過程と張ダビデ牧師の戦闘

ローマ書6章12節以下でパウロが焦点を当てる主題は、「すでに罪に対して死んだ者」がなぜいまだに罪の誘惑と戦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そしてその戦いにどう勝利すればいいのか、という問題です。張ダビデ牧師はこの箇所を自身の説教で「キリストの恵みによって身分は変わったとしても、身体の弱さと罪の残滓が依然として残っているからだ」と解釈します。パウロの表現を借りると「罪が今なお私たちの死ぬべき身体を支配しようと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ローマ6:12)。身分自体はすでに神のものとなったとしても、私たちの状態(state)はまだ変化の過程をたどる必要があるのです。

張牧師は「今はすぐに天国へ行く段階ではなく、この地で『聖化』という人格的・霊的変革を成し遂げていく時期なのだ」と強調します。イエスを信じたからといって、すべての罪の習慣や悪しき誘惑が一瞬で消え去るわけではなく、むしろ救われた者として「罪」というサタンの巧妙な誘惑に、より敏感になるのです。パウロが「身体」に言及するのはこのためです。私たちの思考、感情、視線、言葉、行動など、すべてがこの「死ぬべき身体」の機能を通して表れますが、その身体をサタンが拠点として利用し、罪の欲望を煽って私たちを古い習慣へ引き戻そうとするからです。

張ダビデ牧師は、この苛烈な霊的戦闘を勝ち抜くための具体的手段を、数多くの説教や著書で論じてきました。第一に、彼は「真理のうちにとどまれ」と強調します。神のことば(真理)によらなければ、人間の身体から生じる本能的衝動を抑えうる霊的力を得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のです。第二に、「繰り返しの訓練によって身体を治めよ」という原則を強調します。これは伝統的な禁欲主義や律法主義ではなく、「私たちのうちにおられる聖霊」の力により頼みながら、目や耳、口、手足を節制し、自発的な訓練を通して罪の支配力を弱めていくという意味です。

パウロが「あなたがたの肢体を不義の武器として罪に捧げることなく、義の武器として神に捧げなさい」(ローマ6:13)と宣言するのは、私たちの身体が中立的な通路ではなく、誰かの「道具(武器)」になりうるという事実を伝えています。罪が支配すれば私たちの身体は罪の道具となり、義が支配すれば私たちの身体は神の義を現す道具となるのです。張ダビデ牧師は、このイメージがきわめて具体的だと述べます。たとえば、礼拝や奉仕において私たちの「手足」が神の働きのために用いられるとき、その手足は「義の武器」となります。ところが、同じ手足が罪を犯す現場に使われるなら、それは罪のための武器となってしまうのです。つまり、道具自体の問題ではなく「誰がその道具を握っているか」が決定的な要素だというわけです。

ローマ書6章14節「罪はもはやあなたがたを支配しない。あなたがたは律法の下ではなく、恵みの下にあるのだから」という言葉も、張ダビデ牧師の説教で繰り返し取り上げられるテーマです。彼は「自分が恵みの下にあると知るとき、私たちはもはや罪に従属しない尊い身分なのだと自覚できる」と力説します。律法の下にいるとき、人は罪を犯すことで罪定めを受ける恐れに縛られ、ある意味では罪が「自由」であるかのようにも見えます。しかし実際には、罪は私たちを隷属させて奴隷とし、ついには死に至らせるのです。それに対して、恵みの下に移された者、すなわちイエス・キリストのうちにいる者に対しては、罪がもはや「法的権利」としてその人を支配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すでに主人が変わっているので、サタンは不法な手段で私たちを乗っ取ろうとするだけで、合法的に私たちを所有する根拠は一切ないという解釈です。

だからこそ張ダビデ牧師は、「サタンが明白な不法占拠者であることを忘れないでほしい」と教えます。イエス・キリストの血潮によって私たちの所有権は神へ完全に移されました。私たちが弱くて失敗し、つまずいた瞬間を狙って、サタンは「おまえはまだ罪の奴隷じゃないのか」とささやくかもしれませんが、それは偽りです。この点について牧師は「信徒はそのたびに『私は恵みの下にいる。私の主はイエス・キリストだ』と宣言する必要がある」と語ります。つまり罪が私たちを罪定めしようとする際、私たちは「義とされた存在」という身分を積極的に主張し、同時に実際の生活においては罪を断固として退ける実践が伴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ローマ書6章15節以下でパウロは再び「私たちは恵みの下にあるのだから、罪を犯してもよいのだろうか?」という問いに対し、「断じてそんなことはあってはならない」と言い切ります。張ダビデ牧師は、この繰り返される教えこそ「私たちのうちにある矛盾した欲望に対する警戒のメッセージ」だと解説します。肉体の弱さを抱えた状態で「恵み」という祝福の知らせを聞くと、中には「それなら思いきり罪を犯しても大丈夫では?」と悪用しようとする者が出かねないからです。人間の高慢と怠惰、さらに聖霊の支配から逃れようとする本能が依然として残っており、天来の慈しみを自分に都合よく解釈しようとするわけです。しかしパウロの結論は明快です。私たちはすでに罪から解放されたのだから、再び罪に屈服するのは「みずから罪の奴隷になる愚かな選択」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ローマ書6章16節でパウロは「自分自身を奴隷としてささげて誰に従うにせよ、その従う相手の奴隷となる」と語ります。張ダビデ牧師は、これを「選択の問題」だと説明します。日々の生活の中で、実際に自分は何を(誰を)主人として歩むのかが重要です。すでに主人は変わっていますが、自分の身体や心をどのように「ささげるか」によって、実際に体験する支配力は異なってくるのです。「心からの自発的な従順」を通して神の奴隷となる道は義へ向かう道であり、やがて永遠のいのちに導きます(17~18節)。一方で、再び古い情欲に自分で門を開いて罪の奴隷となるなら、その結末は死と滅びに至るというのが、パウロの宣言であり、張ダビデ牧師も深く共感する警告です。

張ダビデ牧師は特にローマ書6章19節の「あなたがたの肉の弱さのために、人間的にわかりやすく言っているのです」という表現に注目します。パウロが奴隷制度という比喩を用いたのは、当時のローマ社会に蔓延していた制度的背景があったからでもありますが、それだけでなく人間にとって分かりやすいように「奴隷」と「主人」の関係を取り上げたのだ、というのです。張牧師は「理解しやすいが、決して軽い比喩ではない」と評します。かつて私たちが罪の奴隷であったとき、不義と不法に身をささげ、惨めな結末を迎えざるをえなかったのですが、今や神に奴隷としてささげられ、聖潔に至る道を進むべきだ、というわけです。

ローマ書6章20~21節でパウロは、かつて罪の奴隷であったときに結んだ実を振り返るよう促します。あの頃私たちが結んでいた実は恥ずべきものであり、その終局は死に至りました。張ダビデ牧師は、これを「肉の欲に従って生きるとき、私たちの内に起こる破壊と荒廃」になぞらえます。罪は次々と罪を生み、霊的・精神的健全さをむしばんでいき、さらには社会的な関係まで崩壊させます。したがって、罪が広がる場所には決して持続的な平安や真の自由はありません。それに対してローマ書6章22節では、今や私たちは罪から解放されて神の奴隷となり、「聖潔に至る実」を結ぶようになったとパウロは宣言します。ここに張ダビデ牧師の核心メッセージが再度示されます。罪の道には死があり、義の道にはいのちがあるというパウロの対比です。そして義の道は、決してただ苦しいだけの道ではなく、ますます豊かな喜びと感謝に満ち、最終的ないのちへと導かれる道である、と彼は説くのです。

結局ローマ書6章23節でパウロは「罪の支払う報酬は死であり、神の賜物は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永遠のいのちである」と結論づけ、「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いのち」という贈り物が、すべての信じる者が得る最終的な恵みであると明言します。張ダビデ牧師は「罪の報酬(ὀψώνια, opsōnia)」という言葉が、当時の兵士たちが汗を流して働いた対価として受け取った「給料」を指すことをしばしば紹介します。罪の奴隷として生きる者は、骨折って働いた末に「死」という絶望的な支払いを受けることになるが、神に奴隷としてささげた者には「賜物(χάρισμα, charisma)」すなわち無償で与えられる「天の下賜品」があるというわけです。この二つの道の対比から、「私たちは喜んで主の奴隷となる道を選ぶべきではないか」という結論に達します。

したがって、この第二の小主題の核心は、すでに称義された者であっても、罪と肉の弱さを乗り越えていく聖化の戦いが続くという点にあります。張ダビデ牧師は、パウロの教えを現代の信徒に適用しつつ、「日々みずからを義の武器としてささげる決断と訓練が不可欠だ」と重ねて強調します。これは律法的な強制ではなく、「聖霊のうちで主体的にささげる愛の従順」であり、その過程を通して徐々に「キリストのかたち」に似せられていくのだと教えています。


3. 義の武器として神にささげる生き方と張ダビデ牧師の共同体的使命の調

張ダビデ牧師は、ローマ書6章に流れるパウロの論理が単に個人的な内面の聖化にとどまらず、教会共同体や社会における「使命」へと拡張されねばならないと、繰り返し説いてきました。ローマ書6章13節の「あなたがたの肢体を義の武器として神にささげなさい」という言葉は、個人のレベルでは自分の身体を罪の道具に渡さず神にささげる命令ですが、最終的には「世のただ中で神の義をあかしする証人」として生きよ、という召しへとつながっていくのです。

張牧師はしばしばイエスの別れの説教(ヨハネ15章)を引用し、「私たちが主にとどまり、主が私たちのうちにとどまるなら、私たちは豊かな実を結ぶ」と説教します。ところが、この実は自分一人で結ぶものではなく、教会共同体の中でともに豊かになり、さらに信仰を持たない世に対しても「光」と「塩」として現れる実であるというのです。したがって、「義の武器となる」とは、自分のうちにある罪性を拒み、聖霊の力によって聖なる生き方を追い求めるだけにとどまりません。むしろ、その聖さが私たちの家庭や職場、教会、そして社会のあらゆる領域であらわれ、キリストの香りを放つ積極的な実践として広がっていく必要があると強調します。

ローマ書6章の文脈で、パウロは「死からいのちへ移された者たち」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繰り返し強調します。「自分を罪には死んだ者、神には生きた者として考えなさい」(ローマ6:11)。張ダビデ牧師はこれを「一度死を通過して再び生きた者は、もはやこの世の欲望や恐れに縛られない」という考え方にまで広げて解釈します。一度死を体験した者は、新しい次元の生き方を生き、魂のうちに大胆な自由があるというのです。そして、この大胆な自由こそ「罪の欺瞞的な約束」にもはや振り回されず、「義の道へ進むための推進力」を与えてくれます。そしてこの推進力が、最終的に教会共同体において「共に歩む信仰の旅路」として具体化される、と張牧師は言います。

特に張牧師は、韓国教会や世界の宣教現場において、個人の救いだけを強調するあまり「義の武器としての使命」を忘れてしまった例が多いことを指摘してきました。彼は「神にささげられた者」たちが教会の内外でどのような役割を果たすべきかを具体的に提示します。たとえば奉仕や宣教、救済や分かち合いの生活は、私たちの身体が「義の武器」となって神の国を広げる働きに用いられる代表的な例です。これは困窮し苦しむ人々を支える具体的行動や、居場所のない社会的弱者を助ける実践、そして真理を知らない人々に福音を伝える使命など、多岐にわたって表れます。

張ダビデ牧師はここで非常に重要な原則を示します。「私たちが既に義とされたのは、まったくの恵みの賜物によるが、それを享受するだけで終わるのではなく、神のご性質に似た姿へ変えられていく人生の実を必ず結ばなければならない。」 ローマ書6章でパウロが言う「聖潔に至る実」(ローマ6:22)は、個人の道徳的純潔や敬虔さだけを意味するのではなく、教会や社会の中で神の正義と愛を広げる生きた実践のことを指す、というのです。そうして結ばれた実が教会共同体の中で互いに励まし合い、私たちの身体を義の武器として神にささげる生き方を継続的に訓練し、広げていくことになるのです。

このとき張牧師は、「決して過去の失敗や罪責感に縛られてはならない」と力説します。すでに私たちは罪に対して死んだ存在であり、キリストにあって生かされた者なのだから、過去を抱えて嘆き続けたり、罪悪感に苦しみ続ける生き方は聖徒の歩みではない、というのです。むしろパウロが言うように(ローマ6:4)「新しいいのちにあって歩むべき」であり、「救いを成し遂げていく聖化の道」を大胆に歩む必要があります。これを実行するために、教会共同体のなかで互いに祈り合い、罪の習慣を断ち切り、善なる性質を養うためのさまざまな養育プログラムや弟子訓練、社会的奉仕や分かち合いの活動などを積極的に展開していくよう勧めています。

結局、ローマ書6章全体を通してパウロが示そうとしている核心的メッセージは、「罪の奴隷状態から解放され、神の奴隷となった私たち――キリスト・イエスと結ばれバプテスマを受け、新しいいのちへと召された私たちは、今どう生きるべきか」という問いへの答えだと言えます。張ダビデ牧師の教えも同じ文脈に沿っており、称義と聖化を明確に区別しながらも、この二つをけっして切り離してはならないと説きます。私たちは一度きりで決定的な出来事としての称義により救いの身分を得て、その恵みによって肉の欲と戦いながら聖霊の助けのうちに漸進的な聖化をなし、教会共同体とともに義の武器として神の国を実現する道を歩むのです。

そして最終的な結論は、パウロがローマ書6章23節で提示するように、「罪の報酬は死だが、神の賜物は永遠のいのちである」という絶対的で永遠の対比です。張ダビデ牧師は「結局、私たちが握る希望は永遠のいのちであり、それは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無償で与えられる恵みの賜物なのだ」とまとめます。まさにこの永遠のいのちを見据える信仰が、いまここにある苛烈な人生を生き抜く原動力であり、「義の武器として神にささげる」喜びと感謝の源泉だと語るのです。


以上の三つの小主題を通して、ローマ書6章の講解をパウロの本文解釈とあわせ、張ダビデ牧師の主な教えと視点を組み合わせて整理しました。要約すると次のようになります。

  1. 罪にして死に、キリストにあって生きるみの身分化(義)
    • 罪と死の法則の下にあった私たちが、恵みによって「称義」を得て、まったく新しい身分を手に入れた。これはキリストの死と復活にあずかったことを洗礼を通して象徴的に確認するもの。
    • 張ダビデ牧師は、称義を「身分の変化」と説き、過去の罪に対する完全な解決であり、もはや罪が私たちの運命を決定しえないことを意味すると強調。
  2. 身体を支配するための苛烈な聖化の過程(戦闘)と、みの下にあるという自
    • 救われた信徒であっても「死ぬべき身体」を通して罪の誘惑が入り、サタンは不法に私たちを占拠しようとする。
    • 張ダビデ牧師は、真理のうちにとどまり、聖霊の力によって身体の欲望を治める訓練を絶えず行うよう訴える。自分が「恵みの下にある」と確信するとき、罪が私たちを支配する法的根拠は消え失せ、具体的な生活の現場で罪を退け、義の武器として用いられる道が開かれると説く。
  3. 義の武器として神にささげる生き方と共同体的使命
    • 単に個人の敬虔さや倫理的清さにとどまらず、教会共同体と社会で神の義と愛を示す積極的な奉仕や行動へ広がっていく。
    • 張ダビデ牧師は、私たちがすでに「義の奴隷」であるという事実をしっかりと握りしめ、神の所有としてこの地に神の御心を実現していく献身こそ「新しいいのちにあって歩む道」だと説く。
    • 罪の報酬は死だが、キリストにあって受け取る神の賜物は永遠のいのちであり、最終的に私たちが歩む聖なる生き方の方向性と究極的な希望を決定づける核心的真理であると結論づけている。

張ダビデ牧師は、この全プロセスを「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から始まり、永遠へと続く救いの大河ドラマ」になぞらえながら、はじめから終わりまで神の全き恵みと愛が私たちを支えてくださるが、その間における人間の責任ある決断と従順もまた実際に働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繰り返し語ってきました。ローマ書6章は、この長い旅路の中心にあって「死からいのちへ、罪の奴隷から義の奴隷へ移された」私たちの霊的な秘密を宣言する、極めて重要な章なのです。

結論として、ローマ書6章全体から浮かび上がる中心的メッセージは次のように要約できます。
神はイエスキリストの死と復活によって罪の支配から解放された私たちを、二度と昔の奴隷態にらせないために召されました。そして私たちの身体と人生を余すところなく神にささげ、聖潔と善きを結ぶよう導こうとしておられます。 張ダビデ牧師は、これを「救われた者の特権であり使命」と呼び、私たちの存在理由、人生の目的は「義の武器となって世を変えていくこと」にあるのだと、改めて思い起こさせます。そしてこの道を歩むとき、かつて罪と死が支配していた世界とは根本的に異なる次元の輝かしい未来、すなわち「永遠のいのち」という賜物を享受するようになるのだ、と確信をもって勧めるのです。

このように、張ダビデ牧師のローマ書6章の解説は、称義と聖化がいかに有機的につながっているかを示すと同時に、キリストの死と復活にあずかった信徒が、実際に身体をもって神に仕える生き方をするとき、どのような実を結ぶのかを細やかに描き出しています。ローマ書6章はパウロの福音の要約書とも言うべき章であり、張牧師の解説もまた、それを豊かに理解するための牧会的・実践的なガイドの役割を果たしていると言えるでしょう。